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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시어머님을 위한 '화투 놀이'

by 홈쿡쌤 2009.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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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머님을 위한  '화투 놀이'


며칠 포근해진 날씨 때문일까? 팔순을 넘기신 시어머님의 몸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설 준비가 걱정이 되시는지

“시장 언제 볼 거야?”

“내일쯤 볼 테니 걱정하지마세요.”

“그래, 알았어.”

옛날처럼 콩 삶아서 두부를 만들어 설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돈만 들고 나가면 뭐든 살 수 있는 간편한 세상에 살아가기에 걱정도 안 하고 있는데 어머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당신 손으로 많이 준비해 두었다가 객지에 나간 자식들이 돌아오면 봉지에 싸서 보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 더욱 그럴 것입니다.

설연휴가 길지 않아 음식장만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당신이 여태 해 왔던 것처럼 준비하여 동서들에게 나눠줘야 어머님이 편안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사다 놓기만 하면 동서 둘이 와서 도와줄 테니 말입니다.


조금씩 몸이 나아가는 듯하니 어머님이

“야야, 난 이제 집에 갈란다.”

“왜요?”
“집에 가서 집도 좀 치우고 해야지.”

“아직은 안 돼요. 내일부터 또 추워진다는데...”

“우리 집에 가야 내가 맘이 편하지.”
“그냥 여기 계시다 시장 봐서 같이 가요.”

“그럴까?”


시골에 계실 때에는 마을회관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사각의 링 속에 갇혀 말 붙여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남편도 나도 늘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방학을 한 녀석들도 방과 후 수업과 학원으로 이리저리 다니기 바쁘니 할머니와 놀아 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시간이 나도 컴퓨터게임을 하지 할머니와 놀아 주지도 않고 대화도 없이 지내고 있는.....

그래서 남편은 아들에게 샴푸를 로션인줄 알고 발랐던 얼굴에서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하자 세수를 시켜드리고 발도 씻어 드리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아무 말 없이 시키는 대로 잘하는 녀석입니다.

“야야. 오늘 우리 손자가 고생 혔다.”
“뭘 고생을 해요?”
“날 씻겨 준다고 말이야.”

“아이쿠 우리 아들 잘했어.”

가만 눈치를 보니 남편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중1인 녀석이 스스로 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방학인데 쉬는 시간에 할머니와 놀아 줄 방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언젠가 막내 동서네 가 계실 때 놀아 드렸더니 좋아하시더란 말이 생각나 헬스장 갔다가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3,500원을 주고 화투를 샀습니다. 우리 집에는 화투놀이를 즐기지 않기에 일부러 사와 녀석들에게

“고스톱 가르쳐 줄게. 이리 와!” 했더니 관심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점수 나는 규칙을 가르쳐 주고 할머니와 함께 자리에 앉았습니다. 신기해하는 아이들과 두들기는데 힘이 들어가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니 너무 즐거웠습니다. 밥 한 공기 드리고 나면 아무 할 일 없으니 누워 잠만 주무시던 분이었는데, 화투놀이를 하면서 한 시간을 넘게 앉아 계시는 걸 보니 사람에겐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아들 녀석이 할머니에게 지면

“할머니 한 판만 더 해!” 하면서 계획 된 시간보다 더 보내는 것이 아닌가.

“야! 이러다 너 타짜 되겠다.”

“묘하게 재밌네.”

“어허~”

“알았어. 이제 엄마 아빠가 놀아주세요.”하고 달아나는 녀석입니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화투놀이지만 어머님에겐 더 없는 즐거운 시간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효도는 가진 것 나누는 것도 아닌, 마음으로 나누는 게 최고의 효도란 걸,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어머님! 명절날, 멀리 있는 자식들 오면 함께 놀아 드리라고 할게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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