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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문화재에서 고기 구워 먹는 사람, 저러고 싶을까?

by 홈쿡쌤 201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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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에서 고기 구워 먹는 사람, 저러고 싶을까?

 

 

여름방학이라고 집에 와 있는 새내기 대학생인 아들,

친구가 좋아 집에 있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아

가족과 함께 시간 가지는 일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추석 차례상에 올릴 생선도 살 겸, 가까운 바닷가 구경을 나선길이었습니다.  

 

저 멀리 빨간 등대가 보입니다.

밤에는 어두운 뱃길을 알려주겠지요.



 

▶ 종목 : 문화재자료 제 93호 (1983.12.20 지정)
▶ 위치 : 경남 사천시 대방동 251
▶ 분류 : 유적건조>정치국방>성>성곽시설
 

 



대방진 굴항은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의 진영이 있던 곳입니다. 

 

 

 

 

▶ 이순신 장군의 늠늠한 모습

 

구라량이 폐쇠되어 쇠퇴했던 것을 조선 순조(재위1801∼1834) 때 진주 병마절도사가 진주목 관하의 창선도와 적량첨사와의 군사적 연락을 위해, 둑을 쌓아 굴항을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는 300여 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을 상주시켜 병선의 정박지로 삼고 왜구를 방어하였다고 합니다.



이 대방진 굴항을 쌓기 위하여 진주목 관하 73개면에서 수천명이 동원되어 1820년경에 완공하였다고 전합니다.



고려 시대 말에 남해안에서 극성을 부리던 왜구를 막기 위해 설치한 군항 시설의 하나다.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영의 소속으로서,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수군 기지로 이용하였다 한다. 현재의 굴항은 조선 시대 순조 때 진주 병마 절도사가 진주목 관하 73개 면의 백성을 동원하여 돌로 둑을 쌓아 만든 1820년경에 완공한 것이다. 남해 창선도의 적량 첨사와 군사적 연락을 취하던 기지로, 당시에는 300명의 수군과 전함 2척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다.





 

 

남편과 아들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다정함입니다.

 

 



 



 

 

나무 사이에 맥문동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강한 생명력을 봅니다.

 

 



 


 

 

 

천천히 걸으며 문화재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오는 냄새

"여보! 어디 가까이 고깃집이 있나?"
"아니, 저기 둑에서 고기 구워 먹고 있네."
"헛참, 꼭 저러고 싶을까?"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이었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아빠는 고기 굽기에 바쁩니다.

 

 

문화재라는 사실을 잊었을까? 

아니면 모를까?

다른 사람은 생각도 않고 꼭 저렇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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