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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우리집이 추석을 거꾸로 보내게 된 이유는

by 홈쿡쌤 2009.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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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 추석을 거꾸로 보내게 된 이유는


 

  우리 시어머님은 83세로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6남매 애지중지 키우시느라 허리가 휘고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신 분입니다. 혼자 끼니조차 끓여 드시지 못해도 아들 집보다 텃밭과 친구가 있는 시골이 좋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주말이면 찾아뵙고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반찬을 해 드리고 오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늘 안부가 걱정되어 통화하는데 꼭 곁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어머님! 옆에 누가 놀러 오셨어요?”
“아니. 작은어머니 동생이야.”
“아직 안 가셨어요?”
“응. 나 혼자 지내기 쓸쓸하다고 안 가고 있네.”

가만히 말을 들어보니 사돈 어르신이 함께 지내는 게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효자 아들인 인천삼촌이 어머님의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형수님! 그냥 그 사돈어른 엄마와 함께 지내게 하면 안 될까요?”

“글쎄요. 한번 여쭤보죠. 뭐.”

“용돈은 제가 드릴게요.”

알고 보니 사돈어른도 아들 집에 살면서 살림은 그닥 넉넉하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을 어머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인천 삼촌이 다달이 많지는 않아도 용돈을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돈어른은 경로당에 마실을 나가시고, 어머님 혼자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막내아들이 사 온 오리고기를 가스불에 올리지 않고 작은방 솥에 고와 먹기 위해 불을 지폈던 모양입니다. 부엌에는 추석 때 와서 군불을 넣으라며 부지런하신 사돈어른이 산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가득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머님이 지키고 앉아 불을 때야 하는데 나뭇가지를 아궁이에 넣어두고 방안으로 들어가셨나 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불길은 전기 변압기까지 붙어 후두둑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돗가로 가서 물을 한 바가지 들고 와 부어 보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경로당에 놀러 가셨던 분들이 모두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불길을 보고

“불이야! 불이야!” 소리를 질러도 시골에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누군가 119에 신고했지만, 도시에서 시골까지 거리가 있으니 소방차가 달려온 건 30분이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옛날에는 불이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물을 옮겨 불을 꼈지만 이제 시골에는 노인들뿐입니다. 변변한 소방차 하나 없는 것도 도시와는 다른 시골에서 느끼는 소외감이었습니다. 다 같이 누려야 하는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필 그날은 남편이 차를 가지고 멀리 출장을 가 버리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불이 났다는 전화는 받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갑갑하기만 했었습니다. 김해에 사는 막내 삼촌이 달려와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쿠! 이럴 어째! 내가 죄를 저질렀다.”
“어머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죽도 안 하고 이 일을 우짜믄 좋노?”

꼬부랑한 허리 펴지도 못하고 흐느끼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남루한 모습, 불통이 튀어 구멍 난 셔츠에 흰 고무신이 어머님이 가지신 것 전부였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조퇴를 내고 막내 삼촌과 함께 시골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정말 화재가 나면 그렇게 되는 줄 몰랐습니다. 스레트 지붕 위에 함석으로 덮어 소방차가 아무리 물을 뿌려도 불길이 잡히지 않아 포크레인으로 아예 집를 밀어버렸던 것. 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재도구, 냉장고도 세탁기도 다 타버렸으니 말입니다. 숟가락 하나 건질 것 없고, 남은 건 쓰레기 더미만 가득하였습니다. 그 관경을 보고 있으니 정말 막막하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어머님의 양말, 옷가지를 사 들고 한걸음에 달려온 하나 밖에 없는 고명딸인 시누.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망연자실합니다.

“그냥, 엄마가 안 다쳤으니 다행으로 생각하자.” 하면서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유교사상이 베여 있는 우리 어머님 걱정이 태산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흉을 얼마나 볼까?’

‘내일모레면 추석인데 차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추석이면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참기름 짜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토란대 고구마 줄기도 가을 햇살에 말려 놓았는데 모두 불에 타 버렸으니 그 재미도 이제 잃어버렸습니다. 다 내어주고도 또 주게 싶은 게 어머님 마음일 텐데 말입니다. 멍하니 앉아 한숨만 내 쉬는 어머님이 정말 불쌍해 보입니다.


 늘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혼자 지내시겠다는 자존심 강한 어머님인데 살 곳조차 잃어버렸으니 그 마음 오죽하실까. 다 내려놓고 마음 편안하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옷에 실수까지 하시고 어차피 당신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이번 추석은 마음이 어수선하여 거꾸로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형제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 간단하게 음식 장만해 산소나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흙을 밟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게 고향 찾는 즐거움인데 말입니다.


 

모두가 고향 떠난 타향살이를 하면서 명절이면 찾곤 하는데 어머님이 기력은 쇠약해 지고 시골에는 아무도 들어가 살 형제가 없으니 고향조차 영원히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고향집 고갯마루만 머리에 그려도 어머님이 보였었는데...


‘어머님! 기운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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