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는 입학 철입니다. 오늘 블로그에 올라온 ‘한 살배기 어린이집 새내기, 눈물의 적응기’ http://blog.ohmynews.com/staright/rmfdurrl/158044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 몇 자 적어 봅니다.
이야기하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시부모님이 계셔 아이 둘, 세 살까지는 키워주셨습니다. 주말마다 딸아이 떼어놓고 돌아서며 우는 게 보기 싫었던지 시아버지께서는
“야야~ 시어머니 모시고 가거라.”
“아버님은 어쩌구요?”
“나야 혼자 있으면 되지.”
그렇게 내 욕심만 차리고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 키웠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반찬을 해서 갖다 드리는 건 즐거움이었습니다. 내 아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딸아이가 5살, 아들이 4살이 되자 둘을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그때에도 시아버님은
“안된다. 우리 손자 누가 때리면 어떻게 해!”하시며 더 키워서 보낸다고 고집을 부리셨지만, 시아버님 혼자 생활하는 것도 너무 죄송스러워 어린이집에 보내기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날, 녀석들은 신기한 장난감에 빠져 나를 쳐다보지도 않기에 살짝 나와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오후 4시쯤 어린이집에 들렀습니다.
“엄마!~”
두 녀석이 달려와 안겼습니다.
딸아이는 5살이라 걱정도 없었는데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들 녀석의 기저귀를 들춰보니 세상에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싸지 않고 멀쩡해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보니 정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여러 번 싸고 갈아야 할 기저귀가 그대로였으니....
며칠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아침마다 울음보를 터뜨리는 녀석 때문에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더니 다행히 누나가 있어서 그런지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 늠름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자라가는 과정이겠지요?
만3살이 지나고 보내었는데 한살배기를 보내는 것 보니 빨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가는 요즘, 어린이집에서도 내 아이처럼 사랑으로 돌봐줬으면 하는 맘 간절해집니다.
아이기 둘
요즘 아이들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눈망울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녀석들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까지 다녔기 때문인지 적응도 금방 해 버리고 친구들을 사귀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국민학교를 입학할 60년대에는 한글은 물론 덧셈 뺄셈조차 모르고 가슴에는 코 수건을 달고 입학을 하였습니다. 조기교육을 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호신용품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위급할 때 잡아당기면 경고음이 울리는 호신 벨이 달린 어린이 책가방을 메고 다녀야 하는 세상이지만 우린 검은 보자기 하나 허리에 차고 달그락거리는 필통을 박자 삼아 신나게 다녔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렇게 코 흘리는 아이는 많았던지. 줄줄 흘러내리는 누런 코를 가슴에 단 손수건으로 쓱 닦거나 그것도 없으면 소매 끝으로 닦았던 기억이 아련 거립니다.
▶ 보자기와 호신용 책가방
쓰기만 해도 뚝뚝 뿌려져버리는 연필, 닦아도 잘 닦이지 않는 지우개, 질이 많이 떨어지는 누런 공책과 책들.....양은도시락에 꽁보리밥과 김치는 기본, 어쩌다 계란부침 한 개 밥 위에 얹어주면 진수성찬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깎아서 쓰는 연필 대신 샤프를 사용하고 양은도시락 대신 위생적인 학교급식을 합니다.
▶ 양은도시락과 학교급식
태어난 곳이 아주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입학 전 공부를 한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흙과 돌, 자연에 묻혀 뛰놀기 바빴고 고사리 같은 손이지만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야 했으니까 말입니다. 제가 입학할 때에는 학생들이 많기도 하였습니다. 한 반에 60명 정도 되었으니 말입니다. 입학식이 있는 날, 엄마는 밭일을 나가시고 혼자 줄을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며칠 동네 아이들과 함께 신나는 학교생활을 하는데 선생님이 출석을 불렀습니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 크게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내 이름 석 자가 들려왔건만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가슴이 콩닥거리고 떨리고 너무 부끄러워서 말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학교생활을 하면서 결석 한번 안 했는데 6년 개근상을 타지 못하였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아이들을 보니 많이도 변한 입학식 풍경 같아서 말입니다.
하나 아니면 둘뿐인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왕자요 공주이기에 입학식 날에도 온 가족이 따라와 축하 해 주는 풍경입니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고, 나쁜 사람이 납치 해 갈 수도 있기에 손을 잡고 애지중지 깨질까 쓸어질까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합니다. 적당히 놀고 학교공부만 열심히 했던 우리와는 달리 책가방의 무게만큼이나 학습의 부담도 백배입니다. 학습부담보다 더 큰 것은 부모님의 휜 허리일 것입니다. 공부를 시키려고 기러기 아빠도 늘어나고 먹을거리는 줄여도 학원비는 줄이지 못한다는 게 우리의 교육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너도나도 보내는 학원 우리 아이만 안 보내면 뒤처질 것 같고, 내가 하지 못한 공부 자식들에게는 대물림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내 자식만은 꼭 대학을 보내야 하고, 또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바보 취급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능력위주라고 해도 아직은 학벌사회임은 틀림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이도 변한 세상을 사는 우리이지만, 입학식 풍경으로 나를 뒤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옛날이 더 그립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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