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명절이 한참 지났는데 남편은 내게
"선물 하나 사러 가자."
"선물? 뭐 하게? 설도 지났는데."
"그래도 경비 아저씨, 청소 아줌마 양말 하나씩만 사 주자."
"알았어."
차를 타고 가까이 있는 대형마트로 달려갔습니다.
명절이라고 많이 진열되어있던 선물세트들은 이제 한쪽 구석으로 밀려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뭐가 좋을까? 하며 이리저리 살피다 그냥 양말을 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장님과 계장님에겐 뭔가 좀 특별한 선물이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1+1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6년근 홍삼엑기스 39,800원을 주면 한 통을 더 준다기에 그걸로 정했습니다. 그러자
"와! 우리도 못 먹어 본 홍삼이네. 그냥 하나 더 사자."
"뭐하게?"
"우리 가족 나눠 먹으면 되잖아. 내일 대구 형님한테 갈 때 한 통 들고 가고."
"그럴까?"
할 수 없이 한 박스를 더 샀습니다. 명절인데 빈손으로 찾아가 뵐 수도 없어 몸이 안 좋은 큰형수를 위해 사고 싶다고 하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4박스나 되는 것을 낑낑거리며 들고 집으로 내가 먼저 들어서니
"엄마! 이게 뭐예요?"
"홍삼이지. 너희들 먹고 키 크라고 사 왔어."
주차를 시켜놓고 바로 뒤따라 들어서던 남편은
"엄마! 홍삼 사 왔어. 할머니 선물이야."
"엥? 엄마는 거짓말 했네."
"아니야. 그냥 온 가족 다 먹으려고 산거야."
말을 그렇게 해 놓고 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같은 물건을 놓고 아들과 며느리의 생각, 그렇게 다르게 표현할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잘 해 드린다고 해도 이렇게 아들과 며느리는 차이가 나는 것인가 봅니다.
시골에서 생활하시다 몸이 좋지 않아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한 달이 넘어갑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친정엄마처럼 대하고 싶은 심정 간절한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모신다고 해도 아들과는 생각 자체가 틀리고 많이 다르게 표현하니 말입니다.
홍삼엑기스를 하나 가져와 어머님과 아들에게 마시게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아빠가 할머니 드시라고 사 온 거라고 했잖아! 난 안 먹어!"
"아니라니까."
"그냥 할머니나 드시게 하세요."
"너 먹기 싫어서 그러지?"
"할머니 드시고 얼른 기운 차려야죠."
"..............."
또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들보다 못한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마음은 그런 뜻이 아닌데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님보다 아들을 먼저 생각하는 제 마음속에 든 것들을 보니 정성이 많이 부족한 가 봅니다.
옛말 하나도 틀린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죄송합니다.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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