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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하다.

by 홈쿡쌤 201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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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하다.

(시아버님 제사 절로 모시게 된 아픈사연)


오랜 전통으로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제사문화를 단번에 바꿀수는 없습니다.
며칠 전, 아주 조용한 사찰을 다녀왔습니다.
지인이 전화를 하여 따라 나선 길이었습니다.
"오늘 아버지 제사잖아! 같이 갔다 올래?"
"형제들 안 왔어?"
"왔으면 내가 뭐하러 너랑 같이 가자고 하겠니?"
아이 둘 학교 보내고 남편도 볼일 있다며 나가고 나니 혼자였습니다.
"알았어. 금방 챙겨 나갈게."

지인은 결혼한 지 25년 되었고, 셋째 며느리입니다.
신혼부터 큰며느리처럼 아무 말 없이 제사를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잘 해오던 그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는 키울 때 큰아들 작은아들 구분하여 키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큰 아들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재산은 물려받고 싶고 제사는 지내지 않고 싶은 고약한 심보를 가졌기에 더 흥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인의 큰아들은 의사, 둘째 아들은 약사, 셋째 아들인 남편은 회사에 다니다 명퇴를 하고 집에서 아픈 어머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건강할 때에는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제사상도 봐왔지만 어머님 건강이 쇠약해지자 며느리인 지인에게 모든 걸 다 맡겨버렸습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큰며느리 노릇을 잘 해 왔습니다. 자신의 퇴직금까지 아주버님에게 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마저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시아버님의 제사를 절에서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절에서 모시는 1회 비용 30만 원의 돈은 다 같이 부담하고 있지만 결국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절에도 찾아오지 않는 형제들이 야속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지낼 때에는 그래도 오곤 했는데."
"이젠 마음 비우고 네 건강이나 생각해."

제가 지인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집안 사정이 저와 꼭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속이 상해 전화를 하면
"아무 말 말고 그냥 해."
"만약, 친정 올케가 엄마 아버지 제사 못 지내겠다고 하면 넌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우린 아직 건강하잖아."
"발버둥쳐도 안 되는 것은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여라."
부처님처럼 마음이 넓은 분이었습니다.






그런 지인이었는데 이제 많이 아픕니다.
나 또한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시아버님의 제사를 모신다고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형부는 야단야단입니다.
'뭐하러 고생을 사서 하냐'
그렇다고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속상하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기에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 이해인 글, <1%의 행복> 중에서 -


서로 비슷해 보이는 삶을 살면서도
어떤 이는 불행하다 여기고
어떤 이는 행복하다 여깁니다.
아마도 소소한 일상의 무게 1%를
어느 쪽에다 올려놓고 사는 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둘은 잔잔한 미소로 내려다 보고 계신 부처님을 보며
차분하게 앉아 기분을 달래봅니다.

1%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그래도 넌 건강하니 나보다 1% 더 가졌잖아!"
그 한마디에 난 모든 걸 내려놓고 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시누의 후원과
두 동서의 따뜻한 마음이 있으니 말입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걸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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