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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시어머님의 낡은 팬티

by 홈쿡쌤 200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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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의 낡은 팬티



얼마 전, 둘째 아들의 정년퇴직으로 인해 멀리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작은 아주버님 댁을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막내 삼촌네 가족과 함께 시어머님도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지내고 여수로 향했습니다. 이제 시어머님의 연세는 82살로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향일암을 다녀올 때에도 다리가 아파 따라갈 수가 없어서 차 안에서 계셔야 했었습니다. 한 시간가량을 혼자 기다려야 했기에 미안한 맘 가득하였지만 "난 괜찮아~ 너희들 끼리 잘 댕겨와~" 하시는 어머님이십니다. 내려오는 하산 길은 종종걸음으로 발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저녁을 드실 것 같아 시골에서 간단한 식사준비를 해서 같이 먹고 집으로 오기 위해 차를 몰고 나오는 우리에게 배웅을 나온 어머님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오늘은 아들 노릇 톡톡히 하네~" 하십니다.

“그럼 엄마를 혼자 가라고 할까? 자다가 울지 마~”

평소, 남편은 속마음과는 달리 이럴 땐 이러고, 저럴 땐 저러고 하면서 어머님에게 많은 간섭을 하는 편이라 그렇게 말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그저 어머님께 '예, 예..' 하는 데 말입니다.

그래도 어머님은 가까이 있는 아들이 믿음직스럽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 청소 해 놓고 빨래를 돌려놓고 갔더니 딸아이가 늘어놓아 가을햇살에 잘 말라 있었습니다. 들어서자 말자 또 주부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먹은 그릇들 설거지를 하고 난 뒤, 하나 가득 걷은 빨랫감을 차곡차곡 개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 옷, 수건, 속옷, 양말들을 보기 좋게 옷장 속에 넣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낡은 팬티 하나가 기분을 묘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건 바로 시어머님 것이었습니다. 빨랫감 속에 들어있어 그냥 세탁물에 함께 들어 간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서랍장을 열어 보니 새로 사 드린 팬티 통이 그대로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 늘어 난 팬티에 검은 고무줄을 넣어 입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청승을 뜨냐고 남편은 투정을 부리지만, 우리 어머님이 살아온 그 인생길을 알기에 뭐라 말 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 왔습니다.



지리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고, 혼자서 먹을거리 장만 해 가며 챙겨먹어야 하는 끼니도 걱정이 되어

"엄니! 그냥 추운데 집에 와 계세요"

"싫어야, 낮에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뭐 하냐?"

"그래도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요!"

"괜찮아. 이웃집 할망구들이랑 놀면 돼"

"오시면 좋을 텐데.."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편히 있어"

혹시나 자주 전화를 드려 봐도 정말 친구 집에 가셨는지 내내 긴 벨소리만 듣다 끊어 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님이 늘 걱정이 됩니다. 혼자 계시는 것이 더욱...

'내가 무슨 염치로 가것노?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 아이들 챙기고 밖에서 일하는 며느리한테 가만히 앉아서 밥을 어떻게 받아 먹누? 집에 있는 사람이면 또 몰라도..' 그리고 큰며느리도 아닌 셋째며느리에게 간다는 게 좀 꺼려지나 봅니다. 엄마처럼 생각하고 싶은데 어머님은 역시 며느리로 대하시나 봅니다. 젊어서 많은 고생하신 우리의 어머님이십니다. 없는 살림살이에 뼈가 녹을 때로 녹아 버렸는지 늘 다리가 아프다 하십니다. 조금만 드시고도 속이 편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인공치아로 제대로 씹을 수가 없으니 그렇나 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논 몇 평으로 육 남매를 대학공부까지 시킨 억척같으신 어르신들이었는데 어찌 함부로 무엇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내 물건 잃어 버려도 찾을 생각도 않고, 아이들이 잊어버리고 와도 찾지 않고 다시 사 주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우리 어머님의 아끼는 마음을 요즘사람들이 보면 남편의 말처럼 청승스럽다 할 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부모님의 그 어려운 삶을 알기에, 또한 보고 자라왔기에 웃을 수 없었습니다. 옷장으로 가져다 넣기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일부러 물어 보았습니다.

"딸! 이 팬티 누구 건 줄 알아?"

"몰라요. 어? 다 떨어진 걸 누가 입어요?"

"알아 맞혀 봐" 고개만 갸우뚱거리더니

“아!~ 할머니 것이네.”

일부러 흔들어 보였는데 눈치빠른 녀석은 단 번에 알아 차렸습니다. 속으로는 할머니의 절약하는 정신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리 물질만능 주의로 흘러간다고 해도 우리어른들이 지켜왔던 자린고비 같은 절약정신은 버려서는 안 되겠기에 시어머님의 팬티가 자랑스럽기까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디 새 물건 사용할 줄 몰라서 그러겠습니까. 그 누가 새 옷 입고 싶은 마음 없겠습니까. 하지만, 검은 고무줄까지 넣어서 입는 우리 어머님의 그 맘 난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쌀 한 톨도 싱크대로 흘러 보내지 못하게 하시고, 보리 고개 넘겨가며 주린 배 물로 채워가며 사셨던 분 이시니까 말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와 유아시절을 보낸 우리 아이들

"수도꼭지 꼭 잠가라"

"전등 끄라"

할머니의 아끼는 그 정신을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들어왔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도 화장실에 누가 있는데도 습관처럼 뛰어 와 끄고 가는 현상이 벌어지곤 하니 말입니다.



풍족하게 부족함 없이 자라나는 우리아이들에게 아끼는 게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시는 어머님이시기에 그 자리가 위대 해 보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어머님의 모습, 바로 여러분의 어머님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풍족해도 아끼고 절약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어머님이시기에 더욱....


오래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어머님~

고맙고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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