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왕생, 통영 사계사의 천도재




행사 때마다 찾아다니고 있는 통영 사계사
치대에 다니는 조카가 결혼을 앞두고
조상님들의 영혼 극락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천도재가 있었습니다.


▲ 부처님

부처님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스님이 주시는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 천도재 상차림



▲ 영혼들을 위한 목욕 세제




▲ 시댁, 친정의 영가



▲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들

나물 7가지, 5가지 전, 과일

정성스럽게 담아 올리는 언니입니다.




▲ 대웅전에 달린 배
영혼들이 극락으로 가실 때 타고 갈 것입니다.
스님이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 밥과 국

수북하게 담아 올려야

자손들이 잘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 향을 피우고 천도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 목탁소리와 스님의 기도가 끝이나면

종이 인형으로 만든 영혼들을 불에 태우며

극락왕생을 빕니다.



▲ 스님의 예불

스님의 예불은 2시간을 넘게 계속됩니다.




▲ 천도재에 참여하신 신도들과 함께 기원합니다.






▲ 영혼에게 밥과 반찬을 드시게 하고 

우리는 돌아가며 잔을 올렸습니다.




▲ 행사에 사용했던 물건을 불에 태웠습니다.



★ 천도재 사람이 죽은 뒤 그 넋이 저승에 들지 못하면 가족이나 친지에게 병이나 해를 끼쳐, 천도재를 통해 넋이 저승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면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천도재는 단순히 죽은 사람을 위한다는 것 외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재해를 막고 복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천도재를 마치고 먹은 점심입니다.


▲ 메밀국수


▲ 모듬 쌈

상추, 양배추, 깻잎, 호박잎

젖장, 고추멸치장으로 싸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 가오부시로 맛을 낸 어묵탕




▲ 한 상차림



상에 올렸던 나물과 모듬 쌈으로
배불리 먹고 극락왕생 빌고 왔습니다.
그날 저녁, 꿈에 친정아버지도 만났습니다.

늘 그리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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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크리스마스만 되면 생각나는 그리운 친정엄마




며칠 전, 친정엄마의 기일이었습니다.
몸이 안 좋아 제일 가까이 사는 우리 집에서 6개월 정도 생활하셨던 엄마,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던 6남매의 철부지 막내였습니다.

큰오빠마저 엄마 곁으로 떠나 시골에서 기일을 보내지 않고
오빠 댁에 형제들이 모여 간단한 추도식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케가 차려주는 시원한 물메기국으로 많이도 장만한 음식으로 배부르게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형형색색의 목도리를 내놓는 게 아닌가?
"우와! 너무 예쁘다."
"창원 올케가 못 온다고 보내왔네."
"아! 카톡에 올라와 있기에 하도 예뻐 '언니! 나도 갖고 싶어.' 그랬는데."
"어제 택배로 왔더라."
각자 마음에 드는 색으로 골라 목에 둘렀습니다.
"막내 오빠! 올케 안 왔으니 해 봐!"
우리는 이제 하나 뿐은 오빠에게 목도리를 두르게 하고 깔깔깔 재밌게 웃었습니다.

세월이 가니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는 형제들이 늘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 올케가 짜 보낸 목도리(언니! 고마워!)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이 날이면 어릴 적 빠지지 않고 나갔던 교회와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납니다.
수십 년을 깊은 불심으로 절에 다니시다가 돌연 교회로 발길을 돌리신 나의 어머니십니다.
"엄마! 절에 안 가고 왜 교회 나가?"
"어. 한집에서 두 개의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단다."
"오빠들보고 절에 가라고 하면 될 걸 엄마가 왜 바꿔?"
"나 하나 바꾸면 만사가 편안 해 지는걸 뭐..."
"그래도"
"다 큰놈들 어디 내 말 듣겠어?"
"참나, 말 한번 안 하더니만.."
"됐어. 그냥 집안 편안한 게 최고야"

4남 2녀 자식들을 키우면서, 모두가 유학을 하고 객지 생활을 하면서, 큰오빠, 셋째, 넷째 모두 교회 나가시고, 둘째 오빠 내외도 성당을 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부모님 기일 날만 되면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제사상처럼 근사하게 차려놓고, 오빠네 가족이 찬송가 부르고 예배를 보고 나면 언니와 우리 식구 그리고 사촌 오빠들 차례로 절을 올리곤 했으니까요. 그냥 먹는 밥에 예배만 부르고 말면 될 것을 오빠들은 시집간 우리를 위해 꼭 그 번잡한 제사상을 꼭 차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에 다니는 사촌오빠들, 시집간 딸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늘 배려하며 살아가는 오빠 때문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곤 합니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대충하라고 해도 하지 않아,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하냐고 물으니
'엄마가 우리를 위해 종교를 포기하신 그 뜻 고맙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큰오빠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상차림도 줄었고, 딸 둘 절하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기에 말입니다.

