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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오빠의 이름 석자가 제겐 늘 눈부십니다.

by 홈쿡쌤 2008.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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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이름 석자가 제겐 늘 눈부십니다.

 

 막내로 자라면서 동생이 그리웠던 내게 조카가 생겼습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주말이면 시골로 와 함께 놀았던 그 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찌 그렇게 귀엽고 예쁘던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놀다가 아이를 물에 빠뜨려 많이 놀랐던 기억도 있고  이러 저리 데리고 다니며 친구들한테 은근히 자랑도 했었습니다.


  2008년 12월 13일 너무 기쁜 날이었습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조카는 막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선녀처럼 보였습니다. 서른여섯의 늦은 결혼식을 올리면서 사랑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예식장을 들어서지 못하고 작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참 복도 없지! 오늘 같은 날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

하객들의 입에서 큰오빠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습니다.


  한 집안의 큰아들로 살아간다는 건 하늘이 내리신 운명이라 여기며 사신 분입니다. 동생들 돌보기 위해 자신의 삶까지 뒤로 미루고 살아야했던.... 결혼이 자꾸 늦어지자 아버지는 “내 환갑 전에는 꼭 결혼 해!” 하고 엄명이 떨어졌건만, 연예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어렵게 동료직원의 소개로 맞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빠나이 33살, 올케나이 30살, 내가 중학생이었던 그 시절에는 서른을 넘기면 노총각 노처녀에 속하였고 결혼을 포기한 나이였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이웃학교에 근무하면서 몇 번의 만남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큰올케는 6.25때 친정엄마가 자식들만 데리고 남한으로 피난 온 분이었습니다. 큰올케 역시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기에 결혼은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던....


둘이 뜻이 맞아서 그랬을까요? 그렇게 올케의 가족들과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여고 때부터 유학 온 우리 가족들이 모여 대가족을 이루면서 한 집에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농사지은 것 보내주는 쌀이 전부였고, 학비는 고스란히 큰오빠 몫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큰오빠 품에서 다니고 나면 각자 대학은 스스로 알아서 선택해 다녀야했던 그 시절.....


육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나자 오빠는 우리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시집을 갔어도 늘 엄마 아버지처럼 챙겨주셨던....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건히 잘 견뎌내시던 오빠가 환갑의 나이에 편안하게 살만할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딸 둘 아들 하나를 올케한테 맡긴 채....

아빠를 닮아서 그럴까요? 연애라고는 모르고 직장만 다니더니 인연이 따로 있었던지 세살 연하의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 것입니다.


남편이 알아서 척척 다 해 주었던 올케는 딸아이의 청첩장 100장을 인쇄 해

‘이걸 어디다 다 보내야 하나?’ 하고 손에 들고 앉아 고민만 하고 있었습니다.

절친한 오빠의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딸아이의 결혼식을 알렸더니 한 걸음에 달려와 청첩장을 가져가셨고, 또 200장을 더 인쇄해서 보내라고 하신 것을 봐도, 오빠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분이었음을 입증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 막 결혼식이 시작되자,  서울에서 거제도까지 결혼식 하루 전, 한 걸음에 달려왔던 바로 내 옆에 앉은 조카의 이모는

“형부가 계셨으면 정말 좋아 하셨을 텐데...”하시며 눈물을 연신 닦아내자 나 역시 가슴속 깊숙이 끓어오르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복이 그렇게 없어서는...”

훌쩍훌쩍 오빠의 큰 그늘에서 보낸 사촌형제들까지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난 뒤, 2시간 쯤 지났을까?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시는 젊은 분이 있었습니다. 예식장과는 다르게 시간에 쫓기지도 않아 느긋하게 폐백을 드리고 있는데,

“저~ 여기 교장선생님 따님 결혼식 맞죠?”
“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얼른 뛰어 가 올케를 불러 인사를 시키니

“사모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00학교에서 교장선생님 도움 많이 받았던...”
“아~ 예~”

“죄송합니다. 어딜 갔다 오면서 시간을 맞추질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 분은 오빠의 제자로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초년생인 그에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오빠였었나 봅니다. 그냥 남에게 축의금을 부쳐도 되었지만, 오빠의 베풀어 주심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달려왔다고 하셨습니다.

“..............”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즘 사람답지 않게 인사를 할 줄 아는 젊은 선생님을 보니 곧고 바른 성품은 꼭 둘이 닮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난 ‘큰 오빠’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당신의 그늘에서 편안한 쉼을 누렸던 사람들로 인해 그 진가는 빛이 납니다.


오빠의 이름 석자가 늘 제겐 눈부시기까지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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