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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노인정에서 왕따 당하는 시어머님

by 홈쿡쌤 200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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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에서 왕따 당하는 시어머님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도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주말, 늘 그렇지만 모든 일 뒤로 미루고 먹거리를 챙겨 혼자 시골에서 지내시는 시어머님을 찾아뵈었습니다. 83세의 나이로 6남매 낳아 키우시는데 몸과 마음을 다 바쳤기에 안 아픈 곳이 없으시다 합니다. 그 연세에 조석이나 끓여 드시며 지내시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툇마루에 앉아계시다 우리를 보고는

“어서 오니라.”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응. 나야 잘 있었지.”

얼른 부엌으로 가서 저녁준비를 하였습니다. 시장 봐 간 것으로 국도 끓이고 반찬도 만들고 있으니

“야야! 내 핸드폰이 없다.”

“어디다 두셨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노인정에 두고 왔나 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어머님과 함께 노인정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도착하니 아직 집에 가지 않으신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내동댁 뭐 하러 왔노?”

“핸드폰이 없어서 두고 갔나? 해서.”

“울리지도 않은 핸드폰 찾긴 왜 찾아?”

“.............”

나의 핸드폰으로 어머님 번호를 눌려보아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여기 없나 봐요. 얼른 가요.”

어머님을 모시고 노인정을 빠져나왔습니다.

내 뒤통수에다 대고 또 한마디 합니다.

“나이 들면 얼른 죽어야지. 자식들 고생시키는 것 좀 봐!”

“...........”

아무리 우리 어머님이 힘이 없고 그래도 들릴 정도로 그런 말을 하니 화가 났습니다.

정말 자기도 얼마 있지 않아 그런 모습일 텐데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어머님 가방 속에서 드르르 진동이 울렸습니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화부터 냅니다.

“어떤 할망구야 대체?”

“자식이 여섯이나 되면서 낮에 전화 한 통 안 오는 건 나밖에 없어.”

“...........”

사실, 퇴근을 하고 저녁에 아이들을 시켜 집으로 전화하기 때문에 낮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자식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알아봐야겠다. 대체 누군데?”

“됐어. 그만 해.”

나이가 들수록 체면과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기 마련인데 나 편한 시간에 전화를 한 것 같아 죄스러움 감출 수 없었습니다. 늙어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서러운 법인데, 남에게 그런 소리까지 듣는다면 그 마음 어땠을까 생각을 하니 아찔해 집니다. 6남매 자식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소외감 말입니다. 곁에서 아무 말도 안하면 모르겠지만...


저녁을 함께 먹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또 혼자 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였습니다.






어제는 시어머님이 몸이 안 좋은지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병원 가야겠다고 하시며 말입니다. 시간을 내서 어머님을 모시고 왔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니 어머님이 나를 반겨줍니다.

“야야! 어서 와! 고생 했제.”
“어머님. 오셨어요.”

가방을 놓고 가만히 생각하니 어머님 목욕을 시킨 지 오래된 듯하여

“어머님! 목욕 시켜 드릴까요?”
“응. 그래줄래?”
단추를 빼고 올라가지 않는 팔을 빗겨가며 러닝을 벗기니

“내가 러닝을 두 개 안 입었나?”
“아뇨. 러닝을 왜 두 개 입어요?”
“할망구들이 냄새 난다고 해서 러닝을 갈아입고 가는데 혹시나 해서.”
“냄새난다고 해요?”
“머리를 감았네. 안 감았네 하는 할망구 하나 있어.”

가만히 들어보니 언젠가 어머님에게 심한 말까지 해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 신세까지 졌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깔끔하게 씻고 나온 어머님께 바디스킨을 발라주었습니다.

“어머님! 집에 가실 때 이거 꼭 챙겨가세요. 목욕하고 몸에 바르세요.”

“알았다.”

“우와! 우리 어머님 예쁘다.”

“다 늙은이를 놀리네.”

“호호호~”

늙으셔도 제 눈에는 볼이 빨갛게 되어 꼭 새색시처럼 보였습니다.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집 뒤에 있는 텃밭 소소하게 가꾸며 친구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노인정이 좋다며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해도 싫다는 어머님이시고, 수더분하고 마음씨 고와 다른 사람과 다툴 줄도 모르시는 분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요즘 아이들 말로 왕따를 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우리가 노인정에 자주 찾아가지 않아서 그런가?”
노인정을 운영하는데 면사무소에서 일부 지원이 되긴 해도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들이 가끔 찾아와 맛있는 것도 사 주고, 현금을 주고 가는 일이 있나 봅니다.

"받아먹고 안 좋아할 사람 어디 있겠어.”

그런 말을 들으니 동네 인심도 너무 야박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단에서나 삐딱하게 말하고 꼬투리 잡는 사람 한 사람은 꼭 있는 법이지만 그래도 어머님께 너무했다는 생각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 이제 노인정 안 가시면 안 돼요? 어머님께 그런 심한 말 하는 거 싫어요.”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있잖아. 괜찮아.” 하시면서 긴긴 하루 시간 보내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하십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기분 좋게 잘 어울리면 좋으련만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밤에 통화하는 것도 좋지만, 낮에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것이 효도란 걸 알게 되었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신경 쓸게요.

그리고 낮에도 자주자주 전화 드릴게요.


 

PS : 바리바리 싸다 드리진 않았지만, 제사 때나 명절, 생신 때 음식 꼭 돌립니다. '나도 많이 얻어먹는다.' 하시기에 더 많이 챙겨서 보냅니다. 어머님 농사지은 것, 제가 사가지고 간 과일도 노인정으로 가져갑니다. 셋째 며느리의 괜한 글로 다른 형제들 욕 먹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서로 나누고 싶은 따뜻한 마음가지고 사는 다들 효자들인데....


모두가 같이 외로운 분들인데 동네에서 함께 어울려 잘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우러나서 하는 게 효인 줄 알았는데, 이번 일로 눈에 보이는 효도도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댓글 보니 다들 부모님께 잘 하시는 효자 효녀들임을 알겠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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