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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도시락을 싸 오지 않은 늦깎이 수능생

by 홈쿡쌤 2008.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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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싸 오지 않은 늦깎이 수능생 



  오늘은 직원 모두 새벽부터 비상근무를 하고 왔습니다. 몇 년을 고생하고 하루에 결판을 낸다는 게 조금 억지 같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그래도 교육제도가 그러니 역행할 수도 없고 우리 아이들의 어깨는 늘 무거운 것 같습니다.


교문 앞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나올 시간이 되자 고생한 수험생을 위해 마중을 나온 엄마들로 하나 둘 늘어만 갔습니다. 기다린다고 서성인다고 시험을 잘 칠 건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안쓰러워 두 손 꼭 모아 기도할 것 입니다. 그렇게라도 하면서 마음 달래는 게 또  엄마의 마음 아닐련지.......


점심시간이 되자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교실에서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먹었고, 다행히 날씨가 따스한 덕분에 교정 벤치에 앉아서 친구들과 다정히 밥 먹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또 교직원과 감독선생님들이 식사를 하는 학교 식당으로 몰려 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둘러보니 모두 엄마의 정성이 가득 든 보온 도시락에 따뜻하게 담아 와 점심을 먹고 디저트까지 먹는데 유독 한 학생만 호박죽을 먹고 있었습니다.

"호박죽을 좋아하나봐?"

"네"

"나중에 배고프지 않겠어?"

"괜찮아요."

“밀감이라도 하나 줄까?”

“아뇨.”

손에 쥐고 있던 밀감하나를 주니

“고맙습니다.” 하며 냠냠 맛있게 잘 먹습니다.


 몰려 온 녀석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우리도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는데 명찰도 달지 않은 분이 막 들어섭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죄송하지만 외부인은 출입 못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 저 점심 한 그릇만 주시면 안 될까요?”

조금 있으니 후다닥 아는 선생님이 뛰어 들어오시면서

“아! 제 후배 수험생입니다.”

“그러세요? 명찰이 안 보여서....그럼 우리와 함께 먹음 되겠네.”

“저 며칠 전에 막 재대한 재수생입니다.”

“아~ 네~”

묻지 않아도 설명을 하고 있는 성격 좋은 젊은이였습니다.


알고 보니 사회초년생이자 늦깎이 수험생이었습니다. 같이 앉아 밥을 먹으면서 하는 말, 군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 했다고 했습니다. 대학1학년을 다니다 휴학하고 군대를 갔으나 재수하기 싫었고 하향 지원에 어떻게든 합격을 하기 위함이었답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라서 그런지 학교생활도 재미없고 머리만 아팠다고 말을 했습니다. 또 어중간하게 사회를 나와도 마땅한 직업을 가질 희망도 없어 좀 늦었지만 다시 공부를 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며 사시는 늙으신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허긴, 이 세상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희망 가지고 더 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꿈은 꾸는 자의 것이며 가지고자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 하였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기에 점심 도시락을 못 싸 왔을까 하며 내 자식처럼 얼른 챙겨주는 분들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분들에게 인사를 꾸벅하며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함께 걸어 나오면서 그저 바라만 보아도 든든한 대한의 아들로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도 시험 잘 치세요. 화이팅!”

“고맙습니다. 충성!”

그 씩씩함에 어디를 가도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 또한 잘 치루길 바라는 맘 가득하였습니다. 그런 용기 있다면 이 험난한 세상 무엇이든 하며 살아갈 것 같지 않습니까? 목표가 뚜렷한 걸 보니 더욱.....

 6시 20분이 되자 조잘조잘 밝은 얼굴에는 가벼움 그 자체였습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수험생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그간 고생했다고.


오늘만은 모든 것 다 잊고 그간 못 잤던 밀린 잠 소원 없이 자 보라고....

수험생 여러분 고생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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