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지내면서 느끼게 된 우리 집 남녀 차이?






음력 3월 11일, 지난 토요일은 시아버님 제사였습니다.
입학하고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은 새내기 대학생인 딸도 오고,
멀리 있는 형제들도 내려와 함께 아버님을 생각했습니다.

하얀 백구두
모시옷을 입고
활을 쏘러 다니시는 한량이셨습니다.

병원 한 번 가시지 않은 건강체질이라 여겼는데
우연한 기회에 건강진단을 받고 흉선 암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전 처음 병원이란 곳에 입원을 다 하네."
그렇게 6개월을 넘기시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건강은 자신하지 말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 분으로
유일하게 우리 딸을 업어주셨던 할아버지입니다.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 아버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잔을 올립니다. 
남편,
시동생 둘,
고3인 우리 아들,
중1인 남자 조카
대학생인 우리 딸!
초등학생인 막내 조카  딸!

절을 다 하고 난 뒤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아니, 아이들 절을 시키고 보니 우리 딸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네."
"그러게."
모두 함께 서서 절을 시켜놓고는 남자라고 우리 아들부터 잔을 따르게 했던 것입니다.
"다음에는 딸부터 시켜!"
"그래야겠네."
음복까지 하고 상을 물리고 나니 또 한마디 합니다.
"누나는 왜 절을 안 했지?"
시아버님 제사를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두 번째 지내는 것이라 실수가 많습니다.
"맞네. 다음에는 형님도 절해야지. 아니, 우리 며느리들도 할란다."
"그래. 며느리도 안 했네."
"다시 차릴까?"
"됐네요."
"요즘은 여자들을 모시고 살아야 되는데 내가 실수했네."
모두 까르르 넘어갔습니다.

언감생심, 옛날 같으면 딸과 며느리는 제사에 참여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두 같이 아버님을 생각하며 올리는 절이기에
세월 따라 가풍도 많이 바뀜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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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나물,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이유




이젠 한낮 기온은 여름 날씨 같습니다.
아름다운 봄,
짧게만 느껴지는 봄입니다.

토요일에는 시아버님의 제사입니다.
하얀 백구두에 백바지까지 입으시고 활을 쏘러 다니시는 한량이셨습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던가요?
서른이 넘도록 장가가지 못하는 아들을 구제해 준 며느리라 그런지 유독 더 사랑해 주신 아버님이십니다.


며칠 전, 멀리 사는 시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네. 형님!"
"토요일 아부지 제사 때 고사리는 사지 마라. 내가 가져갈게."
"그럴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끊고 나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고사리? 그런 거 안 하면 안 되나?"
"그건 빠지면 안 돼!"
"왜? 그냥 간단하게 차리면 되지."
""어머님도 오실 건데"
"돌아가신 분이 먹지도 않는데 뭘. 살아계실 때 잘해야지."
"그 말은 맞아!"






1.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식재료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고사리나물이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이유가 뭘까요?
고사리는 높은 이치가 담긴 일을 한다는 뜻으로, 하늘로 기(氣)가 솟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손의 모양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의 손을 가리켜 '고사리손' 같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본초강목>에서 "고사리는 음력 2~3월에 싹이 나면 어린이의 주먹 모양과 같은데, 퍼지면 봉황새의 꼬리와 같다"고 표현한 기록을 봐도 그렇습니다. 손은 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즉, 고사리는 자손들이 하는 일이 하늘로 높이 번성하길 바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음식 하나에도 귀한 뜻을 담아 후손을 생각한 선조의 지혜랍니다.







2. 산에서 나는 쇠고기, 단백질과 무기질 풍부

삶아서 국에 넣거나 나물로 즐겨 먹는 고사리는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생명력이 아주 강합니다. 산불이 나 폐허가 된 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식물이 바로 고사리입니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립니다. 그만큼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말입니다. 또 카로틴, 비타민 B2, 비타민 C, 다당류 성분도 다량 함유해 면역력을 높여주며, 칼슘과 칼륨 등 뿌리 부위에 풍부한 무기물질은 골다공증과 고지혈증을 예방하는데 뛰어난 효능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고사리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콤합니다. 삶아서 먹으면 맛이 아주 좋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사리는 음기를 보강해주는 산나물로 피를 깨끗하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하는 특성이 있어 공부하는 학생에게 아주 유용한 음식이랍니다. 또 황달, 치질, 감기 치료는 물론 오장의 부족한 기운을 보강해주기 때문에 체질이 마른 사람의 고혈압 치료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약재입니다. 하지만 고사리는 찬 성질이 있어 양기가 부족하거나 본래 몸이 찬 사람이 장기간 먹는 거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3. 고사리에 대한 불편한 진실 - 발암물질이?

