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고부갈등 부추기는 금기어




명절이 가까워졌습니다.
사는 게 팍팍하여 고향 찾는 일도 쉽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까치발을 하며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 생각을 하면
무겁지만 발길 옮길수 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자식과 손자들 얼굴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할 부모님이기에 말입니다.

이맘때면 더 고민되는 여자들의 마음
남편보고 시집왔지만, 가족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명절날 고부갈등 부추기는 금기어입니다.








★ 시어머니의 금기어

㉠ (내 아들) 왜 저렇게 말랐어. 밥은 잘 챙겨주니?
아들에게 '왜 이렇게 말랐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니?'라고 묻는 것은 며느리에게 남편 밥도 안 챙겨주느냐는 타박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아들의 안쓰러움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근황을 묻거나 며느리의 건강도 챙기는 말을 건네 보세요.


㉡ 세월 참 편해졌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네가 하는 일이 힘든 건 줄 아니?',
'불평 말고 일하거라.'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에게도 '너도 고생이 많다.'라는 말로 조금이나마 위로의 말을 건네 보세요.



㉢ 좋은 소식 없니?
걱정되는 마음에 건젠 말이지만, 많은 가족이 모인 명절날 임신 등의 부부 문제가 공개되는 것은 며느리로서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친척들까지 함께하는 명절날 민감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성 질문을 주고받는 일은 삼가하세요.







★ 며느리 금기어

㉠ 돈 없어 힘들어요.
시부모님께 마음 불편함과 괜한 걱정을 줄 수 있는 말 '힘들어 앓는 소리'는 화기애애한 가족 분위기를 깰 수 있으니 주의합니다.


㉡ 이번만 봐주세요.
맞벌이가 고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매번 명절 준비를 돕지 못해 이런 말을 번복한다면 아무리 너그러운 시어머님도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빨리 가도록 노력해 볼게요.'
'금방 가겠습니다.'라고 말해 보세요.




㉢ 애 버릇 나빠져요.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적으로 시어머님을 탓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수 있는 말입니다.
자녀 교육관이 다르겠지만, 손주에 대한 시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너무 조목조목 따지지 마세요.




살아가면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참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이왕 명절은 쇠어야 하는 것, 즐겁게 보내고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고부간의 갈등은 세기의 갈등이라고 하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는 하지만,
나 역시 나이 들면 시어머니가 될 터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조금 양보하는 명절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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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역 귀경하신 부모님이 모텔에서 자고 온 사연





우리 고유의 명절은 어릴 때부터 자라고 꿈을 키워 온 고향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늘 가볍기만 합니다.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고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마음이기에 그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집니다. 양손에는 크지 않지만 정성 가득한 선물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주말 오후,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나 풀자며 전화가 왔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한걸음에 달려가 은은한 차 향기를 맡으며 안자마자 속내를 드러내는 친구입니다.

"얘, 나 참 속상해서."
"뭐가?"
"세상에, 엄마가 오빠 집 갔다가 모텔에서 자고 온 거 있지?"
"왜? 오빠 집에서 보내지 않았데?"
"응"
"엄마 불편할까봐 그랬겠지"
"그게 아니야."
 친구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딸 3명과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평생을 보내신 분입니다.
18살에 시집을 와서 어린 나이부터 힘들다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말없이 종부 노릇을 해 왔습니다.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콩나물을 팔고 생선을 팔아 아이들을 키워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잘 자라나 딸들은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고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생선을 팔러 다니면서 교통사고가 크게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흔을 넘긴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 아들에게 제사를 가져가서 지내라고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은 명절만 되면 거꾸로 아들 집으로 역 귀경을 하게 되었던 것.









