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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소풍이 패션쇼 하러 가는 거니?

by 홈쿡쌤 2009.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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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풍이 패션 쇼 하러 가는 거니?


어제는 새벽같이 일어나 뚝딱뚝딱 녀석들이 좋아하는 김밥을 쌌습니다. 7시가 되자 알람이 울어댑니다. 딸아이의 방문이 열리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웬일이야?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고.”

“오늘 소풍 가는 날이잖아!”

“별일이네.”
가만히 보니 학교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 해운대 바닷가를 가게 되었나 봅니다. 늘 가까운 곳으로 다녀오더니 오랜만에 타는 기차라 그런지 제대로 소풍기분을 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새벽녘에 몇 번이나 깨어 문을 열고 ‘비가 오지 않나?’ 하고 확인한다고 잠도 설쳤던 것과 많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바쁘게 손놀림하여 도시락을 싸 놓고 나니 딸아이

“엄마! 나 예뻐?”
“어? 가디건이 어디서 났어?”
“학원 선생님한테 빌렸어.”

“선생님 옷을 왜 빌려? 윗옷 하나 산다고 하더니 왜 안 샀어?”

며칠을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봐도 마땅한 옷을 찾지 못하고 결국 빌러 입고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시간도 없고, 예쁜 게 없어서.”


봄 소풍이 결정된 날부터 옷 타령이었습니다.

“나 뭘 입고 가지?”
“그냥 편안한 청바지가 최고지.”

“다른 아이들은 짧은치마 입고 온단 말이야. 나는 윗옷 정장 하나 사 주면 안 돼?”
"소풍이 패션 쇼 하러 가는거니?"
"그건 아니지만, 나도 사고싶단 말이야."
“참나, 그래. 필요하면 사.”

“사랑하는 우리 엄마! 고마워. 대신 공부 열심히 할게.”

며칠 동안 인터넷을 쇼핑몰을 찾기만 하고 사지는 않았고, 그러더니 마음에 드는 청바지가 헐렁해서 6천원을 주고 수선을 해 그 청바지와 색깔 맞춰 곤색 가디건을 입었던 것입니다.

“엄마! 괜찮아 보여?”
“응. 네 나이 때에는 뭘 입어도 예뻐 보여.”

“그런가?”

“그럼.”


서둘러 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역 앞에 내리자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인사만 꾸벅하고 나더니

“야~ 너 못 보던 옷이다?”

“언제 산 거야?”

반가움의 표현이 옷이 어떤 메이커인지 어울리는지 예쁜지 온통 그곳에만 쏠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이들 옷이 너무 심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온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어제저녁, 소풍을 마치고 온 딸아이에게

“중3이 꼭 아가씨들 같더라. 미니스커트에 구두까지 신고 말이야.”

“대부분 그렇게 입고 왔어.”

“학생이 그렇게 입으면 선생님들이 뭐라고 안 해?”
“특별한 날이잖아. 근데 우리 반은 한 명도 그렇게 안 입고 왔어.”

“왜?”
“선생님이 혼내니까. 벌금 3만 원이라고 했어.”

그러시면서 기차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니 새 옷도 사지 말라고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도 안 입고 왔어?”

“응”

“와! 선생님 대단하시다.”

딸아이의 말을 빌리면 위에 조금 긴 셔츠로 치마 대신 입고 온 아이, 팬티처럼 아주 짧은 바지를 입고 온 아이가 있어 자기가 보기에도 민망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립인 딸아이의 학교는 평소 단정한 교복에 머리는 칼라 밑 2cm, 양말은 발목 양말도 색깔 있는 것도 안 되고, 신발은 흰 것 아니면 검은색을 신게 하는 규제가 심한 편인데 소풍날만은 약간 허용을 해 준 모양입니다.

“그런데 딸은 왜 긴 바지를 입고 갔어?”
“다들 미니스커트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가니 난 긴 바지로 티를 내야지.”

“호호호. 뭐가 그래?”

“난, 나니까.”


요즘 아이들 개성이 있어서 그럴까요? 누구나 다 싱그러운 사과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내 눈엔 정말 예쁘게 보이기보다는 꼭 저래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리는 건 나이 먹어버린 구세대이기 때문일까요? 아무 옷이나 단정하게 입으면 다 예쁘게 보일 나이인데 말입니다. 소풍날 친구들과 재잘재잘 옷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지 못한 아이들 마음은 어떨지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곁에서

“소풍날은 왜 사복을 입어? 그냥 교복 입고 가면 되지.”
“아빠는, 불편하잖아!”
“뭐가 불편해. 교복 치마보다 미니스커트가 더 불편하지.”

“그건 아빠 말이 맞네.”

“그래도.”

어찌 우리가 청춘인 16살 그 마음을 헤아릴까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모처럼 공부를 벗어나, 학교를 떠나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고, 잠시 휴식을 하면서 재충전한다는 기분으로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원대한 꿈을 품고 돌아왔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내민 흰 봉지 하나가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아! 엄마! 이거 봐!”

“어? 삶은 계란 아냐?”
“우리 선생님이 반 아이한테 다 나눠줬어.”

“세상에~”

봉지 안에는 삶은 계란 두 개와 소금까지 넣어 45명이나 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입니다.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니?”
“서른 중반? 우리 선생님 낭만적이야. 미술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좋아해?”
“처음엔 별로였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올 때 내가 먹으니 다들 같이 먹었어.”
“맛이 어땠어?”
“정말 맛있었어. 배가 고파서 그랬나?”

"한 개는 왜 남겨왔어?"
"엄마한테 보여주고 자랑하려고."
45명이나 되는 계란을 2개씩이면 90개, 3판을 삶아 개별로 포장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데도 한 명 한 명에게 소풍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나이라면 삶은 계란, 사이다에 대한 추억도 없을 나이인 듯한데, 제자들에게 전한 그 사랑은 녀석들이 자라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 얼굴도 한 번 뵙지 않았지만 학생답게 지낼 수 있도록 지도해 주고, 소풍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하나를 전해 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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