고사리에는 블라켄톡신이라는 발암물질과 비타민 B1을 파괴하는 아노이리나아제라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는 매우 많은 양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에만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평소에 고사리를 즐겨 먹는 정도로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고사리를 삶아서 먹으면 이러한 성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영양이 풍부한 고사리를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제사 음식은 정성이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님이 살아계시기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준비해야 합니다.
파킨슨병과 치매로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다 집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야야! 고생했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모두 모여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우리의 한식, 잔칫상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 고사리,
고사리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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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고달파도 마음만은 여유로운 명절이 되는 이유



오늘은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큰아들도 아니면서 큰아들 노릇하며 제사 모시는 사람,
명절이 없었으면 하는 사람,
시댁 '시'자도 듣기 싫다는 사람
별의별 사연들이 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인은 그런 말을 합니다.
무거운 상을 들고 들어가기 힘이 들어 남편을 불렀더니 시어머님이
"어라. 비켜라. 내가 들고 갈게."하시며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남자는 술 마시고 놀고 있고 여자들만 부엌일 하며 술상 차려내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소리도 옛말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어제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처제! 차 있나?"
"네. 성서방도 들어왔어요."
"그럼 와서 과일 좀 가져가라."
"네. 그럴게요."
외출하기 싫어서 혼자 궁시렁거리자 남편이
"먹을 것 준다는데 얼른 가지러 가야지."하며 재촉합니다.

할 수 없이 옷을 챙겨입고 나섰습니다.
"올케한테 전화하니 무주 간다더라."
"무주? 스키장에?"
"응. 제사도 없으니 놀러가겠지."
"와! 부럽다. 우짜모 그래되노?"
"처제도 교회다녀라."
"...................."
그냥 쓴웃음만 짓고 말았습니다.
큰오빠가 살아계실 때에는 시골에서 형제들이 모여 얼굴이라도 보곤 했는데 오빠마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나니 친정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친정 형제들은 모두 교회 나가니 간단히 추도식만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시어머님이 살아계신 데 못한다 소리 못하고 시댁에서 지내다 추석부터 우리 집으로 모셔와 차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엔 큰아들도 아니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을 잠못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 다 털어내고 나니 지금은 홀가분합니다.
"부처님한테 공들일 생각 말고 부모님한테 잘해야된다."는 말도 있듯이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즐겁게 하기로 말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생각 바꾸니 마음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1. 딸보다 며느리 맘 헤아렸던 친정엄마

결혼하기 전, 명절이면 늘 엄마를 도와 차례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엄마는
"너 어디 가지 말고 얼른 와서 음식 준비하자."
"칫, 맨날 엄마는 나만 시켜먹어."
"억울하면 시집가라 너도."
"아이쿠! 서러워라. 알았어. 얼른 갈게."
버스를 타고 오일장 봐다 놓고는 나만 기다리는 엄마였습니다.

토닥토닥 엄마와 둘이서 두부, 묵도 만들었습니다.
하나 둘 네 명이나 되는 올케들이 들어섭니다.
조용하던 시골집이 시끌벅적 요란해집니다.
콩나물도 길러서 만들어 먹으니 모든 게 맛있다고 하는 올케들입니다.

올케가 집에 오면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설거지 않는다고 야단을 하면 올케들은
"어머님! 고모 그냥 둬요. 이제 우리가 하면 됩니다."
"것 봐! 언니가 한다잖아. 엄마는..."
 혀만 낼름 내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럴 때 올케는 "어머님! 우리 고모같은 사람없어요."
'어머님 좋지, 시누이 좋지, 결혼 잘 한 것 같아요.'
'명절 스트레스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모두가 엄마가 가운데서 질서를 확실하게 잡아주기 때문이란 걸 압니다.
결혼을 해 보니 말입니다.

명절이면 더 그리워지는 친정엄마입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2. 간섭하지 않는 시어머니

서른넷, 서른셋 노처녀 노총각이 늦은 나이에 첫눈에 반해 맞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낯설기만 한 시댁에서 형제들이 모여 행복한 명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내가 뭘 아냐! 니들이 알아서 해라."
뭐든 쉽게 넘어가는 호인이셨습니다.

팔순을 넘기신 나이에 아들이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음식 만드는 일을 돕는다는 건 상상도 못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모든 게 변화한다는 걸 아신 어머님이셨습니다.
"어머님! 00이 아빠 설거지 시킵니다."
"어머님! 삼촌 전 부치는데 도우라고 합니더."
"오냐. 그래라. 함께 해야지."
남편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도, 빨래를 늘어줘도, 청소기를 돌려줘도
아무런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난, 너희들이 잘 지내는 것 보니 행복하다."
그게 제일 큰 소원이라는 어머님이십니다.




