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이 추석을 거꾸로 보내게 된 이유는


 

  우리 시어머님은 83세로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6남매 애지중지 키우시느라 허리가 휘고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신 분입니다. 혼자 끼니조차 끓여 드시지 못해도 아들 집보다 텃밭과 친구가 있는 시골이 좋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주말이면 찾아뵙고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반찬을 해 드리고 오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늘 안부가 걱정되어 통화하는데 꼭 곁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어머님! 옆에 누가 놀러 오셨어요?”
“아니. 작은어머니 동생이야.”
“아직 안 가셨어요?”
“응. 나 혼자 지내기 쓸쓸하다고 안 가고 있네.”

가만히 말을 들어보니 사돈 어르신이 함께 지내는 게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효자 아들인 인천삼촌이 어머님의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형수님! 그냥 그 사돈어른 엄마와 함께 지내게 하면 안 될까요?”

“글쎄요. 한번 여쭤보죠. 뭐.”

“용돈은 제가 드릴게요.”

알고 보니 사돈어른도 아들 집에 살면서 살림은 그닥 넉넉하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을 어머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인천 삼촌이 다달이 많지는 않아도 용돈을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돈어른은 경로당에 마실을 나가시고, 어머님 혼자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막내아들이 사 온 오리고기를 가스불에 올리지 않고 작은방 솥에 고와 먹기 위해 불을 지폈던 모양입니다. 부엌에는 추석 때 와서 군불을 넣으라며 부지런하신 사돈어른이 산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가득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머님이 지키고 앉아 불을 때야 하는데 나뭇가지를 아궁이에 넣어두고 방안으로 들어가셨나 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불길은 전기 변압기까지 붙어 후두둑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돗가로 가서 물을 한 바가지 들고 와 부어 보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경로당에 놀러 가셨던 분들이 모두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불길을 보고

“불이야! 불이야!” 소리를 질러도 시골에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누군가 119에 신고했지만, 도시에서 시골까지 거리가 있으니 소방차가 달려온 건 30분이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옛날에는 불이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물을 옮겨 불을 꼈지만 이제 시골에는 노인들뿐입니다. 변변한 소방차 하나 없는 것도 도시와는 다른 시골에서 느끼는 소외감이었습니다. 다 같이 누려야 하는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필 그날은 남편이 차를 가지고 멀리 출장을 가 버리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불이 났다는 전화는 받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갑갑하기만 했었습니다. 김해에 사는 막내 삼촌이 달려와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쿠! 이럴 어째! 내가 죄를 저질렀다.”
“어머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죽도 안 하고 이 일을 우짜믄 좋노?”

꼬부랑한 허리 펴지도 못하고 흐느끼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남루한 모습, 불통이 튀어 구멍 난 셔츠에 흰 고무신이 어머님이 가지신 것 전부였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조퇴를 내고 막내 삼촌과 함께 시골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정말 화재가 나면 그렇게 되는 줄 몰랐습니다. 스레트 지붕 위에 함석으로 덮어 소방차가 아무리 물을 뿌려도 불길이 잡히지 않아 포크레인으로 아예 집를 밀어버렸던 것. 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재도구, 냉장고도 세탁기도 다 타버렸으니 말입니다. 숟가락 하나 건질 것 없고, 남은 건 쓰레기 더미만 가득하였습니다. 그 관경을 보고 있으니 정말 막막하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어머님의 양말, 옷가지를 사 들고 한걸음에 달려온 하나 밖에 없는 고명딸인 시누.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망연자실합니다.

“그냥, 엄마가 안 다쳤으니 다행으로 생각하자.” 하면서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유교사상이 베여 있는 우리 어머님 걱정이 태산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흉을 얼마나 볼까?’

‘내일모레면 추석인데 차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추석이면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참기름 짜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토란대 고구마 줄기도 가을 햇살에 말려 놓았는데 모두 불에 타 버렸으니 그 재미도 이제 잃어버렸습니다. 다 내어주고도 또 주게 싶은 게 어머님 마음일 텐데 말입니다. 멍하니 앉아 한숨만 내 쉬는 어머님이 정말 불쌍해 보입니다.


 늘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혼자 지내시겠다는 자존심 강한 어머님인데 살 곳조차 잃어버렸으니 그 마음 오죽하실까. 다 내려놓고 마음 편안하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옷에 실수까지 하시고 어차피 당신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이번 추석은 마음이 어수선하여 거꾸로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형제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 간단하게 음식 장만해 산소나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흙을 밟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게 고향 찾는 즐거움인데 말입니다.