며칠 전 추석이라 어머님은 아들과 손주에게 뭐든 먹이고 싶어 농사지은 것들을 보따리 보따리에 싸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니 아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낯선 풍경들을 보며 다닥다닥 붙은 사각의 링 속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현관문만 꽉 닫아버리면 갑갑하기 끝이 없는 곳이기도 한 게 아파트이기도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오빠는 어머님을 모텔로 모시고 가며
"엄마! 그냥 편하게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차례 지내러 가요."
"그래라."
아들과 함께 있어 어머님의 마음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밖에서 자고 집으로 데려가 눈치가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가까이 살기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아가 뵙고 오곤 하는데
"난 내년 설부터 서울 안 갈란다."
"엄마 무슨 일 있었어?"
"......................"
"말을 해야 알지. 말 해 봐 얼른."
"......................."
"그럼 나 이제 엄마한테 안 온다!"
협박을 하자 슬며시 입을 여는 어머님이었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니네 오빠 집에서 안 자고 모텔에서 자고 왔어."
"아니 왜? 오빠 집이 비좁은 것도 아니잖아."
"비좁으면 차라리 괜찮게?"
어머님 마음이 많이 상하고 오셨나 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제사를 모실 때부터 며느리는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제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가 살아 계실때까지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입장이라 아내와의 갈등도 없잖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와중에 제사를 가져갔으니 시어머니가 찾아오는 것도 달갑잖은 일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딸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집이 좁은 것도 아닌데 그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 못해 어머님을 모텔로 보낸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혹독하고 시집을 살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내 남편을 낳아주신 분이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인데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경이 예민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텔로 모셨던 것입니다.
"그냥 편안하게 생각해. 네가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아."
"며느리 눈치만 보는 엄마가 불쌍해서 그래."
물러준 재산 없이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며느리의 친정에서 마련해 준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싫어 어머님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친구의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속 시원히 말을 하고 싶지만 시누 노릇 한다고 할까 봐 아니, 엄마의 당부로 입도 열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니"
"지네들끼리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야."하시며 말입니다.
"엄마! 이제부터 서울 올라가지 마!"
"시끄러워!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야."
"..............."
엄마의 성화에 입도 열지 못하고 지내지만, 너무 화가 난다고 합니다.

올해도 대충 차례를 지내고 시골로 내려오셨나 봅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시골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 가지며 사는 건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혼자서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몸이 아파도 텃밭 가꾸어 봉지 봉지 싸 보내는 재미로 살아가는 어머님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되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어렵고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오직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님이십니다. 지금 내 자식에게 쏟는 정성 절반이라도 어머님께 쏟는다면 효자 소리를 듣는다는 말도 있습니니다.


남의 집 가정사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며느리들이 조금만 받아들이며 사는 게 어떨까?
영원히 살지않을 시어머님이시고,
또한, 머지않아 나도 시어머니가 될 터이니 말입니다.

자식은 눈으로 보고 배운 만큼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대접해 드린 만큼 나 또한 대접받으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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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고부간의 갈등 없애주는 고단수 남편
 

부부의 연은 따로 있는 걸까요? 서른넷, 서른셋 노총각 노처녀로 맞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우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무엇에 끌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당신은 뭐가 맘에 들었어?”하고 물으니 그냥 피식 웃으며

“그냥 순하고 착해보였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결혼 안 할 것처럼 그러더니 어지간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네.’하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어려운 세상 잘 헤쳐나갈 것 같았고,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뽀얀 치아를 보니 건강해 보여 쉽게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을 해 딸 중 3, 아들 중 2 아이 둘을 낳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남편은 6남매 중 넷째입니다. 자랄 때 워낙 말없이 고집불통이었다고 시어머님이 전합니다. 그저 다른 형제들은 시어머님의 말이라면 거절 없이 틀린 말이라도‘예 예’하는데, 어머님 앞에 입바른 소리 잘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남편뿐입니다. “엄마! 자식 공부 왜 시켰어? 그런 건 나한테 물어봐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시던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보름이 다 되어갑니다. 오직 자식 위한 삶을 살았기에 당신 몸 어느 한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십니다. 겨우 화장실에 혼자 다니시는 게 전부인 83세의 기운 없는 노모입니다.


어제는 늦게 들어온 남편이 냉장고에 있는 유산균을 하나 꺼내 오더니 누워 계시는 어머님께 숟가락으로 떠먹이십니다.

“여보! 저녁에 엄마 한 개 드셨어.”

“그래도 주니 입을 벌리는데!”

“그럼 앉아서 드시게 해. 먹일 때에는.”

“뭐 어떻겠어.”

모두가 잠자리에 들고 시간이 흘러 고요한 어둠만 내려앉는 하루는 깊어만 갔습니다.


새벽 1시, 이상하게 새벽녘에 잠이 깨어 일어나 어머님이 주무시는 곳으로 가보니 불은 환히 켜져 있고 양말도 신고 주무시는 분이 속옷 바람으로 앉아 계시고 TV 소리까지 크게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님! 잠이 안 오세요?”
“소리가 다 들리더나?”

“아뇨. 그냥 깼어요. 근데 이게 무슨 냄새죠?”

금방 우유를 토한 것 같은 역한 냄새가 온 방을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냄새가 나제? 내가 토했다.”