3. 마음씨 착한 두 동서

 밑에 동서는 치과 간호사로,
막내 동서는 한의원에서
동서 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형님! 시장 보셨어요?"
"응. 내일 보려고."
"고생스러워서 어떻게 해요."
"고생은 무슨"
"형님, 팔도 아픈데 생선 여기서 그냥 사 갈까요?"
"조금만 사면 되는데 뭐하게. 괜찮아."
"일찍 가서 준비할 테니 함께 일해요."
"그래 알았어."
"눈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네요."
"그러게 눈오면 내려 오지 마!"
"아닙니다. 그래도 가야죠."
12시간을 넘게 도로에서 보내도 고향길이 즐겁다 합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쁜 동서입니다.





4.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시누이

부부 사이는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 많습니다.
싸움을 하면 두 사람의 말을 다 들어봐야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손위 시누이는 늘 동생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닌 제 편이 되어줍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형님!"하면서 하소연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문디 자슥 아이가!"
동생에게 욕을 하며 올케 말이 옳다며 무조건 들어주며 위로해 줍니다.


비록 몸은 고달파도 마음만은 여유롭습니다.
고생하는 줄 알아주는 동서 둘이 있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시누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명절, 온 가족이 함께 맞이하고 즐긴다면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오늘부터 명절준비로 바쁠 것 같습니다.


                                     
                                  고향 잘 다녀오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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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진 설날, 빠질 수 없는 추억의 뻥튀기



이제 명절이 코앞입니다.
하나 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쌀을 봉지에 담아 어머님과 함께 갔던 뻥튀기 강정을 하러 나가보았습니다. 하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설날인데 빠지면 서운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불경기라 그런지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집안 식구가 나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5명이 분담을 해 척척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180~200도 가까이 열을 올려 뻥튀기하는 큰아들
튀긴 것을 받아 손질하여 넘기는 아버지
적당한 양으로 버무려내는 어머니
자동기계에 잘라내는 둘째 아들,
비닐봉지에 담아내며 돈 계산하는 막내 아들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뻥이요∼ 뻥튀기요…….
멀리 마을 어귀나 골목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면 꼬마들은 마음부터 들떴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딱지치기 구슬치기도 팽개치고 동네 아이들 모두 뻥튀기 장수 곁으로 모여들었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딱히 자기 집에서 뻥튀기를 튀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장구통 모양의 시커먼 기계에서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부풀려져 나오는 뻥튀기만 봐도 마음은 절로 풍성해지는 듯했습니다. 튀긴 후 뿌연 김이 솟아오르고 아이들은 구수한 그 냄새도 좋아 코를 연신 킁킁거리며, 철망 밖으로 튕겨 나오는 튀밥을 서로 먼저 주워 먹으려고 다투기도 했었습니다.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설이 가까이 오자 달군 솥뚜껑에 쌀을 놓으면 부풀어 올라 튀겨져 나왔습니다. 곤로 위에 물엿과 설탕을 녹여 튀겨놓은 쌀을 버무리고, 납작한 판에 골고루 펴 다듬이 방망이로 밀어내고 따뜻한 온돌방에 신문지 위에 늘어 말려서 칼로 자르곤 하였습니다. 먹을 땐 신문지가 묻어 있어 뜯어 내어가며 먹어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 모든 게 아련한 추억이었습니다.





㉠ 각설이 타령에 나오는 1되 들어가는 깡통

㉡ 어릴 때 봐 왔던 장작과 풍로가 아닌 가스 불


㉢ 펑! 하고 터졌습니다. 뽀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 뻥튀기와 땅콩으로 강정을 만들 준비를 합니다.



㉤ 작년에는 쌀 1되 가져가면 13,000원이었는데 올해는 14,000원으로 천 원 올랐습니다.
하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



이제 아주머니의 손으로 넘어왔습니다.
물엿과 설탕을 1:1로 넣고 튀긴 쌀에 골고루 버무립니다.
한 판이 될 양을 눈대중으로 잘 가름하여 능수능란한 손길을 봅니다.
뻥튀기 아저씨의 노련한 솜씨, 하얀 솜털 같은 크게 튀겨져 나온 펑 뛰기로, 아주머니는 설탕과 물엿을 적당히 넣어 방앗간에 있는 깨소금 볶는 기계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빙그르르 돌아가 잘 섞어 주었습니다.



㉦ 그 뒤, 네모 판 위에 부어 골고루 펴 줍니다.



조금 있다가 옆에 있는 기계로 밀어 넣습니다.



칼질도 하지 않고, 자동으로 네모나게 잘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변하자 강밥 하는 것도, 모두 기계화 되어있었습니다.





㉩ 완성된 강정입니다.
아버님 제사상에 올릴 것 5장은 크게 썰었습니다.