신앙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마음의 여유를 찾는 데는 좋을 것입니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하고 플 때
내가 어느 누구에게 의지 하고픈 마음 생길 때
찾아가 떨쳐 버리고 생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기에...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시던 엄마가 그리운 크리스마스입니다.

터벅터벅 검정 털신 신고 돌아오시는 그 발걸음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당신의 그 희생 있었기에 우리 가족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운 엄마.....

오늘따라 더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성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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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몸은 고달파도 마음만은 여유로운 명절이 되는 이유



오늘은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큰아들도 아니면서 큰아들 노릇하며 제사 모시는 사람,
명절이 없었으면 하는 사람,
시댁 '시'자도 듣기 싫다는 사람
별의별 사연들이 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인은 그런 말을 합니다.
무거운 상을 들고 들어가기 힘이 들어 남편을 불렀더니 시어머님이
"어라. 비켜라. 내가 들고 갈게."하시며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남자는 술 마시고 놀고 있고 여자들만 부엌일 하며 술상 차려내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소리도 옛말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어제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처제! 차 있나?"
"네. 성서방도 들어왔어요."
"그럼 와서 과일 좀 가져가라."
"네. 그럴게요."
외출하기 싫어서 혼자 궁시렁거리자 남편이
"먹을 것 준다는데 얼른 가지러 가야지."하며 재촉합니다.

할 수 없이 옷을 챙겨입고 나섰습니다.
"올케한테 전화하니 무주 간다더라."
"무주? 스키장에?"
"응. 제사도 없으니 놀러가겠지."
"와! 부럽다. 우짜모 그래되노?"
"처제도 교회다녀라."
"...................."
그냥 쓴웃음만 짓고 말았습니다.
큰오빠가 살아계실 때에는 시골에서 형제들이 모여 얼굴이라도 보곤 했는데 오빠마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나니 친정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친정 형제들은 모두 교회 나가니 간단히 추도식만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시어머님이 살아계신 데 못한다 소리 못하고 시댁에서 지내다 추석부터 우리 집으로 모셔와 차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엔 큰아들도 아니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을 잠못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 다 털어내고 나니 지금은 홀가분합니다.
"부처님한테 공들일 생각 말고 부모님한테 잘해야된다."는 말도 있듯이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즐겁게 하기로 말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생각 바꾸니 마음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1. 딸보다 며느리 맘 헤아렸던 친정엄마

결혼하기 전, 명절이면 늘 엄마를 도와 차례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엄마는
"너 어디 가지 말고 얼른 와서 음식 준비하자."
"칫, 맨날 엄마는 나만 시켜먹어."
"억울하면 시집가라 너도."
"아이쿠! 서러워라. 알았어. 얼른 갈게."
버스를 타고 오일장 봐다 놓고는 나만 기다리는 엄마였습니다.

토닥토닥 엄마와 둘이서 두부, 묵도 만들었습니다.
하나 둘 네 명이나 되는 올케들이 들어섭니다.
조용하던 시골집이 시끌벅적 요란해집니다.
콩나물도 길러서 만들어 먹으니 모든 게 맛있다고 하는 올케들입니다.

올케가 집에 오면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설거지 않는다고 야단을 하면 올케들은
"어머님! 고모 그냥 둬요. 이제 우리가 하면 됩니다."
"것 봐! 언니가 한다잖아. 엄마는..."
 혀만 낼름 내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럴 때 올케는 "어머님! 우리 고모같은 사람없어요."
'어머님 좋지, 시누이 좋지, 결혼 잘 한 것 같아요.'
'명절 스트레스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모두가 엄마가 가운데서 질서를 확실하게 잡아주기 때문이란 걸 압니다.
결혼을 해 보니 말입니다.

명절이면 더 그리워지는 친정엄마입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2. 간섭하지 않는 시어머니

서른넷, 서른셋 노처녀 노총각이 늦은 나이에 첫눈에 반해 맞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낯설기만 한 시댁에서 형제들이 모여 행복한 명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내가 뭘 아냐! 니들이 알아서 해라."
뭐든 쉽게 넘어가는 호인이셨습니다.

