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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삼베옷 하나 걸치지 않고 떠나는 우리 인생

by *저녁노을* 201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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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옷 하나 걸치지 않고 떠나는 우리 인생, 많이 변한 장례문화



6월 9일 나를 정말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작은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잔뜩 흐린날씨는 사람의 기분까지 축 쳐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천에서 고향까지 내려오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우리는 바로 시골로 향했습니다.




시아버님의 산소에는 삐삐꽃이 활짝피어 하늘하늘 춤을추고 있었습니다.
넙쭉 업드려 인사를 드리고
"아버님! 저 왔어요."
"..............."
아마 엄첨 반겨줄 것이라 혼자 상상해 봅니다.

시아버님은 우리 아이 둘 키울 수 있도록 어머님을 우리집에 보내셨습니다.
아버님의 진지가 걱정된다고 하니
"나야 어른이니 괜찮아. 얼른 모시고 가라."
"..........."
주말마다 딸아이 때어놓고 훌쩍훌쩍 울며 떠나는 며느리가 보기 애처로워셨던가 봅니다.
그렇게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딸아이를 보게 되었고 주말에는 반찬을 만들어 국물은 냉동실에 얼리고 반찬도 만들어 놓고 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육남매나 되는 당신 아이들 키울때는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며 키웠는데 손녀는 등에 업고 이리저리 동네 한바퀴까지 하시는 모습에서 할아버지의 사랑이 넘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아왔기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퇴근을 하고 아이 둘 자동차에 태워 하루가 멀다하고 저녁길을 달려 2시간을 넘게 놀다왔습니다.
흉선암으로 아파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시면서 손녀와 손자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녀석들을 보는 순간만은 자신의 아픔도 잊어버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난 뒤 49제 까지 꼬부랑 길을 달려가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리고 절을 올렸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 절반이라도 되돌려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럴때마다 가까이 살고계신 작은 어머님이 찾아와
"아이쿠! 우리 질부 왔나?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우리집안에 들어왔을꼬!"
"작은 어머님! 자꾸 그러시지 마요. 부끄럽게"
 "와! 내가 없는 말 하나?"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시며 예뻐해 주셨습니다.





시댁에 가면 작은 어머님은 농사지은 것을 머리에 이고 와 챙겨주기 바쁩니다.

요즘 같으면 금방 캤다며 감자를,
신문지에 싼 부추를,
많이 얼렸다며 오이와 가지를
된장에 찍어먹어보라며 풋고추를
깨소금볶아 먹으라며 참깨를
정성껏 많이도 챙겨주셨던 작은 어머님이십니다.





그러던 몇 해 전, 뙤약볕에서 혼자 일을 하다 갑자기 뇌졸증이 찾아와 한 쪽이 마비되어 요양원 신세를 졌습니다. 아들이 멀리 있다보니 인천까지 모시고 가 버려 얼굴조차 뵐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잘 지내는 동서간이라 어느 날인가 시어머님을 작은 어머님이 계신 요양원에 한 번 모시고 갔더니 두 동서는 손을 맡잡고 펑펑우시는 바람에 곁에서 따라 눈물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89세, 건강하시지 못한 몸으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고 편안한 곳으로 가시길 염원하였습니다.
동네 정자나무 앞에 상을 차려놓고 예를 표합니다.




 


안락공원에서 화장을 하여 한 줌 제가 되어 땅에 묻혔습니다.
번거로운 꽃상여도 없이,
슬픈 상여소리도 없이,
수의(삼베옷) 하나 걸치지 않고,
걸어오셨던 길목 음식을 차려 곳곳에 제를 지내는 것도 없이,
가볍게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우리의 인생이었습니다.
많이 간소화 되고 변한 장례문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작은 어머님
작은 아버님과 나란히 손잡고 편안하시길 빕니다.

작은 어머님이 주신 큰사랑 늘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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