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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가슴 먹먹했던 플래카드
온 세상에 비통함에 빠져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째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국민, 구조대원들, 실종자 가족 모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기대했던 생존자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사망자 숫자만 점점 늘고 있습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박한 순간에 유일한 지침인 안내 방송만 믿고, 이를 그대로 따른 학생들은 아직도 대답이 없습니다.
사고 당시, 세월호 운항은 경력이 짧은 3등 항해사와 조타수의 손에 맡겨졌고 선장 이준석 씨는 자리에 없었다고 합니다. 배가 기운 지 한참이 지나서야 조타실에 나타났고, 침실에 있었다고 하지만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몇 초 안에 조타실로 올 수 있고, 항해사와 조타수의 대화도 들을 수 있는 5m밖에 되지 않는 거리라 '잠시 침실에 갔다'는 이 선장의 주장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선객들을 외면하고 밖으로 먼저 탈출한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기관사 등 선박 운항과 승객 안전을 책임진 선원 15명은 모두 생존했습니다.
어스름이 짙은 21일 새벽 네 시 반, 안산 단원고 강민규 교감 선생님의 마지막 길을 떠나셨습니다.
수학여행 인솔자였던 교감 선생님은 세월호에서 구조되었지만, 학생들과 교사들을 남기고 혼자 구조됐다는 사실을 힘들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남긴 유서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라고 괴로워 한 심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안타까운 선택이 세월호의 슬픔을 더 아프게 합니다.
나만 먼저 살겠다고 도망쳐 나온 선장과 직원들
살아남았어도 양심의 가책으로 이 세상을 등진 교감 선생님,
정말 비교되는 두 개의 마음의 크기로 다가옵니다.
어제저녁, 남편과 함께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어? 여보! 저 현수막 좀 봐!"
"응. 몰랐어?"
".............."
2011년 새내기로 발령을 받은 일어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취업하기 힘든 요즘 아버지 없이 엄마 손에서 자라 열심히 공부하여 교사가 되었고
행복하게 살아갈 일만 남았는데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후배들의 간절한 기도
아니, 온 국민의 애절한 기도 듣고 있을까?
절망의 한주를 살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희망의 소식들이 날마다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고인과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분들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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