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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크린 속으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워낭소리'

by *저녁노을* 200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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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배우 최원균/이삼순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 관람가
시간 78 분


줄거리
 

초록 논에 물이 돌 듯 온기를 전하는 이야기.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 삶의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노인의 베스트 프렌드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노인이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도 귀신같이 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최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



 

어제는 봄방학을 하였습니다. 교원들의 인사이동이 있어 저녁 6시에는 송별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

“샘! 우리 영화 보러 갈까?”
“우와! 좋지. 뭐 볼래?”
“워낭소리 보러가요. 요즘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보던데.”

“그럴까?”

마음 맞는 사람과 동행하는 길은 즐거운 법입니다.


할아버지 곁에는 언제나 함께하는 소가 있습니다. 논일을 갈 때도 밭일을 갈 때에도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는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십니다. 땅을 보배로 알고 지내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꼭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산골짝에서 남의집살이를 8년간이나 하셨고, 할머니 또한 16살에 시집 와 평생 농사일만 하시며 살아오신 부부는 9남매를 키워내신 것을 보니 말입니다.


옛날 우리가 어릴 때는 농사일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에는 논에 볍씨를 뿌려 못자리를 만들고 키워 소를 이용해 논을 갈아 품앗이를 해 가며 농사일을 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정실습을 하면 어린아이들의 일손도 한 몫 거들게 되었습니다. 모를 운반하는데 리어카를 밀어주기도 하고, 심을 때에는 논두렁에 엎드려 못줄을 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논바닥을 곱게 해 주기 위해 소를 끌고 쓰레질을 할 때에는 무게를 주기 위해 그 위에 올라타기도 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모를 심는 날에 먹었던 중참과 점심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난 뒤의 그 맛이란....




 

또 하나 시골에는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소 한 마리씩은 있었습니다. 소를 키우는 데는 많은 노동이 필요한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가방 대청마루에 던져놓고 꼴망태지고 들로 나가 풀을 베어오곤 했습니다. 남의 논에서 몰래 베다가 틀키기라도 하면 줄행랑을 쳐야만 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낫질을 하다보면 잘못하여 피가 줄줄 흘러도 겁 하나 내지 않고 풀잎하나 뚝 끊어서 돌돌 말아 피를 먿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내 손은 상처투성이랍니다. 여름에는 소를 끌고 산으로 올랐습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를 몰고 스스로 풀을 뜯어 먹도록 놔두고 우리는 놀이에 흠뻑 빠져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남자들은 개구리 뱀을 잡아서 먹기도 하고, 남의 감자 고구마 콩 등을 서리해 와 구워먹기도 하며 우정을 돈독히 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소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워낭소리’로 찾아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 횃불을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소가 머리를 움직이면 딸랑딸랑 소리를 내어 소의 우치를 알 수 있어 아무리 숲이 짙은 산에서도 워낭소리를 듣고 소의 위치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짚단을 작두에 썰어 방아를 찧으면 나오는 쌀겨와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들, 쌀을 씻은 물을 모았다가 함께 소죽을 끓여 먹였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 들어와 갈라지고 피가 날 정도로 튼 손을 소죽 한바가지를 퍼 와 싹싹 비벼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은 손이 되곤 했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워 새끼를 낳으면 키워서 우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우리의 대학등록금이었던 것입니다. 유일한 벌이였던 그 시절, 당신이 서당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기에 자식만은 대학공부 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농사를 지으셨고 소를 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는 우리 집에서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할머니와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우시장에 소를 팔러 나간 할아버지.

흥정을 하는데

“질겨서 먹지도 못하는 소입니다.”

“다른 소 못 팔아요. 얼른 소 치우소.”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가는 소입니다”

“안 팔아”

“백만원 쳐 드릴게요.”

“안 팔아~”

“그럼 백십만원”

“안 팔아. 차가오면 비켜서는 소인데.”

“할아버지. 그럼 얼마 받으시게요.”

“오백만원”

“............”




 

등뼈가 튀어 나오도록 마른 늙은 소는 최신식 농기구라고는 찾지도 않는 할아버지의 최고의 농기구이며, 어느 장날 달구지에 올라 잠이 든 주인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안전하게 집까지 태워다 주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가용이고, 올해를 넘길 수 없다는 말에도 그렇지 않다는 확신으로 뼈만 남은 다리로 기어서 남은 힘을 다해 꼴을 베어주고, 소에게 해로운 농약을 극구 사양하며, 새로 들여온 젊은 소에 밀려 힘들게 소죽을 먹는 늙은 소에게 베푸는 몸짓 하나 하나에는 사랑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황소를 타고 지나가는 옆에 오토바이가 의기양양 지나가고, 힘겹게 할아버지와 소가 밭은 갈지만 바로 옆에선 기계가 밭을 갈고 있습니다. 젊은 소는 이제 더 이상 일을 배우지도 하는 방법도 모릅니다. 이제 소들은 워낭대신 일제히 번호표를 달았습니다. 사람의 친구가 아닌, 들녘의 일꾼이 아닌 그저 인간의 먹이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며 키웠던 가축들도 오간 데 없습니다. 워낭소리가 사라진 들녘은 기계소리로 뒤덮이고, 땅은 스스로는 농작물을 키워낼 힘이 사자졌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여 농작물을 생산해낼 뿐이며, 이로써 우경(牛耕)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할아버지의 황소는 결국 숨을 거두고 이제 할아버지도 일을 못할 것입니다. 노인과 소와의 아름다운 우정은 이제 다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곧 잊혀질 우리들의 지난 과거처럼...

할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일 뿐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투자를 많이 한 영화도 아니면서 입소문을 타는 이유는 시골에서 자라나 나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오르고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일수록 고향을 찾게 되고 엄마를 찾게 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고삐를 풀어내고,

소코뚜레를 풀어내고,

소의 워낭을 떼어내고,

소와의 인연을 풀어내듯

할아버지의 투박하고 거친 손의 모습이 애잔하기만 합니다.

“좋은데 가거레이~”


떠나고 없는 소를 생각하며 주름진 손 사이로 들려나오던 워낭소리가

지금도 잔잔히 들려오는 듯 합니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스크랩을 원하신다면 http://blog.daum.net/hskim4127/13744311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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