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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조카의 마음씀씀이에 울컥했던 사연

by *저녁노을* 201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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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마음씀씀이에 울컥했던 사연

명절만 되면 곱게 차려입고 친정 가는 동서가 제일 부럽습니다. 그래도 큰오빠가 살아계실 때에는 동생들 생각해서 친정 집에 모여 차례를 모시곤 했는데 오빠저 부모님 곁으로 떠나고 나니 친정도 사라진 지 제법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라 차례상도 차려도 되지 않으니 온 가족이 무주 스키장으로 떠났다는 말을 들으니 왜 그렇게 서운하던지...

그래도 명절날에는 시골에 있는 산소에는 꼭 찾아오기에 가까이 사는 언니네에서 잠깐이지만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시댁을 다녀와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모! 우리 큰고모 집에 왔어. 작은고모도 얼른 와!"
"응. 알았어."
전화기를 끊자마자 마음이 설렙니다.
시어머님은 막내 동서에게 맡기고
"동서 얼른 다녀올게."
"네. 형님"
아이 둘을 데리고 미리 사 둔 선물을 들고 달려갔습니다.
친정 식구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반갑던지요.

"고모! 어서 와!"
"언니! 잘 지냈어요?"
인사를 나누고 아빠가 된 조카를 안았습니다.
"아이쿠! 우리 조카! 한 번 안아보자!"
산만한 덩치가 나를 더 꼭 껴안아 줍니다.
녀석은 아버지를 닮아 꼭 큰오빠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정이가는 조카입니다.



★ 큰오빠의 삶

큰오빠는 6남매의 맏이로 동생들 공부시키며 힘겹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교편을 잡으며 넉넉잖은 살림인데도 불평 하나 없이 동생들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큰아들 노릇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북에서 월남한 올케의 친정엄마와 형제 6남매와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때 올케의 막냇동생이 중학생이었습니다. 북적북적 대가족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기에 큰오빠는 늘 아버지 대신이었습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온 오빠입니다. 하지만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살 만하니 2004년 12월 12일, 그만 61세의 나이로 환갑을 넘기지도 못하고 간암으로 우리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까운 별이 졌기에 많은 사람의 서러운 그 울음소리로 저승 가는 길이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는 오빠입니다.





★ 아빠의 삶을 닮고 싶다는 조카


오빠의 아들인 조카도 결혼했습니다. 한창 신혼살림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시기인데도 질부의 친정 부모가 모두 병원에 입원하였고, 중학생인 막내 처제를 조카 집으로 데려와 살았습니다. 장인어른은 원래 지병이 있어 피를 투석하며 지내시다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장모님은 관절염을 오래 두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절단해 거제에서 한 달에 한 번 서울 아산병원으로 모시고 가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 길고 긴 투병생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가는 일, 그 모든 게 조카의 몫이었습니다. 질부의 형제는 딸 넷 중 셋째로 다행히 직장생활을 하는 셋이서 병원비를 나누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 등급을 받았기에 병원비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질부가 일용직으로 있다가 정식직원이 되었기에 그 오른 월급만큼은 장모님 병원비로 내면 된다고 말하는 기특한 조카입니다.


조카가 하는 말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다른 엄마 같으면 그런 상황이면 이혼하라고 난리일 텐데 ‘너의 운명이니 어쩌겠니?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렴.’하고 올케가 그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카의 핸드폰에는

“아빠의 삶을 닮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이렇게 저장해 두고 스스로 달래며 살아가는 서른 살의 당당한 가장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내면 끝이 없다고 합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예쁜 딸을 낳아 돌을 넘겼습니다.
큰오빠가 봤으면 정말 좋아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뽀얀 피부를 가진 녀석이 얼마나 예쁘던지 저절로 카메라를 들게 되더라구요.
계속 움직여 사진이 떨렸는데 겨우 몇 컷 건졌습니다.





까꿍 놀이


 

 

 


 

★ 욕심없는 조카와 질부


형부네에서 떡국을 끓여 맛있게 먹고 조카는 장모님 보러 가야 한다며 먼저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나 역시 동서 친정 보내야 하기에 함께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형부는 조카에게 사과와 배 한 박스를 가져가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각자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때
"고모! 이 과일 고모가 가져가!"
"아니야. 난 며칠 전에 와서 받아갔어."
"우리는 잘 안 먹어."
"과일 안 먹는 사람이 어딨어."
"고모님! 집에 사과 있어요. 가져가세요."
"참나, 괜찮다니까."
조카는 우리 차에 과일 박스를 실어주며
"고모! 잘 가! 너희도 공부 열심히 하고!"
"그래, 잘 가!"
손을 흔들며 아쉬운 이별을 하였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우리 딸아이
"엄마! 올케언니가 용돈 5만 원이나 줬어."
"나도."

"뭐? 그렇게 많이?"
"추석 때도 그렇게 줬는데."
"우리가 공부 열심히 해서 조카 용돈 많이 줄게."
"꼭 그래라."
외숙모, 이모가 주는 용돈도 두둑이 받아왔습니다.





조카가 전해준 과일 박스



조카와 질부는 빈손으로 나오는 고모가 보기 그랬을까요?
명절이라고 며칠 전 형부가 불러 과일, 굴, 돼지고기 등등 많이 받아왔는데 말입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선뜻 과일 박스를 내놓는 조카 부부를 보니 꼭 큰오빠를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 막내, 우리 막내' 하시며 참 많이 챙기셨기 때문입니다.
조카가 전해주는 마음 씀씀이에 왜 그렇게 울컥하던지요.
과일을 먹으면서 그 무엇보다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우직스럽게 정직한 삶을 사시다 간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에 듬직한 조카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시지요?

오빠!
당신 아들, 이렇게 잘 자랐습니다.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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