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 생일이라 대형마트에서 수박 한 통을 샀습니다. 그런데 잘라 먹으려고 하니 웬걸, 당도는 하나도 없고 농한 쉰 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습니다.
"딸! 여기 와서 수박 맛 좀 봐~"
"엄마~ 못 먹겠어."
"어쩌냐? 아빠도 없고..."
늘 이럴 경우, 남편이 들고 가 바꾸어 오곤 했는데 참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물건을 사오는 건 잘 해도 바꾸러 간다는 것 힘든 일이잖아요.
“우리 그냥 이쪽은 파 내 버리고 먹을까?”
“엄만! 바꿔오면 되지 왜 그래?”
“가기 싫어서...”
“아빠한테 전화 해?”
그날따라 더 늦게 온다는 남편,
"당신이 갔다 와~ 그런 것도 해 버릇해야 해~"
"그래도...."
"좀 강해져라~ 내일모레면 쉰이 다 된 할머니가 할 소리도 못하니 원~"
"...................."
"다른 사람들은 잘도 따져가며 살더니 당신은 와 글노?"
정말 나이 값도 못하며 사는 것일까요?
놀려대는 남편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끌고 마트로 향했습니다.
안내대 앞에 서서 미안스러움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수박이~"
"아~ 예~ 저기 수박 파는 담당자에게 가 보세요."
한참 수박을 할인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저기요. 어제 사 갔는데 수박이 상한 것 같아요.”
“영수증 줘 보세요.”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내 느낌은 너무 쌀쌀하게 대하는 것 같아 더 무안해졌습니다.
“여기요.”
“영수증이 어제 날짜가 아닌데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
수박과 함께 가져온 영수증을 보고 나왔는데 다른 날짜였던 것....
“어? 분명 맞게 가져 왔는데...”
“영수증 없으면 안 됩니다.”
“아니, 그래도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영수증 없이는 안 됩니다. 이렇게 바꾸러 오는 고객이 한 둘 아닙니다.”
“여기서 샀으니 가져 온 것 아니겠습니까. 영수증 가지고 또 와야 하니 그냥 바꿔주세요.”
“안 됩니다.”
단호하게 거절 하였습니다.
“그럼 다음에 시장 보러 올 때 영수증 가지고 올 테니 그 때 바꿔 주세요.”
옥신각신 된다 안 된다며 말씨름을 하다 포기하고 아이들 저녁간식으로 좋아하는 수박을 썰어 줘야하기에 하나 더 사갈까 망설이고 있을 때, 책임자 되시는 분이 다가 와
“고객님! 왜 그러세요?”
“수박을 사 갔는데 상했잖아요.”
“물건은?”
“벌써 제가 버리고 왔어요. 근데 팀장님~ 영수증을 안 가져왔어요.”
“그냥 하나 가져가라고 해. 얼마짜리인 줄은 본인이 아실 거 아냐!”
“네. 9,800원 주고 사 갔어요.”
그리고는 저 만치 사라져 갔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주객이 바뀐 것 아닌가? “고맙습니다.” 라며 제가 인사를 꾸벅 하고 나왔습니다. 친절을 생명으로 여기고 고객이 왕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영수증을 잘못 들고 간 탓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물건을 팔았다면 이런 일도 없을 터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 지 참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새로 받은 수박을 들고 나오는 데 뒤통수가 왜 그렇게 따갑던지....
당당히 걸어 나와야 되는 내가 더 잘못한 것 같아 스스로가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
허긴, 겉은 멀쩡한데 그 속을 알리가 없으니...
새로 받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잘라 먹으며
“와! 오늘 엄마가 수박을 다 바꿔 오고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따라 수박이 더 맛있네.”
“쩝~~”
아이 둘은 나를 쳐다보며 웃기만 하였습니다.
나이만 들었지 늘 물가에 내 놓은 아이 같다는 말을 하는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당당히 따지고 내 것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은 손해 보며 살아가는 것도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빈틈없는 것 보다는 모자란 듯 흘러 놓기도 해 챙겨 줘야하는 사람으로, 꽉 찬 것 같은 아름다움보다 여백의 미를 가진 사람이고 싶습니다.
요즘엔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세상, 살아내기 어려운 성격이라 너무 바보스러운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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