▶ 작은 것 1봉지에 만 원, 큰 봉지는 25,000원에 만들어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하나 둘 만들어져 나오는 강정을 보면서 시어머님을 떠올립니다.
"야야! 강정도 했나?"
"네. 어머님."
"잘 했다. 이제 살림꾼이 다 되었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습니다.
어머님은 설날이면 꼭 강정을 만들어 놓고 자식들에게 나누주곤 하셨으니 저 역시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 모습도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강정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 속을 여행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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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남편과 함께 4시간 걸려 차린 제사 상차림


며칠 전, 시아버님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은근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시장을 봐 두고 나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명절이야 쉬는 날이라 동서들과 함께 일을 하니 잘 넘기는데 이번 제사엔 아무도 오지 못하나 봅니다.
"내가 도와줄게."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늘 그렇듯...우리는 걱정만 앞세우는 것 같습니다.
막상 닥치면 다 해내는데 말입니다.

오후에는 조퇴를 내고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뚝딱뚝딱 서둘러 혼자 일을 하고 있으니 남편이 들어섭니다.
"내가 뭘 도울까?"
"프라이팬 들고와서 닦아줘"
나물 삶고 무치고 볶아가며 이것저것 시켰습니다.
사실, 남편도 제법 꼼꼼하게 손놀림을 잘하는 편입니다. 설거지도 저보다 더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여보! 탄다 탄다. 뒤져줘야지."
"뒤집어야 하는 거였어?"
"아니, 그럼 돌아누워?"
"언제쯤 뒤집어야 되는지 감이 안 오네."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 제수음식을 준비한 게 마음에 걸린 막내 삼촌은
"형수님! 음식 그냥 조금 사서 하면 안 될까요?"
"제사음식을 산다는 게 좀..."
"유과 강정 같은 것...다 사서 하잖아요. 아님 옛날처럼 만들어야 하구요."
"고생스러워도 만들어 놓으면 이렇게 나눠 먹고 좋지요."
"우리 안 챙겨 주셔도 됩니다."
"그래도, 늦은 시간에 가서 아침엔 밥만 하면 쉽잖아요."
작게 해야지 하면서도 동생들 생각하면 또 더 만들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사실은 하나 밖에 없는 제사인데도 말이 참 많습니다.
12시를 꼭 넘겨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뒷날 지내면서 9시 정도에 지내자는 말을 합니다.
형제들이 모두 멀리 있으니 일찍 모시고 가자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종교 문제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으니
나와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한마디 합니다.
" 가만히 생각해 봐! 친정 올케가 부모님 제사 못 지내겠다고 하면 네 기분 어떨 것 같아?"
"................."
아무말도 못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마음 바꾸면 행복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함께 준비한 제사 상차림입니다.


1. 문어 삶기

▶ 재료 : 문어 1마리
▶ 만드는 순서

 

㉠ 문어는 깨끗하게 씻어 먹물을 뺀다.
㉡ 냄비에 문어와 물 약간 붓고 삶아낸다.
㉢ 삶아 낸 문어는 상에 올릴 수 있도록 모양을 내어 냉동실에 얼린다.



2. 돼지고기 삶기

▶ 재료 : 돼지고기(전지) 1kg 양파 1/2쪽, 월계수 잎, 굵은소금 약간
▶ 만드는 순서

㉠ 냄비에 돼지고기가 잠길 정도(약 5컵)와 월계수 잎(없으면 안 넣어도 됨), 굵은 소금 약간만 넣고 끓여준다.
㉡ 물이 끓으면 돼지고기를 넣고 은근한 불에 삶아내면 완성된다.
*돼지고기 삶은 물에 묵은지를 넣어 김치찌개를 해 먹으면 너무 맛있습니다.
 인기 좋은 메뉴였답니다.





3. 나물 만들기

▶ 재료 : 시금치 1단, 유채나물 150g, 콩나물 1봉고사리 100g, 도라지 100g, 마른 토란대 50g, 마른 고구마줄기 50g,  

▶ 만드는 순서

 취나물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무쳐내면 완성된다.


 콩나물은 깨끗이 씻어 간장 2숟가락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완성된다.



㉢ 유채도 끓는 물에 살짝데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간장 2숟가락, 깨소금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주면 완성된다.


고사리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간장 2숟가락에 조물조물 무친후 볶아준다.
    마지막에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마무리 한다.




토란대, 고구마줄기도 삶아 먼저 무쳐준 뒤 볶아주면 완성된다.


 


㉥ 도라지는 끓는 물에 삶아내어 찬물에 담가 쓴맛을 뺀다.
    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후 콩기름을 약간 두르고 볶아낸다.
    마지막에 깨소금 참기름 약간 넣고 마무리한다.


 

▶ 완성 된 7가지 나물



4. 전 부치기

▶ 재료 : 대구포 300g, 동그랑땡 1kg, 깻잎전, 산적, 새우튀김
▶ 만드는 순서

대구포 전 : 소금을 살살 뿌려 두었다가 밀가루 - 계란 순으로 입어 노릇노릇 구워내면 완성된다.


