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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속으로

아련한 문풍지 소리

by 홈쿡쌤 2007.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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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문풍지 소리


                                                              - 글/저녁노을 -

어느새 겨울이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찬바람 쌩쌩 몰고 와 가지 끝에 붙어 늦가을임을 알려주던
마른 나뭇잎 이제 낙엽 되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욱 새 차게 창문을 덜컹거립니다.
또한 살며시 창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창가에 침대를 두어 딸아이는 벌써 코감기에 걸러 맹맹 거리면서도,
열이 많은 녀석 잠을 청하면서 갑갑하다며 문을 열어제칩니다.
닫으라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닫았다고 하였지만,
조금 열어 놓은 아주 작은 틈 사이로 불어오는 싸한 찬바람이
내가 어릴 때 자라난 고향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감기 걸려 문 닫아!"
"엄마 그럼 진짜 조금만 열어 놓아요"
"그래 알았어 자"
잠들고 나면 닫을 생각으로 그냥 놔두었습니다.
점점 깊어 가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초 겨울밤,
편안히 잠든 가족들의 고른 숨소리만 들려오는데,
잠들지 못한 나의 상념만이 아련한 추억 속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며 과거 속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지게에 한 짐 가득 짊어지고 돌아오신
산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로 새벽녘까지 따뜻할 수 있도록
군불 지펴 놓고서 한겨울 내내 먹을 간식거리
방 가장자리에 가득 채워 둔 가마니에 든 고구마
숯불 속에 묻어 군고구마 만들어 잘 익은 쉰 김치와 기나긴 밤
배고픔을 달래어 가며 자라왔던 어린 시절,
육 남매의 먹기 위한 손놀림은 빠르게 오가고,
내 것이라며 고구마에 침 뱉어 놓는 작은 오빠의 약삭빠른 행동,
나중에 먹을 거라며 숨겨 두었던 것 잊어버리고 있다가
밟아 버려 먹지도 못했던 대가족의 행복한 삶.
오순도순 둘러앉아 나누어 먹으며 서로 정을 나누었고,
욕심 없이 사는 법을 배워가며 자라났고,
주어진 작은 행복에도 큰 웃음꽃이 피어가며,
그 정다운 소리 싸리문을 넘나들었던 가족 사랑을 말입니다.
얇은 한지 한 장으로 발라 놓은 문틈 사이에
찬바람 들어오지 않게 막은 문풍지의 흔들거림.
방바닥은 따스해도 위풍이 있어 코끝은 시려 와
이불을 푹 둘려 쓰고 자고 나면 입술이 터고 갈라져
피도 흘러나오고 겨울 내내 아팠던 그 때 그 시절을
우리 아이들은 머리 속에 상상이나 가는 이야기일까요?
점점 핵가족화 되어 가고 한 둘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내 아이에게만은 최고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이 세상엔 많지만,
우리가 자라고 태어난 고향의 정취와 삶의 여유는
배워주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 가난을 물러주기 싫어 열심히 일해
자식들 공부에 전념하였지만, 도시로 다 떠나고 없는
텅 빈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할머니의 삶도 보여 주고 싶습니다.
많이도 바뀌고 흘러 온 세월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맛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여유로 다가와
그 옛날이 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찬바람 느끼지도 못하도록 문 만 꼭꼭 닫으면
훈훈한 아파트에 살아가고 있고, 먹거리 지천에 늘려 있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 또한 많기도 하지만,
흙을 만지고 놀고, 밟고 자나난 우리의 어린 시절이
더 아름다웠다는 생각 들지 않습니까?
바람결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며 내었던 그 문풍지 소리가
문득 그리워지는 초 겨울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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