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속으로~

강심장, 조혜련의 눈물어린 아버지 사랑

by 홈쿡쌤 2009. 12. 2.
728x90
반응형
 

강심장, 조혜련의 눈물어린 아버지 사랑


어제저녁 우연하게 SBS ‘강심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막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조혜련의 “우리 아빠 이야기”를 보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 좋은 기억이 많다는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 몸이 약해 안 좋았고, 서라벌예대에서 연기를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끼를 닮은 그녀였지만, 항상 허름한 점퍼와 바지에 낡은 짐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기에 학교가 끝나고 아버지가 그 잠바에 그 바지에 이빨 뺀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너무 창피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싫었다는 그녀.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가 말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주면 되는데 스스로 무시하고 살았고, 또 ‘태조 왕건’에 엑스트라로 나오고 싶어 하셨는데 걱정 반 짜증 반으로 무시해 버렸답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어머니가 아버지가 이상하니 빨리 오라고 하셔서 갔더니 다행히 날 기다려주셨다. 뼈만 남았고 사람도 인식을 못 하는데 ‘나 왔어요.’라고 하니까 입을 벌리고 눈이 웃더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에 ‘아버지 너무 사랑해요. 아버지 마음도 몰라주고 미안해요’라고 말을 했다”며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고, 아버지가 평생 우리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으로 살았구나”라고 털어놓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놓는 바람에 따라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내일모레면 쉰이 되는 나로서 아버지는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짊어지고 가야 할 가족에 대한 책임 다 하기 위해 자신의 한 몸 다 바치고도 모자랐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가진 것 없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자랐고 그러다 어머니를 만나 악착같은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집안일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버진 5일장을 돌며 소 장사를 해 우리 6남매를 공부시켰습니다. 그 당시 시골에서 대학을 보낸다고 하니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저 사람 미쳤어.’라는 놀림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자식농사를 위해 발품 팔아가며 앞만 보고 내 달리셨던 것입니다. 막내로 태어난 저는 몸이 허약했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아버지는 학교로 우산을 들고 왔습니다. 자세가 바르지 않아 약간 표시 나지 않게 등이 굽은 아버지가 창피해 비를 맞고 집으로 달려온 기억이 있어 조혜련의 눈물에 나 또한 눈물이 앞을 가렸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라도 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기 때문에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중풍을 몇 년을 앓았습니다. 엄마의 깔끔한 성격 탓에 병간호는 엄마 몫이었지만 시집 안 간 노처녀로 주말이면 늘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TV 채널 싸움을 하곤 했습니다. 시끄러운 음악방송을 틀어놓고 듣고 앉아 있으면 아버지는

“아이쿠! 이 앓는 소리 되게 하고 있네.”

“이게 뭐가 이 앓는 소리야?”
“다른데 좀 틀면 안 되냐?”
“안돼!”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아부지! 그게 내 맘대로 되나?”하며 더 큰소리를 쳤습니다.

식탁 앞에서도 식성이 비슷하여 구은 생선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상에 올라온 갈치 고등어 서로 먹겠다며 젓가락 싸움을 벌였던 철없는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였습니다. 아픈 아버지의 마음은 하나도 헤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일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야야! 오면서 아부지 약 좀 사와라.”
“무슨 약 사갈까?”
“응 설사를 자꾸 하네.”
“알았어.”

약봉지를 사 들고 집으로 들어서니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엄마! 아부지 약 사왔어.”
“니 아부지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

방으로 들어서니 가만히 눈을 감고 계시는 아버지의 몸은 아직 따뜻하였습니다.

“아부지! 내 시집가는 것도 안 보고 돌아가시면 어떡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은 아버지가 야속할 뿐이었습니다.

“그만 울어. 니 아부지 저승도 못 가것다.”

막내의 울음소리는 저승까지 들린다고 했기에 엄마는 나를 자꾸 말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게 준 사랑 받기만 했는데 아버지의 모습 창피하다고만 여겼는데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부모님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풀어가며 지내시길 빕니다.

저처럼 후회하며 살아가지 마시구요.


 

그녀가 전해 준 평범한 진리 실천하시며 살아가시길 바래봅니다.

따뜻한 이야기 전해 준 조혜련 파이팅^^



어젯밤은 아버지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게 아버지 덕분임을 압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공감가는 이야기라면 아래 추천을 살짝 눌러주세요
로그인 하지 않아도 가능하답니다.^^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들면 구독+해 주세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