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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추억어린 하숙집이 사라진다?

by 홈쿡쌤 2008.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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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어린 하숙집이 사라진다?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다행히 딸아이가 대학을 합격하여 서울까지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기숙사에는 성적순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방을 구해야 된다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학교 근처 하숙은 어때?"
"딸아이가 하숙은 싫다고 하네."
"왜?"
"모르지, 원룸 얻어 달라고 하니 말이야."
"서울이라 만만찮을 텐데?"
"보증금 주고 월세도 있고, 아예 전세도 있고 그러네...."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다."
"요즘 애들, 하숙보다 원룸을 선호하는 건 개인주의 때문인 것 같애."
"뭐? 개인주의?"
가만히 친구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야 형제들이 많이 서로 어울릴 줄도 알고, 양보할 줄도 알지만,
지금은 하나 둘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라 모두가 공주요 왕자이기에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하숙을 하면 주인집 어른들의 눈치도 봐야하고, 불편한 건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원룸은 어디 그렇습니까?
친구를 만나고 다니다 보면 새벽녘에 집을 찾아도 열쇠하나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편안합니까.

멀리 딸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매우 어수선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학교 가까이 하숙을 시켜보려고 찾아가니 월 40만 원 선이었고, 방은 많이 비어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우우죽순으로 빌딩처럼 올라가고 있는 원룸에 밀려서 하숙집도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고 하나 봅니다.

"아름다운 하숙집의 추억도 사라질 것 같아."
"그렇구나."
이 친구는 여고 때 하숙을 하면서 주인집 오빠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 사연이 있어 그런지, 그 말을 하면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마. 핸드폰이 있으니 전화 통화 자주하면 되지."
세상 밖으로 내 놓는 딸아이이기에 걱정이 많이 앞서나 봅니다.
어쩌겠습니까?
물 흐르는 데로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어디 사라지는 것이 하나 둘이겠습니까.
그저 아쉬움만 남을 뿐이지요.


친구가 하숙하던 집에 놀러 갔을 때의 분위기는 꼭 우리 집 같은 생각이 들게 해 주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인자하신 성품으로 식사 시간이 되어 들어가도 “숟가락 하나마나 올리면 되는데 어서와...” 하셨던 엄마 같은 마음....

낯모르는 이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잠시 머물던 집에 불과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원룸과는 달리 사람 냄새가 새록새록 솟아나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하숙집이라야 허름한 게 대부분이었지만 하숙생들 간에 정이 두텁고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밤늦게 들어와도 물렸던 저녁상을 차려주며 건강 걱정도 해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70∼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우리들에게는 하숙집은 더욱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주인아주머니가 자기 사윗감으로 점찍어 뒀던 학생은 ‘특별대접’을 받았었고, 다른 학생들 몰래 당시 귀했던 달걀프라이를 따로 얹어주는 등 특식(?)을 챙겨주기도 했던...

대개 하숙집은 허름한 한옥에 ‘벌집’처럼 방이 여러 개 따닥따닥 붙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푸른 하늘과 별들이 훤히 보이는 마당이 있어 답답함을 못 느끼지도 못하였습니다. 요즘은 아파트에서 하숙생을 많이 치고 있습니다. 방 하나에 2명씩 보통 4∼6명이 주인과 함께 살면서 부대끼고, 낮은 천장이 짓누르는 갇힌 공간에서 살다보니 사람들 사이에 짜증만 공존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시설은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하숙생들 간이나 주인과의 관계는 철저히 계약관계여서 삭막하고, 또 하숙집보다는 원룸을 더 선호 해 자취집과 같은 개념이지만 예전과 같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닌, ‘사람들과의 단절’과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는 세태의 한 단면일 뿐인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는 공간은 없지만 혼자 사용하는 화장실, 싱크대 등 편의시설은 오히려 으리으리하고, 그 속에 랜 등 각종 첨단시설들이 들어서 컴퓨터로 너나할 것 없이 얼굴 없는 익명으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검색을 즐깁니다.

이처럼 컴퓨터를 통해 대화하는 상대와의 지리적인 거리만큼이나 하숙집에서 함께 동거하는 사람들 간의 미운 정 고운 정 조차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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