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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어버이날, 너무 그리운 친정 부모님의 향기

by *저녁노을* 201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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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너무 그리운 친정 부모님의 향기


오늘은 휴일이자 어버이날입니다.
6남매의 막내이다 보니 친정 부모님은 벌써 하늘나라로 떠나신지 오래입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세상사 잘 풀리지 않을 때
늘 마음속 한편에 빈자리가 있어 씁쓸해지곤 합니다.
"엄마!"
"아부지!"
불러봐도 대답없기에.....

어린이날, 두 녀석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가고 우리 부부만 남았습니다.
오전 내내 집안일 하고 나서
"여보! 우리 친정 갔다 올까?"
"왜? 아무도 없는데."
"응. 엄마도 보고 싶고, 쌀도 떨어져 방아도 찧어오고."
"우리 쌀도 아닌데?"
"올케언니가 갖다 먹으라고 했어."
쌀은 둘째치고 며칠이면 어버이날이라 친정나들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켰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면서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산소로 먼저 향합니다.
부모님과 큰오빠가 잠든 산소에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그저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엄마! 나 왔어."
독백처럼 혼자 중얼거립니다.





▶ 텅 비어 있는 친정집입니다.


▶ 장독대와 부엌


▶ 잠겨있는 안방 문




▶ 목단

▶ 초롱꽃



▶ 사과꽃


▶ 민들레


▶ 산초



▶ 감나무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집도 안전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서 집을 돌보던 큰오빠마저 돌아가시자 이젠 폐허가 되어갑니다.
담도 무너지려고 하고, 지붕도 비가 새고, 거미줄이 가득 합니다.

하지만, 가장자리 화단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주지도 봐 주지 않아도 의연하게 서서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던 것.....



▶ 손수레

어릴 때 들판으로 향할 때나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막내인 저를 늘 태워주곤 하였습니다.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추억의 손수레입니다.



▶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지금 보이는 마늘밭이 원래 제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집터였습니다.
동네 안으로 이사를 하고 집터는 텃밭으로 변했습니다.
포구나무 위로 매일같이 올라가 열매를 따 먹곤 했던 추억의 나무입니다.

엄마는 밥과 과일, 촛불을 켜 놓고 오직 자식을 위해 기도를 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 마늘, 상추, 잔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 텃밭은 사촌 오빠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 독사풀과 자운영
옛날에는 보리논 사이로 피어 있는 독사풀이었습니다.
꼴 망태를 메고 남의 보리밭에 엎드려 독사풀을 베다가 손을 밴 적도 있고, 주인한테 들켜 줄행랑을 쳐야만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 엄마가 매일같이 이용했던 빨래터
토닥토닥 방망이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낙들이 앉아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 무성한 담쟁이


▶ 사촌오빠가 운영하는 정미소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으니 50년은 훌쩍 넘긴 오래 된 곳입니다.


엄마의 향기는 여기저기서 묻어났습니다.
6남매를 공부시키면서 허리가 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위한 삶을 살다 가신 부모님이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시집도 가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이쿠! 우리 막내 시집가는 건 보고 죽어야 할 텐데."
입버릇처럼 말씀하였지만, 결국 보여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여름방학, 연수를 마치고 설사를 자꾸 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약을 사 들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야릇한 분위기가 풍겨왔습니다. 조용히 엄마는 나에게
"막내야. 니 아부지 가셨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부지! 약 사 왔는데....."
그렇게 떠나 보내야만 했습니다.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과 가까운 우리 집에서 몇 달을 보내셨습니다.
입버릇처럼 엄마에게
"엄마! 엄마도 아부지처럼 방학 때 가셔야 해!"
"그게 내 맘대로 되것나?"
"간절히 원하면 된다고 하잖아!"
"그러면 좋지."
정말 겨울방학을 하자말자 돌아가셨습니다.
큰오빠가 12월 23일 방학을 하고 엄마를 모시러 우리 집으로 오셨습니다.
시골 친정집으로 모시고 간 지 이틀 밤을 보내면서 큰오빠가 저를 불렀습니다.
"막내야! 네가 한 번 와 봐라. 엄마가 아무것도 안 드신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렇게 얼마나 불렀을까?
가만히 실눈을 뜨고 나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뭘 좀 먹어야지. 얼른 입 좀 벌려 봐."
몇 숟가락 미음을 받아먹고는 넘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엄마와 내가 나눈 마지막 교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무엇인가 강한 빛을 내며 하늘나라로 날아가고 있어 너무 놀라 눈을 떴습니다. 그때 따르릉 전화가 울렸습니다.
"막내야. 엄마 떠나셨다." 큰오빠 목소리였습니다.
"....................."
아무말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쉽게 우리 곁을 떠나가실 줄 몰랐습니다.

어버이날이라고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선물을 뭘 고르지?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하지?

고민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그건 행복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잘해 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마음을 아시는지요?
있을 때 잘하고,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는 말,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늘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요?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아닙니다.
부모님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부모님 산소라도 다녀올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가슴한컨이 늘 비어있는 부모님의 빈자리는
아련한 그리움이겠지요?
보고싶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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