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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긴 쪽머리 자르고 파마하신 시어머님

by 홈쿡쌤 2009.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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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머리 자르고 파마하신 시어머님



언제나 주말이면 행사처럼 하는 일이 제겐 하나 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시어머님을 찾아뵙는 일입니다. 6남매 훌륭히 길러내려고 온 몸 받쳐왔기에, 83세로 지금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집으로 모시고 싶어도 아직은 친구들이 모인 노인정에도 놀러 가시고, 버스를 타고 치료기에도 다녀오시면서 혼자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날, 남편은 중학교 동창회 참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아침 준비를 위해 손놀림을 하였습니다.

“여보! 당신도 시골 갈래?”
“나는 어머님한테 가 봐야지.”

“그럼 어서 준비해. 시간 없어.”

“가다가 마트에 들러 시장 좀 봐 가야 해.”

“알았어. 서두르자.”

녀석들은 한참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때, 우리 부부는 시골로 향하였습니다. 5월의 향기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알록달록 피어 있는 꽃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어젯밤에 내린 비로 먼지가 씻겨 내려간 싱그러운 초록빛이 곱기만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내린 비로 운동장은 젖어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운동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차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향하고 나만 어머님이 계시는 시댁으로 향하였습니다. 전화를 드리지 않고 찾아갔는데 혹시나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문 앞에 차를 세우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다행히 어머님이 반가이 맞아 주십니다.

“와 혼자고?”
“아범은 학교 운동장 갔어요.”

“동창회 한다더니 그래서 시끄러운가 보네.”

“어? 어머님! 머리 파마하셨네.”

“네가 하라고 했다 아니가.”

시어머님의 오랫동안 길게 묶은 쪽 머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몸이 안 좋아 혼자 씻을 수 없게 되어 목욕탕에 모시고 가 머리를 감기는 일이 내겐 너무 힘들었습니다. 목욕을 온 아주머니들이 뭐라고 해도, 아들이, 손자가, 고명딸이 아무리 머리를 깎자고 해도 고집만 피우시며 도통 말을 안 들어, 나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사시면 얼마나 사실 거라고. 조금 힘들이면 되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싹둑 자르고 파마까지 하셨으니 놀랄 수밖에....

“어머님! 어디서 하셨어요?”
“응. 노인정에 사람이 와서 공짜로 해 주더라.”

“네. 그랬군요. 파마하시지 말고 그냥 커트만 하시지 그랬어요.”

“처음엔 하는 게 좋다고 해서 했다. 어떻노?”
“예쁩니다. 어머님~”

“글나? 영 어색해서....”

“시원해 보이고 좋습니다. 어머님! 저랑 목욕가세요.”

“그래 알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고 이상하다 여기는 말투였습니다. 내 한 몸 편안하자고 어머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머리를 자르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해물 잘게 다져 미역국 끓여놓고, 몇 가지 반찬 준비해서 둘이 앉아 점심을 먹고 노인정에 모시다 드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엉덩이까지 오던 머리를 자르면서 어머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올릴 때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빠글빠글 나온 머리를 보고 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파마를 하신 모습에서 당신 며느리를 위해 포기하실 줄 아는 그 마음조차 내리사랑으로 보여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아니 더 아프지만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 대신 더 자주 자주 목욕시켜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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