동그랑땡은 밀가루 - 계란 순으로 무쳐 노릇하게 구워낸다.


㉢ 깻잎전, 풋고추전도 구워주고 새우도 튀겨냅니다.


 


*두부도 3조각 썰어 부쳐둔다.




5. 쇠고기 산적


▶ 재료 : 쇠고기 300g, 진간장 1숟가락, 물엿 1숟가락, 깨소금 참기름 약간
▶ 만드는 순서


㉠ 쇠고기는 길죽하게 포를 떤다.
㉡ 돈가스 만들 때처럼 칼집을 넣어야 질기지 않음
㉢ 프라이팬에 구워낸 뒤 통깨를 살살 뿌려준다.




6. 탕국 끓이기

 
▶ 재료 : 쭈꾸미 6마리 정도, 쇠고기 200g, 조갯살 100g, 새우살 100g, 건홍합 6 꼬치, 멸치육수7컵정도,
             무 1개, 두부 1모

▶ 만드는 순서


㉠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다시 물을 내어 준다.
㉡ 사각 썰기를 한 무를 먼저 넣는다.
㉢ 씻어 둔 조갯살, 새우살, 건홍합, 쭈꾸미를 넣어준다.
㉣ 간장 6~7숟가락을 넣어 간을 한다.
㉤ 마지막에 두부를 넣어 끓이다 불을 끈다.
* 쭈꾸미는 통째로 넣고, 건홍합도 대나무가 낀 채 넣는 것은 건져 3탕을 만들 때 쉽다.

 




 

 7. 생선 굽기


▶ 재료 : 돔, 민어, 조기, 서대(생선전)
▶ 만드는 순서


㉠ 생선은 손질하여 굵은 소금을 친 후 1시간 정도 있다가 씻어 살짝 말려둔다.
㉡ 살이 부서지지 않도록 꼬치를 끼워준다.
㉢ 프라이팬에 콩기름을 약간 두르고 약한 불에서 구워낸다.
*생선을 구울 때는 프라이팬 뚜껑을 닫지 않고 문종이로 덮어야 살이 처지지 않습니다.





 

8. 기타

▶ 과일류 : 수박, 참외, 사과, 배, 바나나, 귤, 감, 딸기
▶ 과자류 : 유과, 강정, 약과
▶ 기타 :  밤, 대추, 곶감 홀수로 준비한다.


프라이팬을 닦아 넣어 마지막 일을 하던 남편
"아이고 허리야! 우와! 장난 아니네."
늘 먼저 와 도와주곤 하던 시누이도 일찍 오지 못하자 남편이 곁에서 도와주고 일어서며 하는 말입니다.
여태, 한 번도 이런 일을 해 보질 않은 남편입니다. 동서들이 함께하니 일손이 필요 없었는데 이번 제사에는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녁 8시가 되자 멀리 있는 형제들이 하나 둘 들어섭니다.
만들어 놓은 음식 제사에 올릴 것 따로 들어놓고 상을 차려 맛있게 먹었습니다.
장장 4시간에 걸친 음식준비였습니다.
"형수님! 고생하셨지요?"
"형님! 수고 많았습니다."
"아니야."



음식들을 챙겨 들고 시골로 향하였습니다.
남편이 미리 청소를 해 둔 상태이지만 텅 비어 있는 시골집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상을 차려놓으니 사촌 형제들이 와 12시를 넘긴 후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 완성된 상차림.








동서, 형님에게 싸 주긴 했는데도 남은 제사음식을 먹다 보니 아들은 식상 한가 봅니다.

"엄마! 제사음식 조금만 하면 안 돼?"
"왜?"
"먹기 싫어."
곁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
"왜? 맛있기만 한데."
상에 올릴 것만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일요일 아침에는 얼큰한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 매운탕 끓이기

▶ 재료 : 회 뜨고 남은 생선 4마리, 무 1/4쪽, 두부 반 모, 청량초 3개, 고춧가루 1숟가락, 대파 약간

▶ 만드는 순서

㉠ 멸치와 다시마로 다시물을 낸다.
㉡ 사각썰기를 해 둔 무와 고춧가루를 넣어준다.


㉢ 제사상에 올렸던 두부를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
㉣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둔 청량초와 대파를 마지막에 넣어준다.


삼천포에서 생선회와 매운탕을 끓일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온 게 있어 만들어 주었더니 싱싱해서 그런지 그 맛...  너무 맛있었습니다.


