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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20년 만에 처음 차려 본 차례 상차림

by 홈쿡쌤 201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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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처음 차려 본 차례 상차림


6남매의 막내로 사랑도 많이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어려운 시절로 스스로 알아서 공부도 해야만 했기에 연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데 바빴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의 소개로 맞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총각 어때?"
"글쎄, 잘 모르겠어요."
"그럼 싫지는 않구나?"
"..................."
그게 대답이 되어 일은 일사천리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서른셋, 서른넷 노처녀 노총각이 만나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니, 시집 안 갈 것 처럼 하더니 인연은 따로 있나 봐"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시부모님의 사랑 듬뿍 받으며 말입니다.

이제 그 녀석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아버님의 영혼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추석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은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시골에서 차례를 지낼 때에는 큰집 작은 집 순서로 마지막이 시댁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시어머님의 치매로 불타버린 오두막집마저 사라져 버려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늘 사촌 형님이 지방(제사를 모시는 대상자를 상징하는 것으로써 종이로 만든 신주(神主) )을 써 주었기에 남편은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니 관심도 없었습니다.

나 역시 어느 날부터 큰 며느리가 되어 있었지만, 음식에만 신경 썼지 상을 차리는 데는 사촌 아주버님의 몫이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명절은 뭔가 헷갈리고 복잡하고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매해 차리는 차례상이지만 가족 간 토론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생선은 머리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등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대로 진행되지만 반복되는 상황은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머릿속에는 알고 있지만 실제 상차림은 헷갈리기만 하였습니다.
할 수 없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을 하여 지방은 프린트기로 출력하였고, 차례상 차림도 하나 하나 보고 따라 가져다 놓았습니다. 평생을 보아오신 시어머님도 헷갈리긴 마찬가지신가 봅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차례 상차림을 주관하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였습니다.
촛대를 거꾸로 놓지를 않나, 술잔을 먼저 올리고 절을 올려야 하는데 절부터 먼저 하기도 했습니다.
"아부지! 처음 하는 일이라 실수도 많습니다. 이해해 주이소!"
삼촌의 한 마디에 모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법도를 꼭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라 여겨보았습니다.




▶ 차례 지내는 모습



▶ 시댁 입구에 있는 어르신들의 놀이터


 

▶ 산소로 향하는 길





큰 집 아주버님이 어머님을 보시고 맨발로 맞이하십니다.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던 어머님
"작은 어머님! 얼른 내리세요."
"............."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시면 서운해서 안 됩니다."
"그럼 내릴게."
집으로 들어가자 형님은 어머님이 먹기 좋도록 배를 숟가락으로 긁어 떠먹이십니다.

"제수씨가 고생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안 해도 될 일을 책임지고 한다는 게 쉽지 않지요."
"그냥 즐겁게 하기로 했습니다."
"잘하셨어요."

"형님! 내년 설에는 차례를 조금 늦게 지내세요."
"왜?"
"우리가 조금 일찍 모시고 올게요."
"뭐하러. 작은 아부지 제사나 잘 지내."
"아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뵈야죠."
"그래 주면 고맙지."
"아이쿠! 그런 맘 가져주는 것 만으로도 너무 고맙네."
"동생들 생각도 다 같습니다."
남편은 사촌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것 같았습니다.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큰 집 차례도 지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에서 절을 올리는 모습




▶ 밤 줍는 남편과 삼촌


가을이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 호박


▶ 감



▶ 방아꽃




▶ 수세미


▶ 박꽃


▶ 지붕위에 박이 열렸습니다.



▶ 메뚜기


▶ 나팔꽃



▶ 매미가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아직 살아서 발버둥 치는 것을 남편은 살려주었습니다.



▶ 장록 열매



▶ 민들레꽃



▶ 까마중

어릴 때 입이 까맣도록 따 먹었던 까마중입니다.

우리가 자랄 70년대는 먹거리가 없어 늘 배고픔에 허덕였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들판에 산에서 나는 열매가 어린 녀석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습니다. 여름이면 까맣게 익어 있는 까마중을 따서 입이 검어지도록 먹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 손대면 톡 하고 터져 버리는 봉숭아



▶ 도라지꽃



▶ 김장 배추


▶ 토란




▶ 콩


요양원 생활을 하다 집으로 오신 어머님은 텅 빈 집터에 들깨를 심어놓은 것을 가만히 쳐다보십니다.
큰 집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친구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야야!~ 선동댁 좀 만나 보고 가자."
얼른 가게로 차를 돌려 음료수 하나를 서서 어머님의 친구댁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이웃 어머님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이쿠! 내동댁 아이가?"
벌써 눈에서는 눈물이 거릉거릉 맺혔습니다.
마주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습니다.
바라보던 우리의 가슴도 먹먹해 왔습니다.


 


▶ 개망초




▶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


▶ 벼가 조금씩 익어갑니다.


▶ 검은쌀



▶ 유홍초


점점 핵가족화 되어가고 세월이 갈수록 사촌과의 친화도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을 하는 남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촌들 만나는 일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진다는 말도 있기에,
남편의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20년 만에 처음 차려 본 추석 상차림
많이 서툴고 모자랐습니다.

이제 익숙해질 수 있도록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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