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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소리없이 내리는 봄비처럼 '참 따뜻한 세상'

by 홈쿡쌤 2009.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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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부산하게 움직이며 준비하는 아침은 늘 바쁘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들 녀석 학교까지 태워주고 출근하는 20-30분간은 라디오와 함께 합니다. 여고시절에는 듣고 싶은 음악과 함께 사연을 엽서에 적어 보내면 내 이름이 방송되던 추억을 되새기며 말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자판기를 두드려 게시판을 이용해도 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가슴 훈훈하게 했던 사연을 들은 대로 적어 봅니다.


 

어제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장염을 앓아온 아이가 어제따라 유난히 보채더군요. 하루 종일 잘 먹지도 못하고 입에 손만 대도 자지러지기에, 혹시나 하고 아이의 입속을 살펴보니 윗니 안쪽이 심하게 짓물러 있는 게 보이더군요. 치아 뿌리 쪽이 노랗게 곪아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새어나옵니다. 며칠 전, 방바닥에 얼굴을 부딪치며 넘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아무래도 뭔가 잘못 다쳤던가 봅니다. 그저 얼마 전부터 앓아온 장염 때문에 보채는 줄만 알았는데 입안을 보고나니, 머리속이 하얗게 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유치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가 싶어 아이를 둘러업고 큰아이는 손에 잡고 병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동네 병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아이는 등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고 열려 있는 병원문은 없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 허둥지둥거리다가 혹시나 하고 약국에 들어갔습니다.

“인근병원이 다 문을 닫아서 그런데 아이입속을 좀 봐 주세요”

“전철역 근처에 ㅇㅇㅇ 소아과는 7시30분까지 하니까 그쪽으로 빨리 가보세요.”

“어! 저기 택시 있네. 어서어서~”

시계를 보니 7시 택시를 잡아타고 ㅇㅇㅇ소아과로 향하였습니다.

아직 어린 작은 아이도 엄마의 긴장감을 느꼈는지 울음소리는 더욱 커지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걱정이 앞섰고, 정말 소아과까지 가는 그 5분이 마치 5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얼른 소아과까지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겨우 접수를 하고 의사선생님께 아이를 보였습니다. 다행이 곪아서 그런 것 일 뿐 약만 잘 먹으면 괜찮다고 유치 뿌리 쪽에는 아무 이상없다고하셨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료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까 새댁이 타고 온 택시운전기사분이 손을 흔들며 부르고 있었습니다.

".애기 엄마, 드디어 찾았네. 이거 거스름돈, 아무리 정신없다고 거스름돈도 안 받아 가면 어째요? 애기는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리고 아저씨가 내미는 손안에는 택시비 거스름돈 2,200원이 놓여 있었고,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새댁이 내린 병원건물밖에 차를 세워두고 계속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의 진료도 무사히 받고, 택시아저씨의 따듯한 마음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까 소아과를 알려준 약국에서 약사 선생님이 새댁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달려나와

“애기엄마. 아기는 괜찮대요?"라고 또 한마디 건네주십니다.





 

아이가 아파 달리고 있는 동안에도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함께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연을 들으며 운전을 하면서 벌써 가슴은 훈훈해져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게 꾸며져 가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라고 해도 세상 여기저기 숨어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가 심한 가뭄을 해갈해 주고,  메마른 가지에 새싹을 돋게 해 주는 것처럼,

오늘 아침, 라디오 전파를 타고 온 세상으로 울러 퍼지는 사연은  내 마음까지 포근해지게 하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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