 

 

 

★ 상 차리기

 

▶ 문어


▶ 각종 전과 튀김


▶ 무김치와 열무김치



▶ 파김치


▶ 쥐채호두볶음


▶ 돼지고기수육과 묵은지



▶ 탕국



▶ 완성된 상차림


만들어 놓은 반찬으로 메인요리 하나만 만들어주면 또 훌륭한 식탁이 된답니다.
"우와! 맛있다."
아들의 찬사에 기분이 좋아지는 고슴도치 엄마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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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차례상에 올릴 수 없는 음식들과 그 이유?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어제는 효도방학으로 하루 쉬었습니다. 동서들이 와서 도와주어 빨리 끝내긴 했지만,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인 명절증후군이었는지 죽은 듯 잠만 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보게 되는 KBS1 TV 저녁 8시 25분 ‘다 함께 차차차’에서 새댁인 진경이가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마늘을 넣어 탕국을 끓이자 고모님이 혼비백산 합니다.

“아니, 차례상에 올릴 음식에 마늘을 왜 넣어?”
“마늘이 들어가야 맛이 나잖아요.”

“내가 못 살아!”


추석이라 친정을 찾은 진경이가 할머니와 엄마 앞에서 고모님께 혼이 난 사건을 이야기 할 때 오빠인 진우가 들어서자

“오빠! 차례상에 올릴 음식에 마늘을 넣을까? 안 넣을까?”
“음, 네가 하는 말을 들으니 안 넣어야 맞을 것 같네.”
“오빠도 몰랐지?”

사실, 어른들이 말을 해 주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마늘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맛을 낼 때에는 다시마와 야채를 넣은 육수를 만들어 나물 볶을 때 탕국을 끓일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 차례(제사)상에 올릴 수 없는 음식들과 그 이유?

제사는 지방마다 그 지방의 풍습과 관례가 조금씩 다르며 집안마다 가풍이 있습니다. 그 가풍과 관례에 따라 음식을 장만하면 소홀함이 없이 조상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제삿날에는 많은 음식과 과일을 올리는데 제사상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음식과 과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은 제사상에 올릴 수 없는 음식이나 과일과 올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살펴본 것입니다 잘 숙지하여 조상님들의 제사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1, 복숭아를 올리면 안 되는 이유

복숭아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과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무당이 굿을        할 때나 귀신 들린 사람을 위하여 푸닥거리할 때에 어김없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숭아가 제사상에 올려지면 조상의 혼이 올 수가 없으므로 복숭아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


2. 끝 자가 치자로 끝나는 고기를 올리면 안 되는 이유

바닷고기 중에서 치자로 끝나는 고기와 ‘어’자나 ‘기’자로 끝나는 고기가 있는데 ‘어’자나 ‘기’자로 끝나는 고기는 고급어종으로 분류된 고기들이며 치자로 끝나는 고기(멸치, 꽁치, 갈치 등)은 하급 어종으로 분류하여 조상님에 대한 예로서 최상의 음식을 대접한다는 예의에서 비롯된 사상으로 치자로 끝나는 생선은 제사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3. 고춧가루와 마늘을 올리면 안 되는 이유

복숭아와 같은 맥락으로. 마늘이나 고춧가루(붉은색)역시 귀신을 쫓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춧가루 경우 붉은색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 예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잡귀를 예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귀신을 쫓는 부적도 붉은색으로 만드는 이유가 붉은색은 귀신을 쫓는 색상이기 때문입니다.


4. 비늘 없는 생선을 쓰지 않는 이유

비늘 없는 생선은 뱀장어 종류나 메기 등을 이르는데 예로부터 비늘이 없는 생선은 부정한 생선으로 구분하였으므로 부정한 음식을 조상에게 바칠 수 없다는 이유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5.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도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기분 나쁘게 여깁니다. 머리카락 역시 귀신을 쫓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머리카락을 태우면 나는 냄새 역시 귀신을 내모는 역할을 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제사에 금기시되는 몇 가지★

1. 부어서 죽은 분 제사에는 호박을 안 쓴다.

   그것은 호박은 부기를 빼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2. 제사 음식에는 파를 쓰지 않는다.




공부를 하고 나니 나 또한 아버님의 차례상을 차리면서 잘못한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돼지고기 수육을 삶으면서 된장을 넣지 말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나 넣지 않았는데 양파 1개, 청량초 2개, 붉은 고추 2개를 넣고 삶았던 것입니다.

“형님! 고추 넣어도 돼요?”
“우려내는데 어떨까 봐!

“풋고추 전을 구워도 상에는 올리지 않잖아요.”
“소금만 넣고 삶으면 수육이 맛이 없잖아. 그냥 넣어.”

“네.”

또, 파란색이 보기 좋아 예전에 하지 않던 호박전을 구워 전을 올리는데 함께 담아 올렸던 것입니다.


