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보고 도저히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어제 사 온 채소들
어제는 구름이 끼었지만 제법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간간이 내리쬐는 햇살이 무섭긴 해도 지갑을 보니 현금이 하나도 없어 가까운 농협을 들러 돈을 찾아 나오는데,
“새댁, 새댁! 나 좀 봐!” 하면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내 손을 이끈다.
“할머니 왜요? 뭘 도와 드려요?”
“아니, 그게 아니고 이리 와봐!”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로 들어서더니
“새댁도 할머니 손에서 컸지? 내가 푸성귀를 조금 가지고 나왔는데 좀 사 줘!”
“한 번 봐!”
차가 지나가는데도 봉지 봉지 담아 꺼내시는 것이었다.
“할머니 이게 다 뭐예요?”
“응. 내가 농사지은 것이지.”
“그럼 어디 앉아서 팔면 되잖아요.”
“아무 데서나 못 앉아. 자릿세도 있고 텃세도 있고.”
“그렇다고 이렇게 들고 다니세요?”
“할 수 없잖아!”
“할머니 근데 뭔지나 알고 사야죠.”
검은 봉지 흰 봉지, 색깔 있는 봉투들을 다 꺼내신다.
“이건, 예뻐지는 나물이고”
“이건, 고추”
“이건, 가지”
정말 조금씩 담아 놓은 봉지들을 보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 됐어요. 그만 꺼내세요.”
“적선하면 자식들한테 좋을 거야.”
“내 손 좀 봐! 이렇게 힘들게 살아.”
봉지를 풀어내는 것들을 보니 뜨거운 열기에 시들고 떠서 싱싱함을 잃어버린 물건이었다.
“할머니 한 개 얼마죠?”
“응. 천원이야.”
“두 개만 사 줘!”
“네. 알겠습니다.”
채소가 보이는 것으로 붉은 고추, 풋고추, 가지, 방아잎 네 개를 집었다. 그리고 지갑을 보니 천 원짜리는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만 원을 주고 거슬러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만 원을 건네니
“만원이야? 거슬러 줘야겠네.” 하시며 긴치마를 들치고 줌치를 꺼내는 걸 보니 꾸깃꾸깃 천 원짜리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그냥 두세요.”
“아니야.”
“맛있게 먹을게요.”
“새댁! 새댁! 잔돈 가지고 가야지.”
그냥 웃으며 손을 흔들고 돌아왔다.
마침 신호등에 걸려 파란불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으니 할머니는 주섬주섬 내게 보여주었던 봉지들을 다시 싸더니 바로 앞 가게로 들어서고 있었다. 또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구걸하듯 발품 팔아가며 다니시겠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며 복권을 사기도 하고, 남에게 아픔까지 줘가며 나의 행복만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욕심내지 않고 진정한 노동의 대가를 알고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연세에는 다 그렇듯 자식 위해 내 모든 것 다 내어주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게 이 세상 어머니들의 삶이었다. 저렇게 힘들게 번 돈 또한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못하고 손자들의 간식거리를 사다 줄 것이다. 우리 시어머님 연세는 되어 보여 짠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행복이란 어떤 것을 가졌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과 시간 속에서 얻는다는 걸
할머니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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