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련한 추억속으로

아련한 추억속으로의 여행 '풀빵'

by *저녁노을* 2008. 10. 28.
728x90
반응형

아련한 추억속으로의 여행 '풀빵'




 

어느 축제를 가도 먹거리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눈으로 예쁜 국화를 가슴으로도 담아 남편과 함께 돌아오려고 하니 너무 많은 사람이 배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어 허기나 면해 볼까 하여

“여보! 우리 풀빵 하나만 사 먹어요.”
“저녁 먹어야지.”

“그래도 먹고 싶어요.”

“참나, 알았어.”

나는 줄을 서 있고 남편은 가까이 있는 풀빵 파는 곳으로 달려가 얼른 사 왔습니다.

“요즘은 얼마나 해?”
“응. 몇 개인지는 모르겠고 한 봉지 2천 원 하더라.”

짐작으로 9~10개에 2,000원 정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꺼내주는 풀빵을 들고 입이 아닌 코로 갖다 대면서 향기부터 맡으니

“당신 안 먹고 코에는 왜 갖다 대고 그래?”
“음~ 이 냄새~”

사실 맛이야 옛날 그 맛이 안 나겠지만, 그윽한 향기는 그대로인 것 같지 않을까 싶어 추억을 끙끙거리며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신도 참!”

한입에 쏙 넣고는 아예 추억까지 먹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바로 앞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도 풀빵 한 봉지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새댁이 먹는 것 보니 하도 먹고 싶어 나도 한 봉지 샀어.”

“네.”

“추억이 이렇게 좋은 거야. 그땐 팥 앙금도 넣어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맞아요. 사카리 넣어 달콤하기만 했죠.”

“기름 척척 바른 빵 틀에 밀가루만 넣어도 왜 그렇게 맛있던지...”

“옛날 그 맛은 아니죠?”
“세상이 많이 바뀐 탓이지. 배부른 투정이고.”

“................”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야 없이 지낸 그 시절이 그리워 풀빵을 사 먹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 풀빵보다 피자를 더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당시, 밀 심어서 서리도 하고 방앗간에서 밀가루 빻아 사용했기 때문에 수입도 없고, 멜라닌 걱정 또한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아 성인병도 상상하지 못하고 자라왔습니다. 먹거리 지천으로 늘려 유기농으로 국산으로 골라 먹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들 같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간식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밥에는 늘 보리는 기본이었고 옥수수나 무, 고구마가 섞여 밥량을 많게 해 주었습니다. 육 남매로 자식들 입 또한 만만치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걸 먹고 나면 왜 그렇게 또 배는 쉽게 꺼져 버리던지. 돌아서면 또 먹고 싶어지고 군것질이 생각났었습니다. 엄마가 푹 삶아 선반에 올려놓은 보리를 손으로 꾹꾹 눌려 뭉쳐서 조선간장 찍 뿌려서 들고 다니며 먹곤 했었고, 밭에서 캔 고구마 가마니에 넣어 사랑방에 가득 채워두고 가마솥에 소죽을 끓이고 난 뒤 장작불에 구워 긴 겨울밤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었습니다.



정말 요즘은 가운데다 앙금도 넣어서 달달하니 먹기 좋게 만들지만, 할머니 말씀처럼 

예전엔 빵 속에 아무 것도 더함이 없이 오로지 밀가루만 가지고 빵을 구웠습니다. 풀 쑤는 것이나 빵 굽는 것이나 같은 재료이기에 풀빵이라 불렀을 것 같은.....


특히나 내겐 잊지 못할 풀빵의 추억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나의 친정은 지금은 개발로 인해 많이 알려져 있는 경남 진주 반성 수목원 근처 동네입니다.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 10리길을 걸어 5일마다 열리는 반성장이 유일한 볼거리였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엄마의 손에 눈깔사탕이라도 들려있지 않나하고 기대하며 고개를 빼고 까치발을 하며 기다리곤 했습니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엄마의 손은 언제나 막내의 차지였습니다. 아주 어릴 때에는 엄마 등에 업혀서 장을 따라 다녔고, 조금 더 자라면서 언니와 오빠에게 맡기고 데리고 가지를 않는 엄마입니다. 하지만, 막내의 고집으로 엉엉 울면서 꼭 따라나서곤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엄마는 집에서 키운 잡곡과 달걀을 가지고 가서 돈을 사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 오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늘 풀빵장수가 앉아있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풀빵이 코끝을 자극합니다.

“엄마! 나 풀빵!”

“요게 또?”

“엄마아~~엄마아!~”

막내 특유의 콧소리를 내며 떼를 쓰면 못 이긴 척 한 봉지 사 주시는 엄마였습니다. 바로 그 맛에 장날이 되면 뿌리치는 엄마를 필사적으로 따라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린시절 십릿길 마다 않고 ‘빨리 집에 안가!’ 하면서 돌멩이질 까지 하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풀빵 한입에 내 아픈 추억까지 함께 먹습니다.


엄마! 풀빵을 보니 왜 이렇게 보고 싶습니까?


그 달콤함이 허기진 배를 채울 수가 있었으니 지금 풀빵 속 추억으로 빠져드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는가?

여러분은 이런 추억 없으신가요?

728x90
반응형

댓글4

  • 꿈꾸는사람 2008.10.28 15:18

    추억어린 글 잘 보고 가요.
    답글

  • Favicon of https://www.vlife.kr 부지깽이 2008.10.28 15:23 신고

    저도 붕어빵도 좋아하지만 풀빵을 훨씬 더 좋아한답니다.
    이상하게도 붕어빵은 많이 파는데 풀빵은 눈에 안띄네요.
    밀가루 냄새 폴폴나는 부드러운 풀빵, 차 타고 찾아다녀서라도 먹어야겠네요.^^
    답글

  • Favicon of http://lovelycat.org 메아리 2008.10.28 16:49

    풀빵 지금도 좋아해요. 옛날엔 10개에 천원이였는데 요즘은 많이 올랐네요. 생각하니 또 먹고 싶어져요. ㅎㅎ
    답글

  • 그땐.. 2009.05.06 16:19

    님도 '마치 꿈을 꾸었던 것 같은 가슴 시리는 그 때'를 가지고 있군요.
    기억이 아름다울수록 때론 그만큼 마음이 아픈건 왜일까요.
    손에 넣을 수 없는 기억뿐이라 속상하기도 하죠..
    그리하여 어쩌면...
    그 시절은 시간이 아니라 늦은 오후 든 낮잠에 잠깐 스친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꿈처럼 아련하고 꿈처럼 아쉽고 꿈처럼 막연히 서글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꿈 말고 또 무엇이겠는지요..
    답글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