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줄기 파마 해 보셨어요?
우리 아이들 중학생이 되고 보니 어린이날은 그냥 쉬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녀석들 초등학교 때에는 행사장에 데리고 가 하루 종일 보내다 보면 온몸은 녹초가 되곤 했는데 말입니다.
“엄마! 어린이날 선물 안 줘?”
“뭐? 중3이나 되는 녀석이 무슨 어린이날?”
“그래도 선물은 줘야지.”
아직 어른이 안 되었기 때문에 선물을 줘야 한다나요? 참나~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에 시내 나가서 옷 한 벌씩 사 주니
“엄마! 고마워요.”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둘은 공부한다고 책상 앞에 앉아 버립니다.
“야~ 우리 뒷산에나 갈까?”
“싫어. 엄마나 다녀오세요.”
남편도 동창회 가고 없고, 혼자 그냥 보내기 뭣하여 등산화 챙겨 신고 나섰습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오갔습니다. 아파트만 벗어나면 오를 수 있는 뒷산이라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연둣빛으로 변한 산은 아름다운 수채화를 연상하게 하였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나를 반겨주었으며, 귓볼 스치며 지나는 바람, 솔잎이 비벼내는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니 어디선가 내 코끝을 자극하는 그 무엇, 바로 아카시아향기였습니다.
“어? 벌써 아카시아가 피었나?”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살피니 머리 위에 하얗게 핀 아카시아가 나를 향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우와! 너무 예쁘다.”
혼자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아카시아 꽃은 탐스럽습니다. 가시를 숨기고 푸르름과 하얀 꽃의 향기를 뿜어내는 순백의 자태는 나를 유혹하고도 남았습니다. 만개한 아카시아 꽃이 풍만한 전신을 늘어뜨린 모습이 한마디로 풍요롭기만 합니다. 아카시아 꽃에는 꿀이 많습니다.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는 꿀벌의 날갯짓도 바쁘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카시아 꽃 숲에 들어서면 진한 향기에 누구든 어지럼증을 느낄 수밖에 없나 봅니다. 여린 바람이라도 스쳐 지나가면 꽃 주저리가 움직이며 아주 멀리까지 향기를 퍼뜨립니다.
▶ 선학산 정상에서 본 남강다리
아카시아 꽃은 내게 추억의 꽃입니다.
어릴 적, 아카시아 잎을 따면서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계단 먼저 오르기도 하였고, 꽃을 따 꿀을 쪽쪽 빨아 먹기도 했었습니다. 사춘기 때에는 나를 '좋아한다.' '안 한다' 점을 치기도 했었고, 아카시아 잎을 다 따 내고 난 뒤 줄기를 가지고 예뻐지고 싶은 여린 마음에 친구들과 머리에 감아 파마를 하곤 했던 추억을 가득 담고 있는 아카시아 꽃 이였기에 내겐 그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 가위 바위 보를 하고 난 뒤, 잎을 떼어 내고 줄기만 남깁니다.
▶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돌돌 말아줍니다.
▶ 부드러운 머리는 1분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잘 나옵니다.
그래도 엄마 마음 헤아린다고 감긴 했는데 학원가야 한다며 달아나 버린 딸아이에게 아름다운 추억하나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아련히 사라져 간 나의 추억을...... 어린이날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아름다운 추억 없으신가요?
향수를 자극하셨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
'아련한 추억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간식, 삐삐를 기억하시나요? (32) | 2009.07.01 |
---|---|
사라져버린 빨래터와 빨래 방망이 (19) | 2009.06.25 |
추억속으로의 여행 '작두 썰기' (7) | 2009.02.03 |
가까워진 설날, 추억속 여행 '뻥튀기' (9) | 2009.01.23 |
아련한 추억속으로의 여행 '풀빵' (4) | 2008.10.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