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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어머님, 샴푸를 거기 둬서 미안합니다.

by 홈쿡쌤 2009.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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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샴푸를 거기 둬서 미안합니다.
 

  어른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실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건강하신분이라면 몰라도 불편하신 몸 돌보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고, 오랜 세월 함께 모시고 지내시는 분에게 효부상을 주는데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시어머님은 83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살림에 어려운 세월동안 6남매 키워내셨기에 안 아픈 곳이 없으십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지자 고혈압이 있는 어머님은 견디지 못하고 우리 집으로 모셔온 지 이제 달포가 되어갑니다. 우리 집의 생활방식은 모두 시어머님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뜨면 식전에 마셔야 할 한약 데워서 드시게 하고, 따뜻하게 밥 지어서 온 가족이 나눠 먹습니다. 하지만, 치아가 좋지 못한 어머님을 위해 나물은 푹 삶아 무쳐야 하고, 딱딱한 것보다 연한 것으로 구이보다 물기가 자작하게 있도록 조리나 찜으로 바꾸었습니다. 특히 매운 것을 드시지 못하기에 고춧가루는 절대 사용하지 못하고 국물 없이는 밥을 넘기지 못하니 필수이고....사실 우리끼리만 있다면 대충 먹고 넘기기도 하는데 시어머님의 몸을 생각하면 그 대충도 넘길 수 없는 한 끼입니다. 식사시간도 느리다 보니 먼저 밥 먹고 난 후에도 얼른 일어서지 못하고 누구 한 사람 앉아있어 줘야 합니다.


며칠 전, 이상하게 눈 주위가 붉게 보이고 부은듯 한 걸 아들이 보고 

“할머니! 얼굴이 왜 그래?”
“몰라 간지러워 휴지로 닦았더니 그러네.”

남편은 “휴지를 왜 사용 해?” 하면서 핀잔을 줍니다.

어머님이 아프시다는 말을 듣고 한의원에 다니는 막내 동서가 한약을 지어 보내 먹고 있고, 혹시 침을 맞으면 더 빨리 회복되실까 하는 생각에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 매일 침을 맞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한의사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풍이 아닌데 풍 약을 지어 먹어서 그런가?” 하시며 한약을 드시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저녁에 한약을 지어 보낸 동서에게 전화해 시어머님이 이상하다고 전했습니다.


약을 끊고 이튿날이 되어도 볼그레한 볼은 그대로였습니다. 휴지로 닦았다는 말을 듣고 남편이

“여보! 엄마 얼굴을 한 번 비누로 씻겨봐.”
“왜?”
“휴지 독이 올랐나 싶어서...”
“알았어.”

시어머님을 모시고 화장실 변기에 앉혔습니다.

물을 받고 어린아이 세수시키는 것처럼 수건으로 목을 감았습니다. 맨얼굴에 따뜻한 물을 묻혀 비벼보니 미끌미끌한 느낌이 났습니다. 그래도 비누질을 하고 씻어내는데 아무리 해도 비누 물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 이상해. 아무리 해도 비눗물이 빠지지 않아.”

“왜 그래?”
“모르겠어.”

물수건으로 닦아내기를 몇 십 번,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세상에, 어머님 아마 샴푸를 바르셨나 봐.”

“설마!”

“자꾸 이렇게 나오는 것 보니 분명해.”

정말 30분을 넘게 닦아냈습니다.

“팔이 아프제?”
“팔이 아니고 허리가 아픕니더.”

“아이쿠 내가 괜히 죄를 저질러 널 더 힘들게 한다.”

“아! 아닙니더.”

괜스레 허리 아프다는 말을 했나 봅니다. 안 그래도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게 마음 쓰는 어머님이신데....


겨우 다 씻기고 나오자

“엄마! 이거 얼굴에 발랐어?”
“응.”

“엄니~ 생긴 병모양이 제가 사 드린 것하고 같잖아요. 이걸 바르면 되는데.”

“난 아이들 바르는 로션인 줄 알았지.”

“당신은 왜 샴푸를 화장대에 놔둬?”
“샘플 여행용이라 아무 생각 없이 뒀는데...”

“우리 엄마 얼굴에 발라라고 놔뒀지?”

“아마 그랬나 보다.”

미안하게 남편의 말에 어머님도 맞장구를 칩니다.

“아이쿠! 미안합니다. 거기 놔둬서.”

“엄마! 잘 모르겠으면 물어봐. 알았지?”
“오냐.”

그렇게 한차례 소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괜히 한약까지 끊어가며 지냈나 봅니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되어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 화장품 이것저것 손대서 낭패 보는 일 가끔 일어나곤 했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눈도 침침하고 잘 안 보이니 비슷비슷하게 느껴지셨나 봅니다. 홍시 껍질 같았던 피부가 어느새 두꺼워져 껍질이 앉은 것처럼 꺼칠꺼칠 거칠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목욕탕에 모시고가 깔끔히 씻어 드렸습니다.



어머님! 잘 보살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의 보살핌 받고 자라났고, 이만큼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제 그 사랑 되돌려 드리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따스한 봄이 오면 조금씩 기력 찾아가시길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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