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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시어머님과 함께 찾은 추억의 가설극장

by 홈쿡쌤 200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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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과 함께 찾은 추억의 가설극장
 

요즈음은 영화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길만 나서면 시설 좋은 영화관에서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한 극장에 열 개 이상의 스크린 규모를 갖추고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체음향시설에 안락한 의자, 넓은 스크린, 영화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우린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혼자 살고 계시는 시어머님댁을 찾았습니다. 이것저것 시장을 봐서 국물을 만들어 놓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여보! 오늘 저녁에 학교에서 워낭소리 영화 한다는데 우리 저녁 먹고 갈까?”

“난 그 영화 봤어. 극장에서. 그리고 집에 가서 아이들도 챙겨야지.”
“응. 7시부터 영화 상영한다 카더라.”

은근히 가고 싶은 눈치여서 얼른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어머님 모시고 갔다 오죠 뭐.”

혼자서 어딜 나서지 못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저녁을 먹고 차를 가지고 남편이 다닌 중학교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문화생활을 누리며 산다는 건 생각도 못하는 시골어른들이라 부녀회에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막 들어서니 떡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어릴 때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추억이 온몸을 타고 흘러들었습니다.



 

 우리가 유년시절을 보낸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엔 늘 기다려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고향은 긴 침묵을 깨고 생동하는 모습으로 바뀝니다. 연초록 들판에서 적삼차림으로 일하시는 아버지, 새참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엔 막걸리

주전자를 든 엄마, 울어대는 종달새, 코뚜레에 이끌려 밭갈이에 동원된 큰 눈망울의

소, 책보 끼고 학교 가는 어린이들, 이런 분위기를 비집고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시커먼 트럭 양옆으로 페인트로 그린 영화포스타를 걸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가설극장”이 왔음을 알립니다.


“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면민 여러분! 여기는 00영화사 선전반입니다.

 오늘부터 앞 거랑 갱밴에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눈물 없이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미워도 다시 한번>을 가지고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영화 선전원의 애절한 목소리에 모두들 흥미롭고 왠지 모를 호기심에 마음이 설레곤 했습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몇 집 없었던 시절, 그야말로 가설극장은 청춘남여 뿐만 아니라 모든 고향 사람들의 유일한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이면 동네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강변을 찾았습니다.


 극장이라야 강변 자갈마당에 긴 장대를 둥글게 둘러가면서 말뚝을 박고 흰 광목으로

두르고, 정면에 하얀 스크린을 세우고 반대편에 영사기를 설치하면 훌륭한 극장이 됩니다.

지금 기억으론, 그때 가설극장 입장료가 어른이 10원, 어린이가 5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영화는 보고 싶고 돈은 없고 책보를 뒤집어쓰고 포장 밑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건장한 청년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걸리면 쫓겨나올 요량으로 이쪽저쪽을 동시에 들어가면 한쪽은 잡히고 다른 쪽은 성공했습니다. 그건 특히나, 4명이나 되는 오빠들의 장난에 뒷구멍으로 들어가 몰래 보는 재미를 누리곤 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좌석표도 없고 의자도 없이 그저 먼저 들어가서 좋은 자리를 골라 앉으면 되었습니다. 번들거리고 흔들리는 스크린에 눈을 박고 함께 울고 웃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쿵쾅 거리만 합니다. 그렇기에 가설극장은 눈깔사탕도 하얀 엿가락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동심을 사로잡는 별천지였습니다. 가설극장은 어린 시절 내게 많은 꿈을 주고 감성을 키워준 고마움의 대상이었답니다.


지금은 83세, 많이 허약하고 우리의 손길 없으면 혼자 지내시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2006년 12월 어머님을 모시고 손자들과 함께‘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보고 나오시면서,

“내 생전 처음 와 보네. 우리 손자들 때문에 호사 누린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오랜만에 보는 영화 ‘워낭소리’는 어머님이 살아오신 인생과 비슷하기에 더욱 공감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시설 좋은 영화관은 아니지만, 운동장에 나란히 한 담요를 덮고 앉아 있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재미있었어요?”
“오냐. 네 덕분에 좋은 구경 했네.”

“호호. 제 덕분이 아닙니다.”

“그래도 네가 안 데리고 오면 어디서 이런 구경 하겠노. 고맙다.”

초여름 밤,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으로 감기나 들지 않을까 걱정되어 얼른 모시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님을 위한 자리였지만, 아련한 추억여행을 할 수 있어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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