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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자식은 많아도 갈 곳은 없다?

by 홈쿡쌤 200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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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많아도 갈 곳은 없다?
 

며칠 전,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친정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어떠니 엄마는?”
“응. 며칠 더 지켜보자고 하네.”

뇌에 약하지만 실핏줄이 터졌고 치매 초기 증상이 보인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온 가족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78세, 그 시절에는 6명은 기본으로 낳아서 공부시키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그저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아오셨기에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다 가셨으면 하는 바람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친구는 3남 1녀의 고명딸입니다. 성격이 까다로운 엄마는 6인실에 있다가 함께 있는 할머니가 치매가 심해져 갑자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1인실로 옮겨졌습니다.

고명딸인 친구가 병원비가 걱정되어

“엄마! 우리 사람 여럿 있는 곳으로 옮길까?”
“싫어. 얼마나 있을 거라고. 난 여가 좋다.” 하시더라고 합니다. 본인이 싫다고 하시니 병원비야 형제들이 나눠서 내면 되겠지 싶어 엄마가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렸다고 합니다.


일주일 정도 병원생활을 하면서 가까이 사는 둘째 오빠가 한마디 하더랍니다.

“병원 밥 그냥 드시게 해. 반찬 이것저것 해 나르지 말고.”

“네.”

그 말을 전해 들으니 어찌나 서운하게 들리던지. 자신이 못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게 놔두면 될 것을. 그것조차 못하게 하면서 올케의 눈치를 보게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병원 음식이 조금 싱거워 시골에서 생활하신 엄마는 영 무얼 드시질 못한다는 말을 듣고 병문안을 가면서 죽과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갔습니다.

“아이쿠! 직장생활하고 시어머님 모시고 있으면서 뭐 하러 이런 걸 만들어 오냐!”
“맛있게 드시고 기운 차리셔야죠.”
“그래야지.”

제법 죽 한 그릇을 비우는 걸 보니 내 마음마저 흐뭇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름을 넘기고 난 뒤

“엄마 퇴원 안 해?”
“응. 곧 할 것 같아.”
“반찬 좀 더 해 줄까?”
“아니야. 괜찮아. 너도 바쁘잖아!”
“그래도 너보다 내가 손이 빠르니까.”

그러면서 빈 그릇 한 개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합니다.

“있잖아! 6인실에 있을 때, 바로 옆에 계시던 그 할머니 있지?”

“응.”

말을 듣고 보니 그 할머니는 ‘병원 지킴이’ 노릇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입원한 지도 오래되었고, 함께 사용해야 하는 냉장고도 자기 것처럼 한다며 친구는 투덜거렸습니다.

“네가 담아 준 깻잎지, 엄마가 맛있다고 해 드리려고 찾아보니 없더라.”

그런데 저녁에 식사하면서 우연히 넘보게 된 그릇에 담긴 깻잎이 내가 담아 준 것이었다는 것.

“물어보지 왜?”
“어떻게 물어보니? 그릇도 비슷하긴 한데 아니라고 하면 어쩌고.”

“참나! 그렇다고 말도 못해? 바보처럼?”
“함께 지내면서 사이 나빠질 필요 없잖아.”

“아이쿠! 바보!”

“...............”

 공동생활을 하는 곳에서 꼭 잘난 척 나서는 사람 한둘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렇다고 내 것도 아닌데 당연히 내 것처럼 가져다 먹는 그 심보는 무엇일까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별의별 사람 다 있다고 하더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병원 측에서 많이 좋아졌으니 입원은 필요 없고 통원치료를 해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셋이나 되어도 모시고 갈 사람 하나 없고, 고스란히 고명딸인 친구가 떠안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올케가 식당을 해서 안 된다, 둘째는 아예 ‘난 어머님 못 모십니다.’ 막내는 ‘형님! 제가 2월까지는 안 됩니다.’하더라는 것. 그러면서
 "퇴원 시키지 말고 병원에 계시게 하자."라고 제안은 하더랍니다.
아니, 멀쩡한 사람이 병원에 있다보면 바보가 되기 마련인데, 바깥생활을 하면서 점차 안정을 찾게 해야 될 터인데 말도 되질 않는 소리를 한다며 속상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너도 참 지질이 복도 없다.”

“그러는 넌?”
“호호...나도 할 말은 없다.”


내년이면 형제들 끼리 월 30만원씩 모아 90만원을 막내 며느리 한테 주고 그 집으로 모시고 간다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간은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가 엄마를 데리고 계셔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야! 너도 그 돈 만큼 달라고 하지?"
"어떻게 그러냐?"
"왜?"
"딸이 되어서 그 몇 달을 못 모시겠나?"
"어이구 바보!"
"너도 셋째 며느리면서 그냥 모시고 있으면서. 넌 더 바보야~ "
"......."
딸과 며느리의 차이일까요?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모시면 돈을 챙겨줘야 하고 딸이 모시면 당연히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알고보니 친구 집에도 막내 아들이 제사를 가져가 지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 이야기이지만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불쌍한 우리 부모님!
모든 사랑 다 바쳐 온몸으로 쏟아 부으며 키웠건만 남는 건 아픈 몸통뿐, 빈 소라껍데기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빈소라껍데기 같은 한 몸 의지 할 곳 없으니....


결국, 우리도 머지않아 그렇게 늙어갈 터, 부모 마다하면 내 자식 또한 나를 마다하지 않을까?

퇴직금 연금 있어 자신의 노후는 탄탄하다고?

탄탄하게 노후 잘 보낼 수 있도록 누가 만들어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친구야 기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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