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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딸아이 때문에 여고생으로 되돌아간 나

by 홈쿡쌤 201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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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때문에 여고생으로 되돌아간 나


"특정 과목의 선생님이 좋으면 그 과목의 성적이 향상하게 되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38.4%가 '매우 그렇다.'라고 대답하였고 33.1%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즉 70% 이상의 청소년들이 선생님이 좋으면 그 과목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를 보더라도 흥미로운 점은 선생님이 좋아지면 그 과목이 좋아지고 그 과목의 성적까지도 향상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어제저녁, 심화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12시를 넘긴 여고생이 된 딸아이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도 학교가 집 근처라 데리러가는 수고스러움은 없습니다.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앉아 반가이 맞아주니 조잘조잘 여고생 특유의 수다를 늘어놓습니다.

“엄마! 엄마! 나 영어선생님이 너무 좋아!”
“뭐가 그렇게 좋은데?”

“영어 발음도 죽여줘.”

그러면서 이런 선생님 처음이라며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 채로 떠들어댑니다.

“야! 발음 하나에 뽕 간 거야?”
“아니, 간부수련회 때 함께 있어 봤어.”

1박 2일로 다녀온 간부수련회 때 선생님 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게임도 같은 팀이 되어 지내고 왔나 봅니다.

“근데 엄마! 나 그 선생님이 이상형이야.”

“엥?”

생전 처음 그런 말을 딸아이한테 들었습니다.

“그 정도야?”
“사실은 엄마! 20살이면 너무 차이 나지?”

“그럼. 근데 총각이야?”
“응. 노총각.”

외국 유학생활을 3년 하였고, 37살인데 장가갈 생각도 없으신 것 같다며 아파트 하나 사서 혼자 지내고 있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폼을 잡고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는 게 아닌가.

이성에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처음 그 말을 들으니 왜 그렇게 가슴이 콩닥거리던지요. 녀석이 벌써 이렇게 자랐나 싶어서 말입니다.

“엄마! 아무튼 나 영어 공부 열심히 할 거야.”

“우리 딸 영어 성적 잘 나오겠네.”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면 만점 받아야지. 당연히.”

“그래라.”



사실, 저 역시 여고 때 국어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다른 과목보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때 풋풋한 사랑을 가슴속에 담고 지내면서 비록 짝사랑이지만 혼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저 수업시간에 바라만 보고 있어도 목소리만 들어도 황홀할 정도였으니까. 속에 있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수줍음까지 많았기에

“00아! 일어나서 한 번 읽어볼래?”

“..............”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얼굴은 홍조가 되어 한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처럼 더듬거렸습니다.

“괜찮아! 천천히 읽어.”

눈을 마주치며 다독여 주시는 선생님의 다정한 말투에 용기를 내어 읽으며 땀을 빼곤 했었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나를 따로 교무실로 불러 소심한 성격을 바꿔야 한다며 스스로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부러 나를 친구들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해

“00이 노래 잘하지? 나와서 불러봐!”

감히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홍당무가 되어 모기만 한 소리로

“선생님~ 싫어요. 아니 못 해요.”

“잘할 수 있어. 화이팅~ 여러분 박수~~”

우우~ 친구들의 환호에 떠밀려 교탁 앞에 섰습니다. 너무 떨려 가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선생님! 친구들과 같이 부르면 안 될까요?”
“그래. 뭐 부를까?”
“나 어떡해.”

한창 대학가요제로 열심히 따라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종종 나를 불러 세워 발표도 시키고 남 앞에 서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점점 횟수가 늘어갈수록 겁은 없어졌지만, 선천적인 성격은 고치지 못해 대인공포증처럼 남아있는 걸 어쩌겠는가. 2학년이 되어 간부활동을 하면서 성격을 많이 고쳤습니다. 모두가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사람은 배움에 사람이 되어가고 무한히 열려 있는 존재로 배움에 있어서 스승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공경하며 잘 따르는 것이 큰 덕이고, 스승은 좋은 제자를 만나는 것 또한 큰 덕이라 말을 합니다. 젊은 선생님이 학생이 하는 말들을 열심히 들어주시고 , 맞장구를 쳐주시고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막 칭찬해 주시고, 답답하다고 화내시지 않고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그런지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아이는 매일매일 영어수업시간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하며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이랑 대화하는 게 너무 좋다고 하니 말입니다.


딸아이는 선생님이 지나가면 쪼르르 달려가 무슨 이야기든 나눈다는 말을 들으니 엄마보다 낫다는 생각 스쳐 지나갔습니다. 차마 용기조차 낼 수 없었던 나였기에 녀석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한때이기에 좋아하는 감정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실력을 쌓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수다스러운 딸 덕분에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느낌....
오늘따라 선생님이 보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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