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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촌지

by 홈쿡쌤 2009.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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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학교에는 등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촌지’에 대해 세상이 워낙 시끄럽다 보니 ‘나의 스승 찾아뵙기와 교재연구’라는 자율연수를 내었고 학생들은 집에서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썩 즐겁지만 않은 씁쓸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항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곤 합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었습니다. 특히나 예부터 '유교사상'에 물들어 있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선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 집에서 한둘뿐이니 모두가 왕자요, 공주들이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종종 주변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학교 선생은 더는 '인생의 스승'이 아닌 '점수의 스승'이 돼버렸습니다. 이 같이 교권이 땅에 떨어진 이 시점에서 '스승의 날'에 학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까?


현재는 이렇게 초토화된 교권이지만 우리가 학생일 때만 해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반항을 한다 해도 가벼운 말대꾸가 전부였고 마지막에는 꼭 선생님과 훈훈하게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점점 나이 들어가다 보니,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말썽부린 아이들이 꼭 먼저 생각나고 학생들 처지에서는 엄하게 꾸짖는 선생님이 먼저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고 하던가? 결국 나중엔 아련한 추억이 돼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사제지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늘 따라다니는 게 선생님에게 무슨 선물을 드릴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촌지'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재학 중인 학생들은 그저 선생님의 은혜에 대해 간략한 편지와 케이크 등으로 때워도 싫다 할 분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 딸아이의 학교는 사립입니다. 머리도 옷깃 밑 2cm 이상 내려와도 안 되고, 신발도 흰 것 아니면 검은색, 양말 또한 반양말도 못 신게 하는 규제가 심한 편입니다. 3학년이 된 딸아이 신학기에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온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합니다.

“엄마! 내일 선생님 오실 거야.”
“뭐? 집에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왜와?”

“없어도 괜찮으시데. 그냥 공부하는 환경만 보고 가신다고.”

“1, 2학년 때에는 안 오셨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쏘아붙입니다.

“왜 넌 네 맘대로야?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아빠아~”

“가정방문을 꼭 와야 하는 이유를 말해 봐.”

상담이야 학교에서 해도 충분히 된다는 말을 하니

“엄마!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가정방문을 하면 어떻게 하시는지 느껴보고 싶단 말이야.”

우린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릴 때 선생님의 가정방문은 설렘 그 자체였으니까.

“근데, 선생님 오시면 뭘 드려야 할지 고민이네.”

“엄마! 그건 걱정하지 말래.”
“왜?”
“선생님이 보리차 한잔만 준비하면 된다고 하셨어.”

“정말?”
“응.”

담임선생님은 30대 중반이신데, 그렇게 말씀하실 줄 정말 몰랐습니다. 보리차 한잔의 대화,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이보다 더 값진 것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부담 없는 가정방문을 하고 가신 선생님입니다.


어제는 잠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전화번호를 보니 딸아이의 담임이었습니다. 너무도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엄마! 나야~”

“엥? 왜?”
“내일 체육대회인데 부회장이랑 전교생한테 아이스크림 돌릴 건데 사 줄 수 있어?”

“으응, 그러지 뭐.”

“고마워 엄마. 공부 열심히 할게.”

딸아이가 전교회장인데도 아직 학교에 한번 찾아가 보질 못했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떡과 수박을 조금 가져다주겠다고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에는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립니다. 전교회장인 딸아이가 부회장을 데리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아이스크림을 돌리고 싶다고 말을 하자,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어. 학생부장님과 의논해 볼게.” 하셨고 각 부장선생님들과 간부들이 한자리에 앉아 의논했다고 합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걸려오더니

“엄마! 아이스크림 주문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아.”
“왜?”
딸아이의 말은 선생님들이 다시 회의를 했는데, 스승의 날인데 이것저것 받았다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하시며 그냥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와! 너희 학교 샘들 짱이다.”
“원래 우리 선생님들이 좀 멋지지.”

기왕 마음먹은 것 큰 부담 없이 대접해 드렸으면 좋으련만, 굳이 받지 않겠다는 선생님들입니다. “그럼 카네이션 하나 사 가야지.”

“그것도 하지 말래.”

진심어린 아이들 축하까지 받지 않겠다는 말에 그 씁쓸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밤늦게 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장문의 편지를 써 가는 딸아이를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 하였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승의 날이면 늘 ‘촌지’로 존경받을만한 선생님까지 몸살을 앓고 도맷값으로 넘어가 버리는 아쉬움이 가슴속에 남습니다.


값비싼 선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나의 마음만은 크게 받겠다는 선생님을 보니

이것이 바로 서로의 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촌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딸아이의 학교,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믿고 맡길 만 하지 않은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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