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디서 머리를 깎으시나요?
개성이 독특한 요즘 아이들이라 그런지 머리 스타일 때문에 가끔 다툴 때가 있습니다. 딸아이는 꼭 내가 어릴 때 엄마가 가위로 깎아주던 이마가 훤히 보이는 바가지 머리를 해 다니고, 아들 녀석은 귀도 덮고 뒷머리는 길게 해서 다니는 게 영 맘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 머리 좀 훤하게 깎아 버리자.”
“엄마는~ 유행도 멋도 몰라요.” 하며 똑 쏘아 붙입니다.
며칠 전, 할 수 없이 학원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미장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엄마! 어디가요?”
“음~ 저녁 먹으러 가지.”
“그럼 우리 외식하는 건가?”
“뭐 먹고 싶은 게 있어?”
“돼지갈비 먹으러 가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외식하러 가는 척 하면서 자주 가는 미용실로 향하였습니다.
바로 옆이 갈비집이라 나의 속셈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나온 김에 머리 좀 깎을까?”
“싫은데...”
“너무 길잖아 그리고 나올 시간도 없고, 지금 깎고 밥 먹자.”
“네.”
이상하게 더 이상 대꾸도 없이 순순히 대답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미장원을 들어서면서 “아들 머리 좀 깎아 주세요.”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짧게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가
“뒷머리는 그대로 두시구요. 앞머리만 깎아 주세요.”하는 게 아닌가?
“왜? 좀 시원하게 치자.”
“엄마, 6학년 때 맘대로 하게 놔두세요. 어차피 중학교 가면 깎아야 하는데.”
“그래 알았어.”
옆에서 보고만 있던 미용사에게 괜스레 맘 쓰여서
“아이들이 요즘 이래요.”
“주장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착한 편입니다. 얼마나 까다롭게 구는 학생들이 많은데요.”
“얼굴형에 맞게 미용사에게 맡기는 게 제일 좋을 텐데…….”
“그건 옛말입니다.”
어울리지도 않는데 연예인 누구와 같은 스타일로 해 달라고 하는 사람, 톡톡 튀게 깎아 달라고 하는 사람, 천차만별인 사람들로 인해 ‘이 짓도 못 해 먹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위질을 시작하더니 깔끔한 새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와~ 우리 아들 잘 생겼다.” 어느새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라던 60년대에는 집에서 엄마가 보자기를 두르고 가위로 쓱싹쓱싹 잘라 주었습니다. 오빠들은 바리캉으로 싹 밀어 주어 밤톨처럼 반질반질하게 하고 다녔었지요. 전문 기술자가 아니니 삐뚤삐뚤 해 지면 맞추기 위해 또 자르고, 또 자르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이마 위로 쑥 올라와 있어, 결국엔 울음을 터뜨리며 ‘내 머리 붙여 내.’ 하면서 엉엉 울어 버렸던 기억 생생합니다. 또 동네어귀에 하나 있는 이발소에는 언제나 만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턱에는 하얀 비누거품 가득발라 말끔하게 수염 밀어주는 모습, 가죽처럼 생긴곳에 쓱싹쓱싹 칼 가는 모습, 이집 저집 돌아가는 이야기를 모두 다 들을 수 있는 정겨운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왜 그렇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전문미용사가 입맛대로 머리를 잘라주니 미운 모습을 한 아이들이 하나도 없나 봅니다.
얼마 후, 퇴근을 해 오는 남편까지 불러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당신 머리 미장원에서 깎으면 불법 아닌가?”
“글쎄, 얼마 전 말이 많긴 했었는데…….”
이용원과 미장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용원은 남자만 이용하는 곳이고, 미장원은 여자만 이용하는 것인가?
요즘 남자들까지 미장원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이발소 자체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당신은 왜 이발소에 가서 머리 안 깎아요?”
“면도 하는 게 귀찮아서”
“안 한다고 하면 되지. 머리만 깎고…….”
“머리감는 게 또 불편 해.”
이발소에서는 앞으로 숙여 감겨 주지만, 미장원에서는 뒤로 해서 감아 더 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요금이었습니다. 이발소에는 7-8천원은 기본이고, 마사지까지 받으면 15,000원에서 20,000원까지 받는 곳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장원에서는 6,000원이면 되는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서구식 이발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단발령이 내려진 1895년부터라고 합니다. 6년 뒤 서울의 인사동에서 국내 최초의 이발관인 '동흥이발소'가 개업하면서 한국 이발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최초의 미장원은 이보다 훨씬 뒤인 1920년에야 문을 열었답니다.
이발관의 정점은 산업화가 진행된 1960~70년대.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 단행됐던 장발 단속의 힘으로 급성장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발단속의 해제와 학생 두발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점차 쇠락 기에 빠져듭니다. 이후 '전기 바리캉'의 등장으로 파마 고데 염색 등 여성 머리손질에만 국한했던 미장원의 영역이 남성 헤어까지 넓혀지면서 이발관은 본격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 머리는 '깎고' 여자 머리는 '잘라야' 한다?
몇 해 전, 한국이용사회중앙회는 '머리를 '깎는 것'은 이발소 고유 영역이므로 미장원에서 남자 머리를 깎지 못하게 해 달라'며 보건복지부에 탄원서를 냈고, 이에 미용사회 측은 '오는 손님을 어찌 막느냐. 그리고 머리를 자르는 것과 깎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반박했다고 합니다. 복지부는 결국 '사회통념상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장원 이용이 바람직하다'는 하나마나한 중재안을 내놓기도 해 이런 웃지 못 할 논쟁은 존폐 기로에 놓인 이발소의 모진 현실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1000원이라도 싼 학생할인을 하는 곳으로, 젊은층은 미장원으로, 나이든 어른들은 공짜로 깎아주는 자원봉사자에 머리를 맡기니 손님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아련한 바리캉의 추억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집 주변에 이발소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서 머리를 깎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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