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아 볼만한 따뜻한 세상
-글/저녁노을-
며칠 전 일요일, 시댁 친척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각자 살아가기 바빠 자주 보는 얼굴들이 아니기 때문에 만나면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는 분들입니다. 시끌벅적한 결혼식장에서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그간의 안부를 묻곤 합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시고모님은 자그마한 체구를 하고 늘 웃음 간직한 호인으로 다가와 만나면 나를 제일 반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모님 안녕하세요?” 두 손을 잡으며 따뜻한 체온 느끼며 정을 나눕니다.
"아이쿠! 우리 씨알 며느리 그간 잘 있었나?"
"네. 고모님! 근데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나?"
"예..."
“이제 늙어가니 그렇지 뭐”
얼마 전 큰 수술도 하셨기에 많이 세약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시고모님은 일찍 남편을 여위고 딸 셋, 아들 하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 내시고 사촌들까지 돈도 받지 않고 쌀로 대신하며 하숙을 시키면서 직접 기른 콩나물로 시장에 내다 파시면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오신 여장부이십니다. 지금은 대학교수로 나가고 있는 막내딸 손녀 둘을 돌봐 주고 있고, 당신 몸도 성치 않으면서 그저 희생만 하며 살아도 그게 행복이시라 여기며 지내고 있는 훌륭하신 분이기에 더욱 좋아하게 되고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는 뷔페에서 접시에 음식을 담아 와 바로 옆에다가 앉으며
"어? 고모님! 핸드백 너무 예쁘다"
"그래? 이 핸드백 깊은 사연이 있단다."
"무슨 사연인데요. 너무 궁금해요"
입담 좋으신 고모님이 술술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는 결혼 축하 잔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시고모님은 수더분한 것을 좋아 하셔서 폐물을 그리 좋아하시진 않지만, 자식들이 해 주는 것 가끔은 하고 다녀도 가방 속에 넣고 다니기 일쑤였답니다.
그런데 집에 불이 났어도 다른 건 다 타 버렸는데 폐물이 들었던 그 핸드백만은 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느 날 평소 하지 않던 폐물로 갑자기 치장을 하고 싶어
며느님이 해 준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시장엘 나가셨다가 바퀴 달린 시장바구니에 하나 가득 사서 돌아오는 길에 습관이 되지 않은 탓에 목걸이와 반지가 너무 갑갑하여 빼서 그 핸드백 속에 넣어 바구니 한 귀퉁이에 담아 덜컹거리며 끌고 돌아 오셨다고 합니다. 집으로 들어와 하나씩 물건을 내리다 보니 핸드백이 어디에 흘렸는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 이상하게 분명히 여기다 담았는데...'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가보길 네 번을 해도 핸드백은 통째로 없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안 하던 폐물이 갑자기 하고 싶더라니..'하며 포기를 하고 며느리가 잃어버린 줄 알면 서운 할 것 같아 똑 같은 걸로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까이 사는 막내딸 집에 가서도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고 그 이야기를 해 주며 딸에게 '00아! 한번만 더 가보자' 하며 조르고 졸랐다고 합니다. 딸과 나란히 걸어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니 아까 네 번을 왔다 갔다 했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고모님이 지나갔던 길가의 집 담벼락 위에 신문지로 덮여 있는 게 눈에 띄어 다가섰더니 그 사연 많은 핸드백이 올라앉아 고모님을 향해 활짝 웃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핸드백을 열고 확인을 하니 폐물도 현금도 그대로 들어 있었던 것 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다 있나’ 하시면서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허공에 대고 열 번도 더 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냥 욕심 낼 것도 같은데 내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남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게 신문지까지 덮어두며 주인 손에 들어가게 한 그 마음......
"내가 죄를 짓지 않고, 남의 것 탐내지 않으니 그런 가 보다"
"맞아요. 고모님이 복이 많으셔서 그래요. 우와 오늘 너무 멋진 말씀 들었어요."
이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 더 아름답게 흘러가나 봅니다.
TV를 보아도 온통 서로 헐뜯고 깎아 내리는 이야기, 거짓말, 생활비관 자살, 쪼들리는 빗, 교통사고, 살인 등등 어두운 뉴스들뿐인데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니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드는 고운 마음이 저절로 전염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 가지고 계시기에 늘 행복한 모습이고,
그런 가슴 가지고 계시기에 늘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각박하다고 해도 아직은 살아 볼만한 따뜻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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