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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시어머님의 비데 체험기

by 홈쿡쌤 2009.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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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머님의 비데 체험기


 꽁꽁 얼었던 땅도 서서히 녹아내린다는 절기로 오늘이 입춘입니다. 창문을 열어놓아도 훈훈한 순풍이 불어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던 시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오신지 제법 되어갑니다. 고혈압이 있는 83살이나 되는 연세이고 추운 겨울 기온차가 너무 심하다 보니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모시고 왔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눌한 말투와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시더니 이젠 제법 가족들이 둘러 앉아 화투놀이도 곧잘 하십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년을 사자고 했던 화장실에 비데가 배달되어왔습니다.

“어? 이게 뭐야?”
“비데야.”
“그렇게 사자고 할 때는 눈도 꿈쩍 안 하더니 갑자기 웬일이야?”
“사실은 엄마 때문에 사 왔어.”

남편은 어머님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난 뒤 옷을 올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더니

“무슨 냄새가 나?”
“깨끗하게 안 닦았나 봐. 속 옷 갈아 입혀야겠다.”

몇 년간 졸라도 ‘물로 씻으면 되는데 뭐 하러 사’ 하면서 사지 않더니 시어머님의 몸에서 냄새가 나자 그길로 바로 달려가 비데를 사 들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기사가 들어서고 척척 비데를 설치 해 주고 난 뒤 어머님에게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볼일을 보고 밖으로 나오신 우리어머님

“야야.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왜요?”
“저렇게 깨끗하게 엉덩이까지 씻어주니 말이다.”

그러시면서 동네 노인정에서 다른 할머니들이 화장실 변기에서 엉덩이를 씻어 준다는 말을 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참 좋아졌죠?”
더 많은 기능을 가진 비데들이 많지만, 앉으면 따뜻하고, 온수까지 나오다 보니

“오래 살다 보니 이런 호사도 누리며 사네.”

"우리는 어머님 덕분에 호사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때문에 산 거여?"
"아들이 당장 사 오네요."
"고마워라."

우리 어머님은 16살에 시집을 와 살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6남매를 낳아 당신 몸 희생해 가며 잘 길러내신 분입니다. 그 때의 변소에는 용변을 보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 밑씻개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뻣뻣한 짚으로 엉덩이를 닦으셨다고 합니다. 농가에서 측간은 천연거름을 생산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화학비료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측간 거름은 용도를 잃었고 요즘은 시골에서조차 깔끔하게 단장된 수세식이나 양변기 사용이 널리 보급되어 있습니다.

“할머니! 신문지로 닦았다고 하던데. 검정고무신에서.”
“신문지는 잘 사는 사람들이 사용했지. 우린 신문지도 없었어.”

그 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난 후부터 책을 하나 갖다놓고 한 장씩 찢어가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에게 부드러운 화장지를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화장실에 설치한 비데가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비데(bidet)는 희랍어로 '여성의 뒷물하다' 라는 뜻으로 용변 후 수압으로 물 세척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위생기기입니다. 16세기경부터 서구의 귀족 계급들이 이용하였고, 여성들의 부인병 예방을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인도의 농촌마을에는 아직도 화장실에 휴지대신 물이 담긴 양동이가 놓여 있어, 일을 본 후에는 왼손을 이용해 물로 뒤처리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인도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강으로 우르르 몰려간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은 비데를 사용하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큰일을 보고 휴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큰일을 보고 세정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세척을 해주고 다시 건조를 누르면 봄바람처럼 온풍이 불어와 보송보송하게 해 주고, 작은 일을 본 후에도 비데버튼 하나로 뒷물을 한 것처럼 상쾌합니다. 어느새 새로운 문명이 맞춤옷처럼 내 몸에 꼭 맞는 것 같고, 어릴 적 종이를 구겨 뒤처리하던 생각을 하니 화장실문화가 두루미걸음으로 진화한 것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신문기사를 보며 실소를 터뜨린 기억이 생각납니다. 젊은 샐러리맨이 사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데 화장지로 닦으면 될 걸, 이 젊은 양반 화장지로 대강 수습을 하고 사우나로 달려갔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다. 평소 비데 사용이 습관화 되어 물로 씻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더라 는 것. 새로운 기기가 발명되고 보다 편리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간혹 벌어지는 세태를 보며 편리함보다 청결 우월주의에 깊숙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불견은 당사자를 탓해야할지 환경을 탓해야할지 잠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 어머님은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겁니다.

“엄마 왜?”
“응. 오늘 내가 요상한 경험을 안 했나!”

“그래?  깨끗하게 자주 사용해. 냄새나지 않게.”

“알았어.”

모녀간에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랑을 합니다.


어머님,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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