팔순을 넘기신 나이에 아들이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음식 만드는 일을 돕는다는 건 상상도 못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모든 게 변화한다는 걸 아신 어머님이셨습니다.
"어머님! 00이 아빠 설거지 시킵니다."
"어머님! 삼촌 전 부치는데 도우라고 합니더."
"오냐. 그래라. 함께 해야지."
남편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도, 빨래를 늘어줘도, 청소기를 돌려줘도
아무런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난, 너희들이 잘 지내는 것 보니 행복하다."
그게 제일 큰 소원이라는 어머님이십니다.




3. 마음씨 착한 두 동서

 밑에 동서는 치과 간호사로,
막내 동서는 한의원에서
동서 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형님! 시장 보셨어요?"
"응. 내일 보려고."
"고생스러워서 어떻게 해요."
"고생은 무슨"
"형님, 팔도 아픈데 생선 여기서 그냥 사 갈까요?"
"조금만 사면 되는데 뭐하게. 괜찮아."
"일찍 가서 준비할 테니 함께 일해요."
"그래 알았어."
"눈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네요."
"그러게 눈오면 내려 오지 마!"
"아닙니다. 그래도 가야죠."
12시간을 넘게 도로에서 보내도 고향길이 즐겁다 합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쁜 동서입니다.





4.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시누이

부부 사이는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 많습니다.
싸움을 하면 두 사람의 말을 다 들어봐야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손위 시누이는 늘 동생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닌 제 편이 되어줍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형님!"하면서 하소연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문디 자슥 아이가!"
동생에게 욕을 하며 올케 말이 옳다며 무조건 들어주며 위로해 줍니다.


비록 몸은 고달파도 마음만은 여유롭습니다.
고생하는 줄 알아주는 동서 둘이 있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시누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명절, 온 가족이 함께 맞이하고 즐긴다면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오늘부터 명절준비로 바쁠 것 같습니다.


                                     
                                  고향 잘 다녀오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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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역 귀경하신 부모님이 모텔에서 자고 온 사연





우리 고유의 명절은 어릴 때부터 자라고 꿈을 키워 온 고향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늘 가볍기만 합니다.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고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마음이기에 그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집니다. 양손에는 크지 않지만 정성 가득한 선물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주말 오후,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나 풀자며 전화가 왔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한걸음에 달려가 은은한 차 향기를 맡으며 안자마자 속내를 드러내는 친구입니다.

"얘, 나 참 속상해서."
"뭐가?"
"세상에, 엄마가 오빠 집 갔다가 모텔에서 자고 온 거 있지?"
"왜? 오빠 집에서 보내지 않았데?"
"응"
"엄마 불편할까봐 그랬겠지"
"그게 아니야."
 친구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딸 3명과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평생을 보내신 분입니다.
18살에 시집을 와서 어린 나이부터 힘들다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말없이 종부 노릇을 해 왔습니다. 물러 받은 재산 하나 없이 콩나물을 팔고 생선을 팔아 아이들을 키워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잘 자라나 딸들은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고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생선을 팔러 다니면서 교통사고가 크게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흔을 넘긴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 아들에게 제사를 가져가서 지내라고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은 명절만 되면 거꾸로 아들 집으로 역 귀경을 하게 되었던 것.









며칠 전 추석이라 어머님은 아들과 손주에게 뭐든 먹이고 싶어 농사지은 것들을 보따리 보따리에 싸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니 아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낯선 풍경들을 보며 다닥다닥 붙은 사각의 링 속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현관문만 꽉 닫아버리면 갑갑하기 끝이 없는 곳이기도 한 게 아파트이기도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오빠는 어머님을 모텔로 모시고 가며
"엄마! 그냥 편하게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차례 지내러 가요."
"그래라."
아들과 함께 있어 어머님의 마음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밖에서 자고 집으로 데려가 눈치가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가까이 살기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아가 뵙고 오곤 하는데
"난 내년 설부터 서울 안 갈란다."
"엄마 무슨 일 있었어?"
"......................"
"말을 해야 알지. 말 해 봐 얼른."
"......................."
"그럼 나 이제 엄마한테 안 온다!"
협박을 하자 슬며시 입을 여는 어머님이었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니네 오빠 집에서 안 자고 모텔에서 자고 왔어."
"아니 왜? 오빠 집이 비좁은 것도 아니잖아."
"비좁으면 차라리 괜찮게?"
어머님 마음이 많이 상하고 오셨나 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제사를 모실 때부터 며느리는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제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가 살아 계실때까지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입장이라 아내와의 갈등도 없잖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와중에 제사를 가져갔으니 시어머니가 찾아오는 것도 달갑잖은 일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딸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집이 좁은 것도 아닌데 그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 못해 어머님을 모텔로 보낸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혹독하고 시집을 살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내 남편을 낳아주신 분이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인데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경이 예민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텔로 모셨던 것입니다.
"그냥 편안하게 생각해. 네가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아."
"며느리 눈치만 보는 엄마가 불쌍해서 그래."
물러준 재산 없이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며느리의 친정에서 마련해 준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싫어 어머님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친구의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속 시원히 말을 하고 싶지만 시누 노릇 한다고 할까 봐 아니, 엄마의 당부로 입도 열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니"
"지네들끼리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야."하시며 말입니다.
"엄마! 이제부터 서울 올라가지 마!"
"시끄러워!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야."
"..............."
엄마의 성화에 입도 열지 못하고 지내지만, 너무 화가 난다고 합니다.

