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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잊고 살아가는 여자 '자신의 이름'

by 홈쿡쌤 200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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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아가는 여자 '자신의 이름' 



  내일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다 되어가지만, 마음은 늘 이팔청춘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마음보다 늘 따라주지 않는 몸이라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고 건강하지 못하기에 ‘공동묘지에 가서 좀 바꿔 온나!’라고 놀려대는 남편입니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겨야 하는데 그것도 맘대로 되질 않아 운동은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고 뒷전으로 미루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나의 손을 이끌고 집 가까이에 있는 헬스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석 달에 10만원이면 공짜잖아!”

벌써 가격까지 알아 봤던 모양입니다.

“당신 오래 살려면 운동 해 알았지?”


그렇게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이 넘어갑니다.

어제 저녁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 러닝머신을 뛰고 난 뒤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어디서

“김혜숙!!!~~~”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기계음들이 내는 소음 속에서 내 이름이 가느다랗게 들러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 누구지?”

다시 한 번 “김혜숙!!~~” 하기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운동을 하고 있던 사람의 시선은 모두 내게로 쏠렸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다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남편이 서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멈추고 얼른 뛰어가

“뭔 일 있어요?”

“아니, 친구 만나고 들어오는 길이야.”

“놀랬잖아.”
“무슨 운동을 그래 열심히 하노? 오늘만 하고 안 할 끼가? 어서 집에 가자”

“쉿~”

“몸살 하것다.”

“................ 알았어요.”



남편을 보내 놓고 돌아서는데 관장님 하시는 말씀,

“사장님이 멋쟁이시다.”

“왜요?”
“아내 이름을 다 불러 주시고...보통 여자들 이름 잊어버리고 살잖아요.”

“그런가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흔했지만, 결혼하는 그 날부터 '여자의 이름'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여보!" 시댁 어른들은 “새 아가!”“어멈아!”라는 호칭으로 부르시고

이웃들은 "새댁!" "반성 댁(宅)!"하고 부르고 아이를 낳고 나니, 이름 아닌 이름 "누구 엄마!"로 바뀌었고, 또 통상적인 이름 ‘아줌마’에 익숙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얼른 샤워를 하고 헬스장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 아직  안 갔어요?”
“이왕 기다린 것 끝까지 기다려 줘야지~”

“오늘 관장님한테 당신 멋쟁이라는 소리 들었어.”

“왜?”
“당신이 내 이름 불러줬다고....”

“허긴, 그러고 보니 당신이름 불러 본지 억수로 오래 된 것 같다.”

“..............”
“가끔 불러줄게.”



자신의 이름은 잊은 채, 오직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기 수 십 년,

세상이 많이 바뀌어 자기개발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희생과 봉사로 일관하는 우리네 한국판 '여자의 일생'처럼, 오랫동안 흘러 내려온 어머님들의 삶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이름'을 불러주어도 괜찮을 입장에 있는 분들이라면 주변 '여자의 이름'을 가끔씩이라도 불러주심이 어떠할는지요? 그렇게 해서 여성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어 '이름 없는 여자'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함도 좋을 듯 합니다.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손으로 전해오는 따뜻한 체온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행복했습니다. 오랜 기간 잊어버리고 산 내 자신을 되찾은 그런 기분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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