어차피 산사람을 위한 제사라고는 하지만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을 올렸으니 정성이 부족했다는 생각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정갈하게 차려내시는 어머님을 닮아가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제게 사랑을 듬뿍 주셨던 아버님!
다음부터는 더 정성껏 모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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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아버님이 주신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노총각 서른 넷, 노처녀 서른 셋의 나이에  무엇이 그렇게 끌렸는지 모르지만, 맞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은 바로 밑에 동생이 애인이 있어 빨리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급했던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2월에, 시동생은 4월에 한 해 두 번의 결혼식을 시켜야 했었습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던가요?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 아버님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가졌고 첫딸을 얻었습니다. 직장여성에게 가장 큰 고민은 육아문제입니다. 할 수 없이 딸아이를 시골 어르신들에게 보냈습니다. 주말마다 시골로 가서 지내다가 아이가 엄마를 알아보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엉엉 우는 바람에 할머니가 업고 이웃집으로 데리고 가고 나면 차를 타고 나오면서 나 역시 훌쩍훌쩍 아프게 이별하는 장면을 보시고는

“야야! 그냥 네 엄니 데리고 가거라.”
“네?”
“데리고 가서 아이 훌륭히 잘 키워.”
“그럼 아버님은요?”
“나야. 어른이니 걱정 마. 혼자 지내도 돼.”

“.........”

그렇게 우리 집으로 시어머님을 모시고 와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반찬을 해서 아버님이 드실 수 있도록 해 두고 왔습니다.


제법 아이들이 자라 3살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자

“안 돼! 아직 어려서. 아이들한테 맞고 오면 우짜노.”

아버님이 손녀딸 생각하는 마음에 못 이겨 1년을 더 어머님 손에 자라고 4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삼촌의 권유로 가까운 병원에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으나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나온 결과는 흉선암 이었습니다. 평소 건강만은 자신 있어 하시던 아버님은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기에 병원복이 어색한 모양이었습니다. 말기라 더 이상 치료도 없다는 말씀에 우리 집을 모시고 왔습니다. 몇 개월을 그렇게 지내다 어머님이 집으로 모시고 싶다고 해 시골로 옮겼습니다.


아버님의 몸은 점점 심해져서 산소 호흡기를 꼽고 누워 주무시지도 못하고 앉아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주말에 어린 녀석들을 데리고 시골을 찾아가니 손자들의 재롱에 그 아픔 조금이나마 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뒷날부터는 퇴근을 하고 어린 녀석을 앞에 안고 딸아이는 옆에 앉혀 매일매일 아버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님이

“뭐 하러 매일 와!”

“아버님이 좋아하시잖아요. 저것 보세요.”

이상하게 엉덩이부터 밀어 넣으며 할아버지 앞에 앉히는 딸아이를 보고는 귀여워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니 피곤함 잊고 마음은 저절로 아버님 곁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깊은 사랑 받으며 살아왔기에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리고 싶었었는데 그 세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6개월을 넘기시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추석을 며칠 앞둔 날, 시어머님의 실수로 집을 홀랑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교회에 다니시는 큰 아주버님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전해왔습니다. 형님이 몸이 좋지 않은 이유도 있긴 하지만

“요즘, 제사 안 지내는 사람들 많아.”라고 하시면서.

“아니, 제사는 안 지내도 추도식은 하잖아요.”


친정에도 부모님 추도식 날은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들이 모여 찬송가도 부르며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오곤 합니다. 그런데 아예 제사를 가지고 가지 않겠다고 하고 쓰려진 집도 지을 생각이 없다고 하니 아버님이 가졌던 많지 않은 재산 큰아들 앞으로 다 주었는데 그 임무는 포기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유교사상에 젖어 살아온 83세인 우리 어머님 세대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동생들과 함께 내린 결론은 어머님이 살아계실 동안만이라도 걱정 없으시게 지내자는 생각이 모여 차례상을 준비해 추석날 아침 일찍 시골로 향했습니다. 다 쓰려지고 쓰레기만 남은 안채를 보니 망연자실했지만, 묵혀두었던 사랑채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아버지. 올해는 사랑채에서 차례를 지냅니더!”

먼저 고하고 나서 큰집 작은집 아주버님과 사촌 조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함께 절을 올렸습니다.


종교의 차이로 오는 제사문제는 어느 집이나 커다란 골칫거리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습니다.

 

동생들과 의견모아 아버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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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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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추석때 사진)


꿈속에서라도 한 번 뵐 수만 있다면.....


아버님을 떠나보낸 지 벌써 10년이 가까워옵니다. 친정아버지를 여의고 난 뒤, 꼭 아버지처럼 대하고 응석부렸던 셋째 며느리였습니다. 당신아들, 34살의 늦은 결혼 때문이었는지 무척이나 저를 예뻐 해 주셨고, 며느리의 직장생활로 손녀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신은 혼자 시골에 계시고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보내시며

"아가야! 너희 시어머님 모시고 가서 아이 키우거라!" 하셨던 분이십니다. 당신 끼니는 걱정 말라시며...


