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속으로2009. 10. 28. 16:48


 논배미에 모락모락 타오르는 연기를 보니

가을이 완연한 것 같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83세 아프신 시어머님이 계시기에 멀리 떠나지 못하고 아들 손을 잡고 가까운 뒷산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공허한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울긋불긋 나뭇잎이 물들고, 긴 머리카락 흩날리며 바람결에 춤추던 코스모스도 하나 둘 남아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다정히 걸어가는 부자간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수가 거의 끝나가는 논배미에 모락모락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어릴 때 추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남편과 나란히 걸으며 아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들! 이게 뭔지 알아?”
“타작하고 남은 짚이지.”

우리가 자랄 60년대에는 농사일도 전부 손으로 했습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가정실습이라도 며칠 해 휴교를 하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모임 농사일을 거들곤 했었습니다. 누렇게 익은 벼를 낫으로 베고 논에서 며칠을 말렸다가 엄마 앞을 깡충깡충 지나가며 단을 뭉치기 좋게 모아주면 엄마는 뒤따라오면서 짚으로 나락 단을 뭉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게에 나락 단을 모아 탈곡기에 타작을 했습니다. 타작이 끝나고 나면 짚단은 또 뭉쳐져 짚동으로 변하였습니다. 우리는 짚동에 숨어 숨바꼭질 놀이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바람결에 훅 볏짚 타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구수하고 따뜻한 가을 냄새 가득하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의 기억들도 모락모락 타올랐습니다. 어쩌다 불장난을 해 짚동에 불이 붙어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히는 일도 허다하게 일어났습니다. 추수가 끝난 들녘은 함께 소를 먹이던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것입니다. 저렇게 피어오르는 짚불더미 속에는 온종일 속삭여도 다하지 못할 옛 이야기들이 모락모락 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를 키우면서 사료를 주지만 그때만 해도 벼 타작을 하고 난 뒤 짚단은 소죽을 끓이는데 사용했던 아주 귀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아빠는 검정 고무신에 나왔던 이야기를 들러주네.”

“허허. 그래?”
이제 녀석도 직접 체험해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책을 통해서 우리의 어린 추억을 함께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osted by *저녁노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저게 소죽(소여물?) 끓이는데 사용되는거였군요...

    2009.10.28 17:11 [ ADDR : EDIT/ DEL : REPLY ]
  2. 효부님 안녕하시네요
    어머님모시고 바쁘실텐데 좋은사진 좋은글 감동!

    2009.10.28 18:39 [ ADDR : EDIT/ DEL : REPLY ]
  3. 옛날 할머니집 생각이 간절하네요.
    좋은글, 멋진사진 잘 구경하고 갑니다.

    2009.10.28 19:01 [ ADDR : EDIT/ DEL : REPLY ]
  4. 논배미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가을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것 같습니다.

    2009.10.28 19: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부자 지간이 다정해 보이네요 ^^

    수요일입니다.
    ^^주말의 중간이네요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

    2009.10.28 19: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아흑...제 모친이 83세 이십니다.가을이 ..이렇게 가나 봅니다.

    2009.10.28 19: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시골정취가 물씬 납니다 ^^

    2009.10.28 19: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어허...깊어가는 가을...
    동상 가족들 모두 건강하이소. ^^

    2009.10.28 20: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구름꽃

    보기 너무 좋습니다.
    추억의 시간이었어요.

    2009.10.28 20:14 [ ADDR : EDIT/ DEL : REPLY ]
  10. 강나루

    고향이 그리워지네요

    2009.10.28 20:14 [ ADDR : EDIT/ DEL : REPLY ]
  11. 소죽, 검정 고무신, 낫, 벼 등 정겨운 광경과 단어들입니다.
    저도 어릴 때 일 많이 했답니다.
    지게질도 많이 하고..,
    논을 걷는 두 분이 참 멋집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2009.10.28 20: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어렸을때 외할머니댁에 놀러가면 논이있었는데..
    지금은 다 길로 바뀌었어요..너무나도 변해버려서
    어린시절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에요...

    2009.10.28 21: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skybluee

    할아버지생각납니다.

    2009.10.29 08:04 [ ADDR : EDIT/ DEL : REPLY ]
  14. 제고향 양평이 생각나는 아침 입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2009.10.29 08: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글을 보니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네요..
    동네마다 곳곳에 예쁜 단풍이 한창이니
    조금은 여유를 즐기심도 좋은 듯 합니다..^^

    2009.10.29 16: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wcs_do();