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혼 담아내는 병원 내 '백영호 기념관'
여러분은 건강 얼마만큼 체크하고 살아가십니까? 얼마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제가 늘 다니고 있는 주치의 같은 분 서울내과를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간염항체가 생긴 상태였고, 딸아이는 면역주사를 맞혀야하는 음성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주사를 맞고 있는 동안 원장님이 꾸며 놓으신 아버지 ‘백영호의 기념관’을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본명 : 백영효(白永孝)
1920. 8. 8. 부산 출생
만주 신경음악학원 수료
1947. 코로나레코드 입사
1964. <동백아가씨> 발표
1965. <동숙의 노래 > 발표
1969. TBC방송가요대상 작곡상 수상
1971. 청룡영화상 작곡상 수상
1994. 서울 정도(定都) 600년 자랑스런 서울 시민상 수상
1999. 문화훈장 옥관장 서훈
2003. 5. 21.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별세
▶ 훈장과 트로피가 즐비하였습니다.
▶ 주현미와 함께....
▶ 남진의 젊은시절 모습도 보입니다.
▶ 이미자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1964년의 곡 '동백아가씨'의 작곡자로 유명한 백영호(白映湖)는 무수한 트로트 곡을 발표해, 우리 서민의 한을 달랜 가요사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로 손꼽힙니다.
그는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석류의 계절' '지평선은 말이 없다' '아씨' '여로' '등 주로 이미자에게 많은 히트 곡을 써주었다. 그의 곡은 유난히도 영화주제곡으로 많이 쓰여 더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아씨'와 '여로'처럼 TV주제곡으로도 두각을 나타냈었고, 이 외에도 문주란의 데뷔작이자 대표곡인 '동숙의 노래'와 남상규의 '추풍령',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 등 주옥같은 명곡을 남겼다. 그는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83세의 나이인 2003년 5월21일 타계했습니다.
▶ 배호
1920년 부산에서 출생한 그는 미 발표곡을 포함해 4000여곡을 작곡했으며, 5000여곡의 노랫말을 지은 원로 작사가 반야월과 더불어 각각 작곡과 작사 부문에서 최다 작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멜로디 제조 술과 감성은 단연 그를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작곡한 노래들에 나타난 정서의 축은 서민적 서정성으로 이것은 청년시절 만주와 몽골까지 유랑하며 고향을 떠난 슬픔을 달랬던 고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왜색가요로 금지되는 등 고초도 뒤따랐지만 그가 가요계에 남긴 공적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탑을 세우면서 그 공로로 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맞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과 99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장남인 백경권 진주 서울내과병원 원장은 97년 병원 내에 '백영호 기념관'을 건립,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답니다.
비록 아버지를 생각하며 병원 한 편에 마련된 기념관이지만, 라디오에 귀 기울이고 TV 하나에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 보곤 했던 어린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이런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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