  우리 아버님은 한량이었습니다. 모시옷에 백구두 신으시고 궁터로 활 쏘려 다시셨던 자그마하시고 건강한 촌로였습니다. 한번도 병원신세를 져 본 적 없었는데, 막내아들의 권유로 종합검진을 받고 난 뒤,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흉선 암이었습니다. 평소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암 선고를 받고 난 뒤에는 쉬엄쉬엄 시들어 가는 꽃이었습니다. 말기였기에 약도 없다고 하셔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병원과 가까운 우리 집에서 몇 개월 지내시다가, 시골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 뒤로는 매일 매일 퇴근을 하고 아이 둘 어린이집에 가서데리고 아직 어린 아들은 앞에 안고 운전을 해 가며, 시댁과의 50분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려 가 할아버지와 함께 얼굴 맞대고 놀아 주었습니다.그 고통 속에서도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시간만큼은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 몸은 피곤하지만, 아마 오래 견디시지 못 하시고 우리와 영원한 이별이 찾아 올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받은 그 사랑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점점 세월이 흐르자,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쉬셔야 했고,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주무시는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그렇게 앓으신 지 1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쉽게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49제까지 집에서 모시다가 마지막 날(49제)은 사찰에서 공양을 올리며 보내드렸습니다. 매일 저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지어 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자박자박 걷는 아들 녀석이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인 음식을 잡아당겨 한바탕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일까요? 아직도 그 때 일을 기억 하고 있는 녀석들입니다.


  어제는 아버님의 제사였습니다. 평소 국물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해 치우시는 반찬 투정 없으셨던 우리 아버님. 육 남매의 정성어린 제사상 하나 가득 차려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뒤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보시는 시어머님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엿보였습니다. 든든한 아들 5명이 엎드려 아버님께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계셨던 것입니다. 

 

  상다리가 휠 정도의 음식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만은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아가시다 세상을 등졌기에 제 마음 더욱 아픈 것을....아버님 덕분으로 6남매의 가족과 우리 아이 둘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계실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했던 두 손녀 손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중간고사 있다며 따라 나서질 않아 그냥 두고 왔습니다. 녀석들이 더 자라고 나면 꼭 참석 하여 아버님의 그 사랑 느끼도록 하겠습니다.



제사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 30분....

꼭 12시를 넘겨야 제상을 차리고 절을 올리기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늘 피곤함에 시달리곤 합니다. 셋째며느리로서 조퇴를 맡고 음식을 하러 달려가야 하고, 서울 사시는 둘째 형님은 제수음식을 준비하고, 시장을 보기 위해 하루 전날 내려오셨습니다. 대구, 인천 사는 아주버님 삼촌도 바로 올라가지 못하니 학교에도 사무실에도 연가를 내고 온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가지가지 놓을 것도 많고, 챙겨야 하는 것도 많은 제사문화 요즘엔 많이도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윗대 어른들은 한 개로 합쳐 한 번만 지내고 초저녁에 많이 지내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며느리인 우리는 입도 못 벌리고 있는데 손위 시누가 어머님에게

“엄마! 우리 내년부터 제삿날 하루 늦춰 초저녁에 지내면 안 되나?”
“..................”

80평생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씀 같았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큰집 아주버님도

“너희들 편할 대로 해~”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큰집에도 12시 30분이 지나야 제사를 지내는 분이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어머님 하자는 대로 해요.”
“이렇게 늦게 가면 피곤하잖아. 시대도 많이 변했고...”
“그래도 어머님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몇 년 아녜요.”

“허긴, 우리 대에 제사 제사 하지 우리 아이들 제사 지내지도 않을 거야.”
“남의 눈 의식 많이 하시고 체면 따지시는 어머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아요.”

“당신이 힘드니 그렇지!”
“어? 당신 나 생각해서? 아이쿠 고마워라”


11가지의 나물 볶고 무쳐야하고, 생선 다려 쪄내고, 튀김 전 굽는 일 보통일 아니지만, 대대로 내려온 쉽게 버릴 수 없는 제사문화이기에 적응하며 살아가나 봅니다. 변화를 기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어야 하는 지 다 알기에 남이 변화하길 바라는 것 보다 내가 변화하는 게 더 빠르다는 말이 있듯 어머님의 뜻 따라주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 마음 똑 같진 않겠지만, 어머님의 그 마음 읽고 아무도 거역하지 않고 더 이상 입을 다물어 아들들의 효심을 보며 돌아왔지만, 맘 약하신 우리어머님 또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또 의논하면 간소화할 수 있는 좋은 합의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우리, 서로 사랑하며, 서로 배려하며, 나누며 사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또한 살아 계실 때 효도하시길 간절함 담아보는 날로, 그저 아버님을 생각하며 멀리 떨어져 지내는 형제들 만날 수 있다는 기쁨하나로 피곤함 잊는 날이 됩니다. 


오늘따라 무척 그리워집니다.

오늘따라 무척 보고파집니다.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나 뵐 수만 있다면....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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