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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의 작은일상

83세 시어머님은 센스쟁이?

by 홈쿡쌤 200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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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시어머님은 센스쟁이?


  83세인 시어머님 6남매 힘들게 키운다고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십니다. 이제 혼자 끓여 드시는 것도 힘에 겨워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아이 둘 학교에 가고 우리 부부도 다 나가고 나면 하루 온종일 혼자 계셨을 어머님.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아서야 가족들이 집으로 들어섭니다.


“다녀왔습니다.” 옛날 같으면 “오냐! 어서 오너라. 고생 많았지?” 했을 텐데 이제는 인기척을 해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침대에 오그리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주섬주섬 외출복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섭니다. 바쁜 손놀림을 하여 저녁상을 봐놓고

“어머님! 식사하셔야죠.”

“왔냐? 벌써 저녁밥이야?” 하십니다.

“네. 먹어야 살지요.”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게 밥을 먹습니다. 치아가 좋지 않고 매운 걸 드시지 못하는 어머님 때문에 우리 집 식탁에는 거의 연하고 부드럽게 해야 하고, 매운탕에 조차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조리를 합니다.

“엄마! 이거 한 번 먹어봐!”

남편이 어머님의 밥숟가락 위에 생선살을 발라줍니다.

“오냐. 너나 어서 식기 전에 먹어.”

먹고 난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고 깔끔하게 씻어 선반에 정리해 두고 안방으로 들어가니 또 어머님은 밥숟가락 놓자마자 누워계십니다.

“어머님! 주무세요?”

“아니.”

“그럼 왜 누워만 계세요. TV도 보고 그러세요.”

“재미도 없어.”

“저랑 이야기나 해요.”

“무슨 이야기가 있나?”

“아니, 그냥요. 오늘 누구한테 전화 왔었어요?”

“응. 인천에서 안 왔나.”

“삼촌이? 동서가?”

“삼촌이.”

“그랬군요.”

“에효! 우리 어머님 심심하셨지요? 제가 놀아 드릴까요.”

“뭐하고 놀래?”

“음~ 어머님! 우리 화투놀이 해요.”

“그럴까?”

금방 쓰러져가던 모습이었는데 다소곳하게 앉으십니다. 언젠가 녀석들과 앉아 재미나게 화투를 치는 모습이 생각나 얼른 뛰어가 판을 벌일 준비를 했습니다. 화투도 가져오고 장롱 속에 든 담요도 가져와 펼쳤습니다. 툭탁툭탁 던져가며 맨 화투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이쿠! 패가 왜 이래? 이래서 어디 화투 치것나?”

“골고루 안 섞였나? 어머님 난 억수로 좋은데.”

돌아가며  먹기도 하고 들치기도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꾸 어머님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와! 우리 어머님 타짜네. 정말 잘하십니다.”

그러면서 일부러 점수계산을 하게 했습니다.

“어머님 몇 점이세요? 얼른 계신 해 보세요.”

“풍, 초 내가 다 땄으니 60점에, 190점이네.”

“엥? 어머님이 또 이기셨네.”


가을이긴 해도 밖에서는 촉촉이 비가 내려 습도가 높은 탓도 있고, 맥반석 침대라 전기를 넣어둔 탓도 있어 앉아있으니 온 몸에 더운 열이 막 올라왔습니다. 갱년기도 찾아온 지 오래라 가끔 열이 차오르곤 합니다. 어머님 앞이라 옷도 벗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하이쿠! 와 이리 덥노?”

“야야~ 니가 돈을 잃으니까 그리 덥다 아이가?”

“네? 호호호 어머님,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원래 돈 잃으면 그런 법이여!”

그 말씀에 우리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선수를 빼앗기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돈 놓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어머님이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만 원짜리 석 장을 꺼내시며

“옜다. 이거 가지고 화투 치거라.”

“우와.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니가 덥다카이 내가 주는 거 아이가!”

“어머님. 이러다 우리 경찰서 잡혀 가겠습니더.”

“와?”

“판돈이 이렇게 시퍼런 만 원짜리가 오가니 큰일 났습니더.”

“야야~ 절대 내가 주더라 카지마라이. 니 돈이라 캐라이.”

그 말에 우린 또 한 번 깔깔 넘어갔습니다.


정말 시어머님은 센스쟁이십니다. 고스톱이 아닌 화투놀이를 하면서 이렇게 웃어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너무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둘이서 호호거리다

“어머님! 허리 안 아프세요?”

“오늘은 그만할까?”

“네. 내일 또 해요.”

그리고 3만 원은 다시 어머님 호주머니에 넣어드렸습니다.


우리 어머님, 하루하루 시간 죽이시는 게 더 힘겨울 것입니다. 그래도 시골 계실 때에는 텃밭도 가꾸시고 노인정에도 놀러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이제 자식들에게 기대며 살아가야 할 나약한 분이니까 말입니다.   가만히 누워계시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 불쌍해 보입니다. 어머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고작 화투놀이뿐이니 더 안타까울 뿐입니다. 편안한 노후를 맞이 해야 할 때인데 건강이 좋지 않으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모든 걱정 내려놓고 편안히 지냈으면 참 좋겠습니다.


허긴, 기운 없이 쓸어져 계신 모습이 바로 30년 후의 내 모습이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건강하세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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