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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25 크리스마스만 되면 생각나는 그리운 친정엄마 (24)
  2. 2008.08.27 친정아버지의 특별한 교육법 (8)

크리스마스만 되면 생각나는 그리운 친정엄마




며칠 전, 친정엄마의 기일이었습니다.
몸이 안 좋아 제일 가까이 사는 우리 집에서 6개월 정도 생활하셨던 엄마,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던 6남매의 철부지 막내였습니다.

큰오빠마저 엄마 곁으로 떠나 시골에서 기일을 보내지 않고
오빠 댁에 형제들이 모여 간단한 추도식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케가 차려주는 시원한 물메기국으로 많이도 장만한 음식으로 배부르게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형형색색의 목도리를 내놓는 게 아닌가?
"우와! 너무 예쁘다."
"창원 올케가 못 온다고 보내왔네."
"아! 카톡에 올라와 있기에 하도 예뻐 '언니! 나도 갖고 싶어.' 그랬는데."
"어제 택배로 왔더라."
각자 마음에 드는 색으로 골라 목에 둘렀습니다.
"막내 오빠! 올케 안 왔으니 해 봐!"
우리는 이제 하나 뿐은 오빠에게 목도리를 두르게 하고 깔깔깔 재밌게 웃었습니다.

세월이 가니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는 형제들이 늘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 올케가 짜 보낸 목도리(언니! 고마워!)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이 날이면 어릴 적 빠지지 않고 나갔던 교회와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납니다.
수십 년을 깊은 불심으로 절에 다니시다가 돌연 교회로 발길을 돌리신 나의 어머니십니다.
"엄마! 절에 안 가고 왜 교회 나가?"
"어. 한집에서 두 개의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단다."
"오빠들보고 절에 가라고 하면 될 걸 엄마가 왜 바꿔?"
"나 하나 바꾸면 만사가 편안 해 지는걸 뭐..."
"그래도"
"다 큰놈들 어디 내 말 듣겠어?"
"참나, 말 한번 안 하더니만.."
"됐어. 그냥 집안 편안한 게 최고야"

4남 2녀 자식들을 키우면서, 모두가 유학을 하고 객지 생활을 하면서, 큰오빠, 셋째, 넷째 모두 교회 나가시고, 둘째 오빠 내외도 성당을 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부모님 기일 날만 되면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제사상처럼 근사하게 차려놓고, 오빠네 가족이 찬송가 부르고 예배를 보고 나면 언니와 우리 식구 그리고 사촌 오빠들 차례로 절을 올리곤 했으니까요. 그냥 먹는 밥에 예배만 부르고 말면 될 것을 오빠들은 시집간 우리를 위해 꼭 그 번잡한 제사상을 꼭 차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에 다니는 사촌오빠들, 시집간 딸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늘 배려하며 살아가는 오빠 때문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곤 합니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대충하라고 해도 하지 않아,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하냐고 물으니
'엄마가 우리를 위해 종교를 포기하신 그 뜻 고맙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큰오빠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상차림도 줄었고, 딸 둘 절하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기에 말입니다.

신앙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마음의 여유를 찾는 데는 좋을 것입니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하고 플 때
내가 어느 누구에게 의지 하고픈 마음 생길 때
찾아가 떨쳐 버리고 생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기에...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시던 엄마가 그리운 크리스마스입니다.

터벅터벅 검정 털신 신고 돌아오시는 그 발걸음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당신의 그 희생 있었기에 우리 가족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운 엄마.....

