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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어머님의 영원한 자식사랑

by 홈쿡쌤 201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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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어머님의 영원한 자식사랑



가난한 시골청년에게 시집을 간 우리 시어머님, 5남 1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오직 자식들 잘사는 게 소원이시라는 어머님은 85세입니다.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시다 파킨슨병과 치매가 찾아와 우리 집에 모시고 있다가 혼자 집을 나가 몇 번 잃어버리고 소동이 일어나자 형제들 간의 의논 끝에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시설도 깨끗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하루하루의 생활을 홈페이지 포토 갤러리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오늘은 수묵화를 그렸구나!'
"오늘은 치과 의사선생님이 다녀가셨구나.'
'오늘은 데칼코마니 놀이를 하셨구나.'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목단 그리시는 어머님


 

 

시어머님의 요양원은 막내아들 집에서 10분 거리입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늘 찾아뵙고 있으며,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 총알같이 달려가 보곤 합니다.

명절을 가까이 앞 둔 날, 요양원에서 전화가 걸려와 달려가 보니
어머님을 침대에 몸을 묶어두고 양쪽으로 침대로 막아 요양보호사가 옆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계시더란 것.
사실을 알고 보니 누워만 계시던 어머님이 집에 가고 싶다고 높은 침대를 스스로 내려가려고 하는 바람에 떨어져 다칠까 봐 걱정이 되어 지키고 있어야만 할사정이었다고 합니다.
"엄마! 며칠 있으면 설이야. 시골 모시고 갈게 조금만 참아."
"알았어."
한의원에 근무하는 막내 동서입니다. 삼촌이 주말마다 한의원에 모시고 가서 침도 맡고 한약도 2제나 지어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몸의 움직임이 제법 좋아진 것 같습니다.


설날이라 어머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차례를 지켜보고 계시면서
"골고루 잘 차렸네." 칭찬도 하십니다.
"우리 아이들 건강하고 손자들 공부 잘하게 해 주이소"
혼자 아버님을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차례를 마치고 시골에 가서 산소도 다녀오고 큰 집, 어머님의 동생인 외삼촌도 만나고 왔습니다.
"어머님! 집에 그렇게 오고 싶으셨어요?"
"갑자기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가만있지 못하겠어."
"그렇다고 침대에서 내려오시면 큰일 나요. 다치면 어쩌시려구요."
"알았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네. 어머님 약속하셨어요."
"오냐."

명절날, 동서는 친정으로 떠나고 우리 가족과 어머님만 남았습니다.
안방에서 남편과 어머님 셋이서 한 침대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무리 큰 사이즈 침대이긴 해도 나란히 셋이  눕긴 좁아 혼자 거꾸로 누웠습니다.
"어머님! 무슨 일 있으면 깨우세요."
"그래. 어여 자거라."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한창 달게 자고 있는데 잠결처럼
'와이리 거꾸로 누워자노. 거꾸로 누우면 안 돼!'
늘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이겠거니 하고 넘겨버렸습니다.
그래도 느낌이 이상하여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보니 세상에나 어머님이 화장실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습니다.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왜 묶어 두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머님! 우릴 깨우셔야죠."
 "곤히 자는데 깨울 수 있나. 깰까 봐 얼마나 조심했는데."
"그런데 침대에서 어떻게 내려왔어요?"
옆에 두었던 의자를 짚고 다리 먼저 내리고 일어서지는 못하고 엉덩이를 끌며 화장실 앞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게 엄마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자식들 깰까 봐 깨우지도 못하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자는 남편을 깨워 어머님을 안고 화장실에 앉혔습니다.
큰일을 보시고 난 후 몸을 씻기고 밖으로 모시고  나와 기저귀를 갈아 채웠습니다.
"어머님! 요양원에서 이러시면 큰일 납니다."
"..................."
"그긴 침대가 높아 떨어지면 크게 다칩니다. 요양보호사 부르세요."
"알았어."
"안 그래도 묶어 놓았다는 소리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
"그래. 그래. 다시는 안 그러마"

치매는 옛날 일은 기억을 해도 금방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는 병입니다.
뒷걸음치는 말씀을 하셔도 받아주곤 하는데,
고향을 향한 그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자식을 향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조금 있으면 아버님 제사이니 그때 또 모시고 올게요."
"오냐."
"삼촌! 자꾸 그러시면 온돌방으로 옮겨 달라고 하세요."
어머님은 막내 아들의 등에 업혀 요양원으로 떠나셨습니다.

언젠가 '내가 여섯이나 되는 자식 낳았는데 다 소용없어.' 하셨던 그 말이 비수처럼 꽂힙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사셨는데도
누구 하나 모시지 못하기에 우린 늘 당신 앞에 죄인이 됩니다.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살면 좋을 텐데 참 마음처럼 쉽지 않은 가 봅니다.
'어머님! 편하게 지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라도 우리 곁에 계시기에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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