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나 밭두렁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삐삐, 지금은 잘 보이질 안아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솜 같은 것을 빼 입안에 넣어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 먹었던 '삐삐', 옛 시절 추억에 젖어보면 즐거움을 맛보곤 했었지.
삐삐 = 삘기 = 삘구(경상도) = 띠의 어린 이삭
--> 띠란? 볏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 뿌리줄기는 가늘고 길게 옆으로 뻗으며, 키는 50센티쯤이며, 잎은 좁고 긴데 밑동에서 모여난다. 산과 들에 떼 지어 자라나며, 뿌리줄기는 '백모근'이라 하여, 이뇨, 지혈, 발한제 따위로 쓰인다. 어린 꽃 이삭은 '삘기'라 하여 아이들이 뽑아 먹는다. 한자어로는 '모초' 혹은 '백모'라고 함.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가까운 산행을 합니다. 월아산을 오르는 중턱에 하나 가득 뽀얗게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삐삐를 보았습니다.
“여보! 저것 봐!”
“우와! 삐삐가 왜 이렇게 많지?”
“그러게.”
남편과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고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공감하는 게 참 많습니다. 육 남매 적지 않은 형제 속에서 자란 것까지 말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온산과 냇가를 쏘다니면서 자연에서의 삶들은 나의 정서를 키우는데 한몫했습니다. 그때가 왜 그리워지는 걸까? 핏기없는 부스럼 덩어리, 씻지 못해 눌어붙은 때는 거북이 잔등처럼 까실까실 하고, 입은 옷 이음새엔 올챙이 알처럼 이가 붙어 있었어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봄이면 양지바른 시냇가 버들강아지 오동통 살이 찌면 따서 먹고, 뚝방천에 알이 가득 찬 삐삐 뽑아 먹고, 검붉게 익은 오디는 주둥이가 보랏빛이 되었고, 소나무껍질을 벗겨 낸 얇은 속껍질은 껌같이 질겅질겅 씹을 수 있었답니다. 보리깜부기 뽑아먹고 입이 시커멓게 변해 친구들과 서로 쳐다보며 웃음 지었고, 칡뿌리 캐서 씹고, 쑥 뜯어 딩기 쳐서 나온 싸라기 곱게 빻아 쑥버무리도 해 먹었습니다. 우리가 고무줄놀이를 하면 남학생 슬쩍 달려와 고무줄 끊어 버리고, 오빠들이 많아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참외밭 수박밭 서리를 했고, 동네 사랑채에 모여 앉아 훔쳐온 것을 먹으며 친구들과 모여 앉아 밤새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여름이면 동네 처녀들 개울에서 멱 감는 것 몰래 훔쳐보며 가슴 설레었던 때가, 흙먼지 일구고 달려가는 트럭 뒤꽁무니에 매달려 흙먼지에 뒤범벅되곤 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냇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물고기를 손으로 잡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아이와 공통된 점은 각 집집이 소 한 마리는 기본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소를 끌고 산으로 가 꼴을 뜯어먹게 하고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네 아이들과 총싸움과 자치기 숨바꼭질 땅따먹기 등의 놀이를 즐겼습니다. 해가 산 너머로 질 때쯤이면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엇이든 귀한 것이고, 고마운 것이었고,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어릴 적 그 풍경 속, 삶에는 내가 가면 뭔가 먹을 게 있었고 즐거웠기 때문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가난을 극복한 지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도 그런 친구들과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시절 "보릿고개" 얘기로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에 무슨 보릿고개냐며 고개를 흔들지만 우린 보릿고개의 끝에서 그 시절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자식을 키우는 어른으로 변해있지만 주위의 고추 친구들은 그때의 마음 그대로를 변함없이 지켜가며 힘겨워할 때나 즐거울 때 늘 우정으로 함께하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 기름기 철철 넘치는 음식, 곱고 부드러운 옷,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살림살이로 풍족함으로 가득찹니다. 하지만, 못 배워도 부끄러운 것이 없고, 아무리 배고파도 이웃 생각을 먼저 했고, 먹을 것이 생기면 부모 자식이 마음에 걸려 허리춤에 숨겨 왔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오늘따라 친구가 많이 보고 싶어집니다.
나도 이제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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