올해도 대충 차례를 지내고 시골로 내려오셨나 봅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시골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 가지며 사는 건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혼자서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몸이 아파도 텃밭 가꾸어 봉지 봉지 싸 보내는 재미로 살아가는 어머님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되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어렵고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오직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님이십니다. 지금 내 자식에게 쏟는 정성 절반이라도 어머님께 쏟는다면 효자 소리를 듣는다는 말도 있습니니다.


남의 집 가정사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며느리들이 조금만 받아들이며 사는 게 어떨까?
영원히 살지않을 시어머님이시고,
또한, 머지않아 나도 시어머니가 될 터이니 말입니다.

자식은 눈으로 보고 배운 만큼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대접해 드린 만큼 나 또한 대접받으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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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저녁노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원한 내리사랑'
 

휴일 날, 일주일 내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지내셔야 했던 83세의 시어머님. 바쁜 아침 가족들 한 숟가락 먹고 나면 각자의 일터로, 학교로 나가고 나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죽은 듯 가만히 누워계시니 얼마나 갑갑하실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어머님! 우리 바람 쐬러 갈까요?"

"아무 데나 가자. 내 따라갈게."

싫다고 한마디도 안 하시는 것 보면 그 마음 알 것 같았습니다.


무작정 손을 잡고 나오긴 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니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어딜 구경한다는 건 생각도 못하겠고

"여보! 우리 어머님 절에 모시고 갈까?"

"아 맞네. 그긴 걷지 않아도 되겠네."

"어머님 월경사 한 번 가 볼까요?"

"응 그러자."


법당 앞에까지 차로 갈 수 있어 평소 늘 다니시던 절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일요일 늦은 오후라 절을 관리하는 사람뿐 신도들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쿠! 보살님 나오셨어요?"

"네."

"요즘 도통 보이시지 않더니."

"몸이 좀 안 좋습니다."

"......."

"야야! 불전에 놓을 돈 좀 챙겨가야지."

"네. 그럴게요."

한발자국씩 내딛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저 멀리 보이는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문 앞에서 두 손 모으고 꾸벅 세 번 허리를 굽히는 어머님을 보니 뒤로 넘어질 것 같아 걱정되었습니다.



인자하신 미소로 내려다보고 계시는 부처님을 향해 어머님은 다소곳이 절을 올립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걸음도 못 걸으시면서 그저 자식들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에 '재수있게 해 주이소'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이리저리 2층 3층 부처님 앞에서는 강한 어머님이 아닌 그저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가져간 돈을 다 놓고 난 뒤

"어머님 이제 돈이 없어요."

그러자 꼼지 꼼지 손수건에 싸 두었던 만 원짜리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언제 가져오셨어요?"

".............."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무릎을 꾸부리고 엎드려 절을 할 뿐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 지 모를 정도로. 또 한 번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어머님의 영원한 내리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 내려놓고 마음 편안하게 지내셔도 되는 데 말입니다.



 

“야야! 여기 어디 우리 아이들 이름 있나 봐라.”
“어머님! 여기 있네요.”

월 1만원을 주고 부처님 곁에 촛불을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자 성질 급한 남편이 엄마를 덥석 등에 업고 나옵니다. 처음엔 엉거주춤 자세가 바르지 못한 건 떨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어머님이었습니다.

“당신, 엄마 업어본 적 있어?”
“아니,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오늘 효자 노릇 제대로 하네.”

“어머님! 아들 등에 업히니 좋으시죠?”
“오냐. 좋네.”

아주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 한 그릇 먹고 약도 드시지 않고 꼼짝없이 주무시는 걸 보니 어지간히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자식들은 이제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을 만큼 키워주셨으니 그 마음 다 헤아립니다. 그저 당신 건강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실 수 있잖습니까. 하루하루 쇠약해 가시는 모습 뵈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Posted by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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