 

모두가 고향 떠난 타향살이를 하면서 명절이면 찾곤 하는데 어머님이 기력은 쇠약해 지고 시골에는 아무도 들어가 살 형제가 없으니 고향조차 영원히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고향집 고갯마루만 머리에 그려도 어머님이 보였었는데...


‘어머님! 기운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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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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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행입니다. 그래도 어머님이 화를 당하지 않으셔서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노을님이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추석명절 만드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ㅎ

    2009.10.01 07: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둔필승총

    정말 기운내세요~~
    그래도 천만다행이군요.

    암튼 행복한 10월 시작하시고 풍성한 한가위 맞으세요~~

    2009.10.01 08:06 [ ADDR : EDIT/ DEL : REPLY ]
  4. 대보름 같은 넉넉함이 있는 추석이네요.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되세요.

    2009.10.01 08: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사랑초

    기운내세요.
    그만하기 다행이예요.

    2009.10.01 08:15 [ ADDR : EDIT/ DEL : REPLY ]
  6. 비밀댓글입니다

    2009.10.01 08:15 [ ADDR : EDIT/ DEL : REPLY ]
  7. 어머님이 화를 당하시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네요.
    불 때문에 집까지 다 밀어버릴 정도였다니 불이 집전체에 다 번졌나보네요.
    어머니 마음 안좋으시겠네요. 더구나 추석인데..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편안한 명절 되길 빌게요.

    2009.10.01 08: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기운내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정말 다행입니다.

    2009.10.01 0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역시나 우리네 부모님들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시어머님도 참으로 대단하시구요.
    기운내시구요. 그래도 명절은 명절답게 보내세요.
    즐겁고 복되게 그리고 다복하게 보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믿어요.
    액땜했다고 치시고 즐거운 추석명절 되세요.

    2009.10.01 09: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안타까운 이야기로군요.
    고향을 지키는 어머님이 있어서 좋았는데~ 고향을 잃어버린듯 하군요.

    암튼 가족들과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2009.10.01 09: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집이야 새로 지으면 되고 물건이야 새로 장만하면 되지만

    안다치셧는게 천만 다행입니다..

    정말 화를 면하셧네요.....모두 효자 효녀분이라서 즐거운명절 보내시리라 믿습니다^^

    2009.10.01 09: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화를 면하셨으니 다행입니다만...
    어머님 마음이 무척 아프시겠습니다.
    지붕 새로 해서 좋아라 하신 지가 몇년 되지 않았던 거 같은데...
    하지만 노을님의 따스함으로 많은 치유가 되실 것입니다.
    노을님의 수고가 아깝지 않도록 두루두루 풍성한 추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9.10.01 09: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어머니께서 안 다치셔서 다행입니다...
    어르신이라 놀라신 마음 오래가셨을텐데.. 지금은 괜찮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분들과 행복한 추석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9.10.01 09: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추석을 앞두고 이런 일이 생겼으니....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2009.10.01 09: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아이구 정말 큰일 날뻔 했습니다.
    정말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고향이점점 없어져가는 것도 아쉬운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가족과 함께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2009.10.01 11:51 [ ADDR : EDIT/ DEL : REPLY ]
  16. 어머나..한가위 앞두고 그런일이..
    어머님께서 화을 당하지 않으셨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노을님 힘내시고 한가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요..

    2009.10.01 12: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추석'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0.01 16:18 [ ADDR : EDIT/ DEL : REPLY ]
  18. 명절을 앞두고 이런일을 당하셨다니 안타깝네요.
    그래도 가족분들과 즐거운 한가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2009.10.01 18:04 [ ADDR : EDIT/ DEL : REPLY ]
  19. 휴... 큰일 날뻔 하셨네요...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에요 TT

    2009.10.01 20: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그래도 몸을 다치시지 않아 다행입니다. 상실감이 크실텐데...그 마음을 제가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늘 행복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장수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특히 명절날 나눠주려고 했던..그 마음 담긴 선물들을...--

    2009.10.01 20: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정말 큰일 겪으셨네요. 정말 안다치신게 천만다행이에요!
    그래도 명절만큼은 잊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께요!

    2009.10.01 23: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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