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 나
건강의 3대 요소를 꼽으라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싸고를 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 중에는 잘 먹고, 잘 자기는 하는 데 잘 싸지를 못해 고민인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시다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한 달이 넘어가는 83세 시어머님.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6남매 공부시키는데 다 쏟아붓고 남은 건 아픈 몸뚱어리뿐. 이제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휴일, 가을 햇살, 가을 바람이 유혹하건만 우린 밖으로 나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자꾸만 화장실로 향하시는 어머님.
"왜요? 어머님"
"응. 화장실에 가도 안 나온다."
우리가 걱정하던 배설하는 일이 잘 안되었던 것입니다.
녀석들 별미를 뭐로 해줄까 고민하다 참치김밥을 샀습니다.
어머님이 드실 수 있도록 최대한 작게 쓸어 드렸는데 그릇을 내 앞으로 당겨놓으며
"야야! 너도 먹어라."
"어머님! 저는 자투리 많이 주워 먹어 배불러요."
며느리를 걱정하는 우리 시어머님입니다.
그리고 또 모시고 왔다 갔다를 여러 번 하고 기운 없는 다리를 폈다 오므르기를 하고 연방 적셔내는 팬티 갈아입히고 씻기는데 어머님도 나도 지쳐버렸습니다.
"어머님! 그냥 내일 병원 가 봐요. 아무리 해도 안 되잖아요."
"그래 알았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은 훤한 시어머님, 며느리인 나에게 많이도 미안하신가 봅니다.
할 수 없이 딸아이가 사용하는 나이트 생리대를 이용했습니다. 몇 번을 갈아 끼우고 나서는
"여보! 안 되겠어. 마트 가서 기저귀 좀 사 와."
"그럴게."
당신 어머니이지만 대신 해 줄 수 없음으로 옆에서 보고만 있던 남편도 안쓰러운 표정입니다.
자꾸만 화장실에 앉아만 계시는 어머님, 안 되겠다 싶어 지어 짜듯 파내 보았습니다.
"어머님! 힘줘보세요."
한참 후에야 쑤욱 빠져나오는 덩어리를 보니 내 속이 다 시원해졌습니다.
하루에 세 번 먹는 약도 알이 10개나 됩니다. 두 번에 걸쳐 나눠 드시긴 하는데 쉽게 넘기질 못하니 머금고 있다가 밖으로 토해버리는 바람에 옷도 이불도 다 씻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잠시 후, 남편은 한마디 합니다.
"와! 당신 정말 많이 변했다."
"뭐가?"
"아이들 어릴 때 큰 것 보고는 ‘억억’ 하던 사람이었는데."
다른 엄마들은 자식 똥은 냄새도 안 난다고 하던데, 비위가 약한 탓인지 녀석들이 먹다 남은 밥도 못 먹어 남편이 먹어주었고, 실례를 하고 나서도 남편이 집에 있으면 꼭 나 대신 갈아 끼워주곤 했으니 말입니다.
"닥치면 다 하게 되나 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 자신도 모를 일입니다.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런 힘이 솟아났나 봅니다. 내일모레면 내 나이 쉰, 이제 나도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시원하시죠?"
"응. 니가 고생이 많다."
"................"
하루종일 누워만 계시는 어머님. 오늘도 남편이 점심을 차려주려고 집에 들어가서야 화장실로 향하는 어머님이십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터라 편안히 모시지 못하는 마음 어쩔 수 없어 남편에게만
"어머님. 어쩔거야?"
"이제 요양병원 한 번 알아봐야지."
"................."
정말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내가 모신다고, 요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스스로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먼저 말을 꺼낸다면 '모시기 싫어서 그런다.' 그럴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 역시 직장도 직장이거니와 척추 전위증으로 허리에 쇠를 심어야 하는 상황으로 어머님을 옮기고 들고 할 기운조차 쓸 수 없으니 더욱 걱정이 앞섭니다. 당신은 요양원 가는 일이 ‘자식들이 많은데 왜 내가 그런데 가?’ 라고 하시며 ‘신 고려장’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니 늘어놓은 빨래가 차곡차곡 접어진 채로 쌓여있었습니다.
"어머님! 빨래 개셨네."
"응. 심심해서 안 했나. 오늘도 고생 혔제."
"얼른 저녁 해 드릴게요."
나빠졌다 좋았다 하시는 어머님의 건강을 보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살다 가셨음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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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님 항상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빨리 어른이 되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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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답글
철들자 망녕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건강이 최고랍니다.
얼른 쾌차하시길 빌께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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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시어머니 건강 더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노을님 마음도 훨씬 편할텐데요. 어른들 건강 쇠약해져 가는 모습 보면 너무 걱정이 커요.
답글
정말 대단하신 듯...!!! 전 아직 꿈도 못 꿔요. 그런 일은...ㅠㅠ
시어머님께서 며느리의 정성에 건강하게 오래 사실 거라 믿어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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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시어머니가 며느리 복은 확실하게 타고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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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녁노을님......정말 노모 모시는일이 ......무한한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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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저녁노을님...참 대단하세요.
손수 시어머니 수발드시는 것, 쉽지 않으실텐데...
짝짝짝~ 좋은 일 많이 생기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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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생각 해보면 작년 친정 엄마가 그리 건강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고
그런데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던것 같습니다 당연 면역이 떨어졌겠지요..
오늘 글보고 또 울고 갑니다 ...주변 언니들은 니나이에 친정엄마가 계신 분이 과연 몇이나 되냐 어서 철들라고 그러지만 어디 친정엄마란 존재가 그리 쉽게 잊어지나요? 눈물나 눈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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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건강한게 제일 큰 복인거 같습니다.
저도 아버님이 편찮으시니 너무 힘들더군요.
일하시며 병구완 하시고..
너무 힘드시겠어요.
힘내시고 홧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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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답글
저도 현재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일흔이 넘으셔서 걱정이 됩니다. 재작년에 디스크수술도 한 차례하셨고, 오늘은 또 이를 하러 치과에 가셨는데...... 다들 사시는 동안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답글
노인들 모시고 사시는 분들의 애로사항을 이해가 갑니다.
저희 부모님들은 70대지만 90대의 노모를 모시는걸 보면 애초롭더군요.
답글
노을님도 허리가 안좋으신가봐요. 저도 몇년 의자에만 앉아 있어서 허리가 엄청 안좋았었는데.. 다행히 요즘은 운동으로 통해 좋아졌지만요.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답글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나이가 드시면 장도 힘이 약해지나 봅니다.
부모님이 계시니 남의 일이 아닌 듯 느껴집니다.
항상 힘내시구요~
답글
노을님 몸도 좋지 않으신데.. 부모님 모시면서.. 힘이 드시겠습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답글
정말 걱정이 많겠어요..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보내시기도..그렇다고 보살피시기도..몸이라도 안아프셔야될텐데..남이야기 같지가 않네요.. 힘내세요..
답글
정말 효성이 지극한 며느님이시군요.
노을님의 정성과 사랑으로
시어머님의 건강이 좋아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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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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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님 정말 효성이 지극하십니다..
닥치면 다 한다지만 마음이 없으면 잘 안되지요..
노을님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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