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 어제 같은데 벌써 달랑 한 장남은 달력이 마음 씁쓸하게 해 줍니다.
이제 제법 날씨가 쌀쌀 해 졌습니다.
휴일에는 시간을 내어 아이들 옷장에도 완전하게 겨울옷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잘 자라지도 않는 아들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바지를 입혀보니 종아리 위로 쑥 올라 가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차가운 바람을 막아 줄 파카가 두 개였는데 집안 꼼꼼히 아무리 찾아도 한 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갔지?'
잊음이 많아 늘 헤매는 터라 며칠을 걸쳐 이곳저곳을 살펴보아도 없어
'아! 작년에 세탁소에 맡겨 두었나 보다'
퇴근길에 자주 가는 집 앞에 있는 세탁소로 가 보았습니다.
"사장님! 우리 아들 겨울 오리털 파카 맡겨 놓은 것 있나요?"
"겨울 파카 거의 다 나갔는데...오늘은 바쁘니 내일 저녁에 한번 와 보세요."
산더미같이 쌓인 세탁물을 정리하고 다리미질을 하느라 찾아 줄 여력도 없어 보여 그냥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또 다시 세탁소를 찾았습니다.
"저~ 파카 있던가요?"
"아뇨. 안 보였습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갔지? 죄송합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럼 그 옷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며칠이 흘러 남편의 바지를 맡길 일이 있어 세탁소를 찾았습니다.
"1103호 입니다."
"1103호?"
"네."
"혹시 이름이 뭡니까? 부근이나 아이들 이름말입니다."
"성00 입니다."
이리저리 쌓여있는 옷가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시더니
"이거 맞아요?"
"네. 딸아이 이름이네요."
"다음부터 사람이름을 말하세요. 그래야 찾아 주기가 좋답니다."
맡길 때에는 딸아이의 이름을 말해 놓고 찾을 때에는 아파트 동 호수를 말을 했으니 세탁물이 있을 리 만무한 일이었지요.
"왜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으세요? 그래야 서로 믿고 맡길 텐데..."
"영수증 들고 세탁물 찾으러 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세탁소 사장님이 영수증을 발행 해 보았으나 세탁물을 찾으러 올 때는 빈손으로 와 찾아가고, 아무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그냥 노트에 깨알처럼 적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세탁물 사고 한번 나지 않았다고 하시며....
요즘에는 컴퓨터 세탁으로 더 빨리 해 주고, 세탁물을 가지고 가서 직접 집으로 배달까지 하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맡기고 찾으러 가야하는 번거로운 코딱지만 한 세탁소, 비좁은 곳에 서서 스팀다리미로 다려주는 아저씨의 손길이 늘 바쁜 것을 보면, 신용으로 일을 하시는 분 같아 주위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영수증 발급 해 달라는 말을 한 내가 미안 할 정도로....그 믿음하나로 가계를 운영하시니 늘 바쁠 수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말끔하게 세탁도 해 주고 친절까지 하니 말입니다.
허긴, 우리나이에는 디지털 보다야 아날로그가 더 정이 넘치는 법 아닐까?
쉰을 바라보는 우리세대에서는....
잃어버릴 뻔 했던 파카이기에 우리 아들 올 겨울 따뜻하게 보낼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세탁물 잃어버린 적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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