오늘따라 더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성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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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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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의 특별한 교육법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남해에서 2박 3일간 여름휴가를 보내고 천혜의 자원을 이용한 많은 볼거리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담아왔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나 그럴까요? 그 중 마늘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가득 담아놓은 '마늘나라'에서 본 농기구들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파일에 들어있는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그곳에서 찍어 온 똥장군으로 인해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특별한 교육법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깡촌 시골에서 서당 앞에도 가 보질 않았기에 가난 속에서도 우리 6남매 훌륭히 키워내신 분입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살림에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자식들 공부시키는데 온 몸을 다 바쳤습니다. 아버지의 별명은 '뚝배기'였습니다. 된장 오가리는 한번 끓으면 그 온기 오래가고 음식엔 은은한 맛이 베어나게 하는 변함없고 온화하신 분이었기에 붙여졌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이장 저장을 떠도는 소 장사를 하셨고 남의 땅에 벼농사 밭농사 짓는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힘을 합하여 오빠들을 하나 둘 고등학교부터 도시로 유학을 떠나보냈습니다. 새벽밥을 해 먹고 기차역이 있는 십리 길을 걸어서 다니곤 했습니다. 모두가 힘겨웠던 시절이었기에 오가면서 허기진 배 달래기 위해 무를 뽑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오빠들은 가끔 해 주곤 합니다.  그를 본 동네사람들은 우리 부모님들을 '미친 사람' 취급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대학을 보낸 유일한 아버지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교육열 하나는 어디다 내 놓아도 빠지지 않았고, 아이들 모두 공부를 잘 해 주어 별 문제없이 키워내셨는데 문제는 동네 개구쟁이였던 둘째 오빠는 동네에서 이름난 골목대장이었던 것입니다. 호박에 말뚝받기, 수박서리, 참외서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에는 꼭 둘째오빠가 끼어있었고, 무슨 일만 생기면 동네사람들이 오빠 이름을 부르며 우리 집으로 찾아 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었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노는데 만 정신이 팔려있는 오빠가 6학년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중학교 진학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 녀석 공부도 하기 싫은데 학교 가서 뭐해 중학교 못 보낸다." 하시며 아버지가 들일을 나가실 때 꼭 데리고 나갔고, 심지어는 똥장군 까지 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을 날, 아버지와 함께 논에서 낫을 들고 벼를 베고 있으니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가방을 들고 학교 갔다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아부지! 나도 학교 보내주이소."

"와? 공부 하고 싶나?"

"네. 이제부터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아들의 다짐을 받고 아버지는 둘째 오빠를 일 년을 늦게 중학교 입학시켰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결단 내리셨을까?
어디서 그런 용기 나오셨을까?
자식 교육처럼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정신 바짝 들도록 하신 아버지가 참 위대해 보였습니다. 난 중2인 아들 녀석이 가끔 맘에 들지 않게 할 때 학원 안 보낸다는 입으로 얼음 짱만 놓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후로 오빠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뛰고 놀기를 좋아하다 보니 학교 축구대표선수로 뽑혀 스포츠인의 길을 걷게 되었고, 축구 잘하는 아이로 변하여 서로 데려가려고 여러 학교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부산 배제고등학교 서울 고려대학교를 거쳐 은행지점장을 지내다 지금은 퇴직하고 집에서 보통 인이 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TV가 동네 하나밖에 없던 시절, 남의 집에서 오빠가 공차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그로 인해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큰올케로부터 천청 벽력같은 소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고모야~ 오빠가 췌장암이래."

"................."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이제 쉬면서 인생을 즐길 나이인데 말입니다. 다행히 수술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너무 걱정스럽고 두려워 오빠와는 통화 한번 해 보질 못하였습니다. 용기를 주지 못할망정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부터 흘릴 것 같아서...


서로 안부를 묻는 통화를 하면서 둘째 올케는

“오빠 환갑이니 울산으로 초대 할게”했었는데....


  아버지의 그 훌륭한 교육법으로 인해 행복한 삶을 누려 왔건만, 그 동안 챙기지 못한 건강으로 인해 불행
의 늪을 걸어가야 하나 봅니다. 아버지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인해 새 삶을 주셨지만, 이젠 자신의 힘으로 우뚝 일어서는 용기 있는 오빠가 되어 주었음 하는 맘 간절합니다.


아버지!
다시 한 번 그 힘 빌려주실 거죠?

당신의 뚝배기 같은 정신 닮은 아들이기에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겨봅니다.

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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