“그럼 깨우지 그러셨어요.”

“내가 치운다고 치웠는데.”

가만히 보니 베개 이불까지 다 젖어 버려 새로 갈아야 될 것 같아

“어머님! 작은방에 애비 옆에 가서 주무세요. 제가 치울게요.”

아무 말 없이 작은방으로 향하십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뛰어옵니다.

“무슨 일이야?”
“응. 별것 아니야. 어머님이 토하셨나 봐.”

“내가 저녁에 당신 말을 안 들어서 그렇나? 저리 비켜. 당신 비위 약하잖아.”

이불을 걷어내고 함께 새 이불을 깔았습니다. 이런 소동 속에서도 아들 녀석은 잘도 자고 있었습니다. 대충 정리를 하고 나니 남편이 들어가 자라고 하는 바람에 떠밀려 딸아이 곁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보니 남편은 어머님이 벗어놓은 옷가지, 훔쳤던 수건, 이불 등 애벌손질을 다 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쳐다보니 이물질이 하나 둘 보여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될 것 같아 손빨래를 했습니다.

잠에서 깬 남편이 밖으로 나오면서

“세탁기 돌리지 손빨래를 해?”

“그냥.”

“나보고 하라고 하지 뭐 하러 힘들게 손빨래를 하냐?”

“일찍 일어난 김에 해 버렸어.”


우리 아이들 키울 때에도 큰 실례를 하면 얼른 냄새나는 기저귀를 대신 갈아주고, 녀석들이 남긴 음식은 늘 남편이 먹었습니다. 어쩌다 찬밥이 남아 식탁 위에 있으면 당신 밥이라고 퍼 놓은 그릇을 내게 밀어주고 찬밥을 자기 앞으로 당겨 신김치 국물 쓱쓱 비벼 맛있게 먹는 남편입니다. 그게 모두 날 위한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무리 그래도 고부간의 갈등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그런 갈등은 없습니다. 남편의 고단수 술수 때문에 쉽게 넘어가 버립니다. 이번 일에도 남편은 어머님을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합니다.

“엄마! 무슨 일이 있으면 손자나 며느리 아니면 나를 불러. 이제 엄마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자식들 놔두고 엄마가 왜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남편은 엄마를 몰아세웁니다. 곁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로 말입니다.

추석을 보내려고 시장을 봐 온 것을 내려놓았을 때도 하나하나 검사하듯 뒤지고 있으니

“엄마! 이러면 어떤 며느리가 좋아하겠어?”

“아니, 너무 그러지 마. 어머님이 보시고 빠진 것 없이 잘 사 왔나 봐야 할 것 아냐.”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속으로는 남편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였습니다.

“같이 살 며느리 아무도 없어.”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럴 때마다 

“당신, 엄마한테 왜 그래? 좀 다정다감하게 말할 수 없어?”

언젠가 한 번은 “당신은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행복하잖아. 난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도 없어.”

“아이쿠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엄마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시면 병원으로 모시고 달려가고 조금만 불편해하셔도 잘 챙겨주는 효자 남편입니다. 유독 내 앞에서만은 어머님을 홀대하는 것도 압니다. 대신 당신보다 내가 어머님을 안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압니다.


자식들 키운다고 당신의 모든 것 다 내어주었으니 받기만 해도 될 터인데도 자존심 강한 시어머님은 어설프게라도 혼자 힘으로 하고 싶은 그 심정도 헤아립니다. 이제 10년 20년을 살 어머님도 아니기에 당신을 낳아 길러 제게 보내 주신 어머님 잘 모시겠습니다. 영원한 내리사랑으로 당신에게 쏟은 그 정성 절반도 돌려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당신 어머님이 곧 내 어머님이니까.

 

남편은 친정엄마가 아픈 몸으로 우리 집에 와 계실 때 나보다 더 엄마를 위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반짝 몸이 괜찮아졌을 때 엄마가

“야야! 집에 갈란다. 다 나은 것 같아.”

“네 장모님 제가 모시고 갈게요.”

시골까지 따라가 일주일을 함께 자고 출퇴근을 하더군요. 장모 곁에서 잠을 자는 사위는 당신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는데 그 사랑 받아 보지도 못하고 다시 몸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부딪치기 싫어도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게 가족입니다. 아마 가족이라는 멍에 속에 우리를 가두고 너무 편안하고 막역한 사이이기에 서로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어머님께 그러지 않아도 당신 마음 헤아릴 수 있으니 이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나는 매일매일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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