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삶을 산 친정 엄마 같은 박꽃
어제는 남편과 시어머님의 일로 싸움이 벌어졌다. 불 같은 성격인 줄 알면서 ‘내가 잘못 했어.’라고 말을 했는데도 성의없는 사과라고 하는 바람에 서로에게 비수가 든 말들을 쏟아내었다. 속으로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일단 화를 가라앉히는 일이 나을 것 같아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막상 자동차에 올라타니 난 갈만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서면서 내 머리를 스치는 건 하늘나라에 계시는 친정 엄마 아버지뿐이었다. 어려울 때면 더 생각나는 부모님이기에.
▶ 어르신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정자나무
파랗게 땅 냄새를 맡고 튼튼하게 자라는 들판을 바라보며 30분이면 도착하는 부모님 산소를 향해 내달렸다. 가는 내내 서러움에 북받쳐 눈에선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부모님과 큰오빠가 나란히 누워계시는 산소에서 혼자 절을 올렸다.
“엄마! 아부지! 보고 싶어요.”
“큰오빠! 그곳에선 안 아프시죠?”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집으로 향했다. 큰오빠가 살아계실 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청소도 했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대청마루에는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꿈을 키워왔던 오막살이 같은 집에서는 그래도 자연은 혼자 아름답게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그 중 앞집 할머니가 심어둔 박, 우리 집 담장을 타고 하얗게 피어있는 박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스물여덟, 아버지는 남의 머슴살이를 하다 12살이나 차이나는 띠동갑인 엄마를 만나 늦은결혼을 했다. 나는 6남매의 가난한 농부의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당신 둘은 서당 앞에도 못 가 본 사람이라 자식들 농사에는 온 몸을 다 바쳐 헌신하셨다. 남의 땅을 빌러 소작을 하면서 아버지는 소 장사로 5일장을 돌아다녔고, 집안 일 농사일은 전부 엄마의 차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성격이 한량 끼가 있는지 5일장을 가지 않는 날에도 밭일하고 돌아오면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낮잠을 꼭 주무시며 그렇게 열심히 농사일은 하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달 밝은 밤에 하얗게 피어난 꽃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결한 이미지를 주어 “박꽃 같은 여인, 박 속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 하면서 미인의 상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농촌의 여름밤은 풀벌레들의 연주로 시작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풀벌레소리 점점 깊어만 가는 달빛 고요. 초가지붕 위로 희다 못해 푸르초롬한 빛을 뿜어내는 박꽃이 아름답기만 했었다.
박꽃은 달밤에 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다. 흰 모시옷 차림의 여인이 방문에 물든 달빛을 바라보며 님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고, 저물녘에 피어나 밤새도록 어둠 속에 흰빛을 뿜고 있는 박꽃은 소박한 듯 청결해 보이고, 날렵한 듯 무슨 일에도 굽히지 않을 듯 강인해 보인다. 박꽃은 달빛이 몸에 밴 밤의 꽃이다.
남들이 모두 잠든 밤에 피어 있는 박꽃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박꽃이 안으로 안으로 다스려온 그리움이 마침내 영글면 박이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5일장에서 늦은 밤, 소를 몰고 오시는 아버지를 늘 기다리셨다. 특히 소를 팔러 가는 날이면 더 가슴 졸이는 모습이셨다. 밤길에 혹시나 강도나 만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소를 판 돈을 강도에게 강탈당하셨던 날도 있었다. 아버지는 남자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여린 곳이 많은 분이었다. 언니를 시집보내면서 엄마는 울지도 않는데, 아버지는 훌쩍훌쩍 우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워낙 어렵게 자라다 보니 남의 일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셨던 아버지, 이웃집에 돈을 빌려줘서 받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였다. 아버지의 별명은 ‘된장뚝배기’였다. 언제나 사람이 진국이라는 말뜻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밖에서는 사람 좋다고 말을 듣고 다니지만 정작 엄마에게는 소홀한 분이셨으니까. 엄마는 손재주도 있어 아버지가 부셔놓은 농기구 엄마가 다 고쳐내었다.
“손에다 몽둥이를 달았나?” 하시면서.
아버지가 집안일을 소홀히 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게 해도 엄마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똘망똘망한 6남매의 눈빛을 보며 희망을 손에 잡고 사셨던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하얀 박꽃이다.
큰 박은 꼭지 부분을 도려내고 속을 파내어 바가지를 만들고, 덜 익어 털이 뽀송뽀송한 연한 박은 회 무침을 하고, 겉은 썰어 나물이나 박고지를 해먹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박나물에는 달빛 향기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논밭에 새참을 이고 나갈 땐 바가지가 밥그릇도 되고 국그릇도 되었다. 바가지로 만든 탈을 쓰고 사물놀이 패에 끼여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동네 어른들의 흥겨운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소박하면서도 순결한 삶의 소망을 꿈꾸는 하이얀 박꽃처럼 인간미 가득한 그러한 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떠올려 본다. 초가지붕도 사라진 이 척박한 땅에서도 박꽃이 자라는 모습을 보니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남편도 아버지처럼 '밖에서는 사람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지낸다. 그래, 힘든 세월 잘 견뎌내 온 엄마의 일생처럼 내 아픔도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임을 알자.
하얀 박꽃이 내게 주는 미소를 보고나니
‘여보! 미안해!’
오늘은 진심을 담아 사과해 보리라.
엄마! 고마워! 행복하게 잘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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