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가 되어 다녀간 시누이
어제는 퇴근하면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청소기는 밀어야지.’나 스스로 게으른 모습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몇 발자국 발을 옮겨보니 그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아무렇게 늘어두고 나갔던 부산한 아침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어머님! 누가 왔다 갔어요?”
“응. 아이들 고모가 왔다갔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늘어놓았던 빨래도 차곡차곡 개어 정리해 놓았고, 며칠 전 시누이가 어머님 겨울옷을 사서 택배로 보내왔것도 박스만 뜯어보고 그대로 밀쳐 두었는데 빨래하여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씻어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부들의 고민이 늘 그렇듯 ‘오늘은 또 뭘 먹이지?’하면서 부엌으로 가보니 장어국이 한 냄비 끓여져 있었습니다.
“어머님! 고모가 장어국도 끓여놓고 가셨어요?”
“응. 간은 네가 하라고 하더라.”
“네.”
뽀얗고 진하게 끓여놓은 장어국을 보니 얼마나 고맙던지. 손이 많이 가는 탓에 보양식인 줄 알면서도 자주 해 먹지 못하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시댁의 형제는 5남 1녀입니다. 남편은 셋째 아들, 시누이는 남편 바로 위 누나입니다. 남자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고를 졸업하고 동생들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였습니다. 쉰을 넘긴 나이라 그 시절에는 시골에서 여자들은 아들에게 밀리는 법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제법 공부도 곧 잘했지만 쉽게 꿈을 포기하고 시집을 간 시누이입니다. 그래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고명딸이라 그런지 어머님에게 잘합니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역시 딸이라는 걸 실감 나게 합니다. 시누이도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어제는 시간을 내서 엄마를 보러 왔던 것입니다. 83세, 자식위한 삶을 살았고, 지금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가끔은 약을 드시고도 또 약 먹겠다고 하시고, 금방 양치질을 하고 나왔는데 또 화장실로 가셔서 양치질하기도 합니다. 1분 전에 한 행동은 기억도 없고 10년 전의 기억은 할 수 있는 게 알츠하이머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누이는
“내가 미안해서 전화도 자주 못하겠다.”
“형님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머님이 자식을 키울 때 똑같은 마음으로 키우셨다는 걸 아는데 시누이는 자꾸만 미안해하십니다. 그러면서 사과, 밀감 등 먹거리들이 종종 택배로 날아오곤 합니다.
시누이는“엄마 우리 집에 좀 모시고 갈까?”라고 하지만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고모님이 오신 적 있습니다. 그때 고모님이 “딸네 집에도 며칠 가 있고 그래라.”라고 했더니 사위가 퇴근해 올 때가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해, 가 있기가 좀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리 잘해 주신다고 해도 딸네 집보다는 아들 집이 마음이 더 편안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머님 못 보내겠어요.”
그랬더니 엄마를 보러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맛있게 온 가족이 장어국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옵니다.
“응. 나야.”
“네. 형님.”
“장어국은 입맛에 맞게 간해서 먹어.”
“그럴게요.”
“엄마 바꿔줘.”
“어머님 지금 식탁에서 밥 드시고 계시는데.”
“그래? 그럼 잘 도착했다고 해.”
“네. 형님! 고맙습니다.”
“고맙긴.”
“저녁 잘 먹었어요. 장어국 덕분에.”
“알았어. 잘 있어.”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먹먹한 고마움이 온몸을 감싸 안았고, 오늘은 우리 집에 누군지 아는 우렁각시가 다녀간 기분이었습니다.
나를 기분 좋게 해 준 우렁각시 시누이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형님!
언제나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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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시누지간 참 어렵던데...
너무 잘하시는군요...응원 팍팍 보내드립니다..
이런 댓글들 보여 드리면 시누님께서 또 감동 받을듯..^^
답글
댓글 잘 안쓰는데 우연히 들어왔다 노을님 글 덕분에 가슴이 따뜻해져 글 남깁니다
결혼한지 1년반밖에 안됐지만 결혼생활과 시댁과의 관계가, 또 남편과 저희집과의 관계가 어릴때 생각처럼 쉽지는 않더라구요 이래서 둘만의 결혼이 아니고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하는구나..싶고요
그래도 다행히 시댁분들도 다 정말 좋으시고, 저희 부모님들도 참 좋으신분들이라 아주 잘지내고 있어요
남편이 가끔 속상하게 하거나 그러면 형님이나 어머님께 전화해서 다 일르면 다 제 편 들어주시고 ㅋㅋ
저희 형님도 참 착한분이예요^^
노을님도 정말 좋은 형님 두셨네요~노을님도 참 좋으신분 같구요
늘 건강하시고, 어머님 완치는 안되시겠지만 진행이 아주아주 느리게 됐으면..그래서 많이 기억하시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답글
헐... 너무 고마운 시누이시네요.
요즘 저런 분 흔치 않은데...^^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고 행복하세요~ ^^
답글
우아~ 정말 우렁이색시인데요^^ 노을님은 좋은어머니랑 시누이 두셨네요^^
우리 시누이들도 착하고 잘해주시는데.. 가끔 얄밉기도 하거든요^^
답글
노을님이 시누이와 정다운 사이인가봅니다..
우렁각시 시누이를 둬 아마 행복하시리라..^^
노을님 늘 건강하시구요..
행복한 노을님 되시길요..^^*
답글
누군지 아는 우렁각시....
제 몸 까지 다 먹먹해 오는 행복감입니다.^^
답글
시누이 마음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랑 비슷한 처지군요.
답글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해 집니다.
정말 보기 좋은 가족의 모습입니다.
답글
그냥 장어가 아니네요.
장어 중의 왕장어네요. ^^
답글
따뜻한 가족애가 여기까지 번져오는 것 같습니다.
훈훈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답글
시누이도 참 좋은 분이네요~
정이 철철 넘칩니다.
답글
정말 멋진 시누이네요.
정감이 흐르는 이야기로 추운 날씨가 따스해지는 듯 합니다.
답글
풋풋한 정이 넘치는군요.
주말 잘 보내시구요.
답글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지기님...
와...부럽습니다. 시누이와 너무 잘 지내는 모습 뵈니.
답글
시누이 하면 흉보기 일쑤인데 늘 좋은가정의 정을 보는 듯해서 노을님 방에 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ㅎㅎ 그래서 자주 자주 오고 싶습니다 푸하하하 진쫜됑 ㅎㅎ
답글
대부분 시누이에 관한 얘기는 안 좋은것들이 많은데
노을님 시누이는 정말 멋지네요~^^
답글
우와 정말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부분이 이긴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요 ^0^
즐거운 주말 보내세용 노을님!!
답글
오우 저런 시누 이야기는 정말 들어 본적이 없는것 같은데.. 너무나 부러운 광경 이내요. 멋지십니다.ㅡㅡb
답글
맨날 TV방송 보면.. 시누 사이는 이런사이가 아닌데..
너무 행복한 가족입니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답글
참 어려운 관계라든데..
따뜻하니..참 좋네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