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 거짓말을 한 딸아이
주말이면 늘 남편과 둘이 시골에 혼자 살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뵈러 가곤 했습니다. 중3인 딸, 중2인 아들 녀석의 기말고사가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고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야! 오늘은 할머니 댁에 가자!”
“엄마! 나 오늘 약속 있어.”
“나도!”
“엥? 뭐가 그래?”
“시험 끝났으니 영화보고 피자 먹기로 했거든”
“그럼 마치면 몇 시야? 엄마가 시간 맞춰 데리러갈게.”
“엄마~ 안 가면 안 되지?”
“안 간다고 하면 용돈 안 줄 거야!”
“알았어. 알았어요.”
돈에 못 이겨 따라가겠다고 하며 용돈을 받아 신나게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두 녀석을 보내놓고 집안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남편도 집으로 들어섭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이랑 놀러 갔지. 시험 끝났다고.”
“그래?”
“우리는 시장 보러 가요.”
“시장은 왜?”
“어머님댁에 다녀와야죠. 내일 산에 간다면서.”
“아! 그렇네.”
이것저것 어머님이 드실만한 것을 골라 녀석들을 데리려 영화관 앞으로 갔습니다. 두 녀석을 데리고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흙을 밟아 보고 개울가에 나가 물장난도 하고 그랬는데 중학생이 되고 보니 공부에 시달리며 시간을 낼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바람 가르며, 여기저기 핀 여름꽃들을 보며 시골에 도착하였습니다. 대청마루에 앉아있던 어머님의 표정이 환해집니다.
“할매! 할매!”
“아이쿠! 내 새끼들이 왔나?”
“할매! 잘 있었나?”
“응. 나야 잘 있었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녀석들이라 그런지 할머니한테 존댓말이 죽어도 나오지 않는다며 할머니도 아닌 ‘할매’라고 부르며 정감 있게 대합니다.
시장 봐 온 것으로 어머님이 드실 반찬을 만들고 있을 때
“여보! 오늘 우리 부부동반 모임 있어.”
“엥? 어디서?”
“응. 가까이 가든에서 8시에 있는데 깜박했네.”
서둘러 어머님과 아이들에게 저녁상을 차려 주고 우리는 모임장소로 향했습니다. 남편의 고추 친구들과의 모임이라 시골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입니다.
맛있게 촌닭 백숙을 먹고 어머님 댁으로 들어서자 녀석들은 TV에 빠져 있었습니다.
“야들아! 집에 가자.”
어머님이 텃밭에 길러 주시는 부추와 방아잎을 들고 밖으로 나서자
“내일 학원가나?”
“응 할매, 학원 가!”
“그럼 얼른 가거라.”
“...............”
가끔 학원에서 보충을 하는 일이 있어 그러려니 했습니다.
어머님의 말씀 속에는 자고 갔으면 하는 맘 가득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타서는
“내일이 일요일인데 무슨 학원을 가?”
“안 그럼 할머니 자고 가라고 할 거잖아.”
“그럼 자고 가면 되지.”
“싫어. 할머니 집에 파리, 모기 때문에 미치겠단 말이야.”
시댁은 부엌개량과 큰방에 보일러만 놓은 상태로 아직 우리가 어릴 때 살던 모습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여름이면 모기를 많이 타는 딸아이는 물린 자국을 긁어 벌써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키워 줘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하시겠다.”
“할머니집 안 고치면 자고 가기 싫어.”
“그럼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
“몰라.”
시골집은 큰 아주버님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은 모두 큰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주인이 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셋째인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짓말을 했다고 하니 뽀로통하게 화가 난 딸아이입니다.
“딸! 할머니가 너희와 하룻밤 자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지.”
“우리 집에 가면 되잖아!”
“다 나가고 나면 집에 혼자 계시면 외로워서 그렇지.”
“여기 있어도 혼자잖아!”
“그래도 노인정에도 가시고 텃밭도 가꾸시고 여긴 덜 외로워.”
“알았어. 담엔 생각 해 볼게.”
그렇게 막을 내린 사건이었지만 마음에 너무 걸렸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손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그 마음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며 산다고 하는데, 시어머님 마음 하나 읽지 못하고 딸에게 끌려갔으니 말입니다.
허긴 자식에게 기대고 살 우리 세대는 아니니 서운할 것도 없다고 할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머님처럼 쓸쓸히 혼자 보내게 되었을 때,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와 그냥 가버린다면? 처지 바꿔 생각하면 아찔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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